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 순 없다" 철창의 외침 위로 '공권력 헬기'가 날았다

박태우 2022. 7.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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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현장 | 대우 옥포조선소 긴장감
윤 '공권력 투입 시사' 5시간 만에
정부 쪽 대화 시도 "일단 나오라"
'불법행위 엄정조치' 원론 되풀이
옥쇄농성 노동자 "노조할 권리를"
노조 '30%→올해 5% 인상' 제시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28일째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점거하고 농성 중인 가운데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찾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제1도크 안 선박에 설치된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9일 오후 2시께 ‘전운’이 감도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상공에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총괄하는 두 사람이 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를 태운 헬리콥터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파업 현장 위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려다본 것은 조선소 제1도크(배를 만드는 작업장)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 밑바닥에 1㎥짜리 ‘철제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둔 하청노동자 유최안과 그 위 15m 높이 구조물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고공 농성 중인 하청노동자 6명이었다. “두두두두두” 위압적인 공권력의 프로펠러 소리가 “임금을 인상해달라”는,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그들의 외침을 뒤덮고 있었다.

지난달 2일 조선하청지회가 파업을 시작한 지 48일, 지난달 22일 유최안 부지회장과 6명의 하청노동자가 제1도크 점거 농성을 시작한 지 28일째. 아니, 윤석열 대통령이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와 관련해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전날에 이어 거듭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한 지 5시간여 만에 행안부·경찰 수장이 현장에 급파됐다. 참사가 예견되는 좁고 높은 농성 현장에 ‘공권력 투입’을 벼르는 대통령, 시너와 유언장을 품고 ‘끝까지’를 결심한 하청노동자의 극한 대치를 풀기 위한 사실상의 ‘최후 협상’인 셈이다.

제1도크 사방에는 육중한 선박 구조물이 놓여 있었다. 난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바다인 농성 현장은 전체 30m 높이의 원유운반선 선체의 일부였다.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내려가야 유 부지회장이 농성 중인 밑바닥 구조물이 나온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손팻말이 걸려 있는 구조물 철창 사이로, 180㎝가 넘는 장신인 유 부지회장의 맨 다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이날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 후보자에 앞서 미리 헬기에서 내려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철제 감옥’ 앞으로 걸어갔다. 30년 노동운동가 출신의 이 장관은 유 부지회장에게 “빨리 농성을 풀면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내용들이 평화적으로 타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부지회장은 “농성을 풀지 못하겠다. 먼저 풀라고 해놓고 그동안 약속 한 번도 안 지키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28일째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점거하고 농성 중인 가운데 19일 오후 제1도크 안 선박에 설치된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농성장을 찾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농성을 ‘불법점거’라고 규정하고 공권력 투입을 압박하고 있는 것을 두고도 유 부지회장은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법을 지키려고 물어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편법을 이용해 법을 어긋나게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문제가 벌어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2016년부터 이어진 조선업 불황 속에서 사용자들이 저지른 불법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고, 이제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은 이 장관에게 “유 부지회장이 있는 곳이 대우조선의 현실”이라며 “20년 동안 갈고 닦은 숙련기술을 가진 그가 저렇게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가둬야 하냐”고 되물었다.

지난 15일에야 시작된 원·하청 노사의 4자 협상은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하청지회는 최초 요구안인 ‘임금 30% 인상’보다 훨씬 전향적인 ‘임금 올해 5%, 내년 10% 인상’과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 부제소’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섯번째 교섭이 열린 이날 밤늦게까지 진전을 보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하청지회 관계자는 “회사 쪽의 태도 변화는 감지되지만, 회사 제시안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정식 장관은 “여러분들이 최대한 (교섭에) 박차를 가해서 마무리 하면 파국은 면할 수 있다”며 노동부 담당국장을 협상 현장에 남기고 자리를 떴다.

하청노동자들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정부의 공권력 투입 시사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저희들이 살려고, 조선소에서 일 좀 해보려고 투쟁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공권력 얘기가 나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이상민 장관은 김 지회장에게 “잘 알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을 만나서는 “공권력 투입도 당연히 고려하고 있지만,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로 타결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거제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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