러시아 “가스 중단” 협박에… 독일 “원전 중단 재검토”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위협에 맞서 유럽 각국들이 원전(原電)을 앞세운 대응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천연가스 사용량의 55%를 러시아산에 의존해 온 독일은 올해 말을 목표로 추진하던 ‘원전 완전 폐기’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이 원전을 친환경 투자로 재확인한 데 이어, 프랑스와 벨기에, 폴란드, 체코 등도 잇따라 원전 수명 연장과 추가 건설에 나섰다.
로이터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18일(현지 시각)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이 지난 14일 독일 에너지 기업 유니퍼, RWE그룹 등 유럽 고객사 3곳에 ‘불가항력(不可抗力) 상황으로 인해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불가항력은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전쟁, 폭동 등 극복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계약 이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가스프롬이 주장하는 불가항력 상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서방의 대(對)러 제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며 ‘반(反)러 연대’를 형성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는 데 대한 보복 조치인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에 대해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계속 줄여나가겠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16일부터 노르트스트림을 통해 독일로 들어가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60%나 줄였다. 이달 11일부터는 유지 보수를 이유로 아예 가스관 가동을 중단했다. 13일에는 “캐나다에서 수리 중인 노르트스트림용 가스 터빈을 돌려받기 전까지는 가스관 가동 재개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독일 경제는 물론 유럽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난방이나 발전은 물론, 플라스틱 등 각종 합성소재를 만드는 화학 산업 원자재로도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유럽 각국 제조업이 독일의 화학 소재에 의존하고 있다”며 “독일 화학 산업의 위기가 곧바로 유럽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원전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독일 경제부는 천연가스 부족에 대비, 연말까지 폐쇄하려던 원전 3기의 수명 연장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18일 발표했다. 전력 생산에 들어가는 천연가스를 난방과 화학 산업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원전 가동 중단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던 로베르트 하베크 부총리의 발표를 6일 만에 뒤집었다. 독일 경제부 관계자는 “명확한 사실과 숫자에 근거해 다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EU는 올해 1월 원자력 발전을 탄소 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녹색 투자’에 포함해 정부와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기로 한데 이어, 지난 6일 유럽의회 표결을 통해 이를 최종 확정했다. 올해 2월 원전 6기 추가 건설을 선언한 프랑스는 원전 건설과 투자를 앞당기기 위해 프랑스전력공사(EDF)를 다시 국유화하겠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민영화 18년 만의 재(再)국유화로, 약 97억유로(약 13조원)가 투입된다.이 밖에 벨기에는 폐쇄 예정이던 원전 2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하고, 네덜란드는 원전 2기를 새로 짓기로 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석유를 대체할 새 공급망 확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18일 아제르바이잔을 방문, 천연가스 수입 확대 계약을 맺었다. 오는 2027년까지 아제르바이잔에서 수입하는 가스를 현재의 약 2배 수준인 연간 200억㎥까지 늘리는 내용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지난해 EU에 천연가스 81억㎥를 수출했고, 올해는 120억㎥를 공급할 예정이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도 이날 알제리를 방문, 압델 마드지드 테분 대통령과 연간 40억㎥의 천연가스를 추가 공급받는 방안에 합의했다. 드라기 총리는 지난 4월에도 알제리를 방문, 2023년부터 2년간 천연가스 수입량을 90억㎥ 늘리는 계약을 체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셰이크 무함마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과 파리에서 회담을 갖고 양국 간 에너지 협력 방안에 합의했다. 프랑스 경제 매체 BFM TV는 “중동산 원유 도입을 늘리기 위한 포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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