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대기업의 계열사 직원 전출, 불법 파견 아니다" 첫 판결

이혜리 기자 2022. 7. 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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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청사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기업이 새 사업을 위해 계열사 직원을 대규모로, 반복적으로 전출받아 일을 시켰더라도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SK테크엑스(SK플래닛) 직원 2명이 SK텔레콤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SK텔레콤은 간편 중고거래, 네일아트 등 뷰티 중개, 애완동물 건강관리 등 신규 플랫폼 서비스를 출시하는 티밸리 사업을 위해 계열사인 SK테크엑스 직원들을 받아 업무를 시켰다. 원고 A씨는 약 1년9개월, B씨는 약 2년3개월간 SK텔레콤으로 전출됐다.

A씨 등은 근로자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SK테크엑스에서 파견받아 일을 시킨 것은 불법파견이므로 SK텔레콤이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견법은 파견업 허가를 받은 사업주만 노동자를 파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서울고법 민사38부(재판장 박영재)는 SK텔레콤이 A씨 등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우선 A씨 등의 전출이 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 SK텔레콤이 A씨 등의 업무를 지휘·감독한 점, 인사평정을 한 점, 휴가 사용을 승인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또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SK테크엑스가 파견업을 했다고 인정했다. SK테크엑스는 2015년 1월~2017년 6월 매달 많게는 121명의 직원을 SK텔레콤에 전출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전출 규모가 SK테크엑스 전체 인원의 20~30%에 해당하는 점, SK테크엑스가 직원들을 전출시킨 것 외에 SK텔레콤 사업에 관여하지 않은 점 등을 파견업 인정의 근거로 제시했다. 편법 파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SK테크엑스가 파견업을 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파견업을 했다고 인정하려면 파견으로 인한 대가나 수수료 등 경제적 이익을 취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SK테크엑스가 불법파견을 하지 않았으므로 SK텔레콤에 A씨 등을 직접 고용할 의무도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A씨 등의 사례와 같은 계열사 직원의 전출은 효율적인 인력 활용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사업 내용과 특성상 플랫폼 사업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보유한 다수의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사업상 필요와 인력 활용의 효율성 등을 고려한 기업집단 차원의 의사결정에 따라 전출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고유한 사업 목적을 갖고 독립적 기업 활동을 영위하는 계열회사 간 전출의 경우 전출 근로자와 원 소속 기업 사이에는 온전한 근로계약 관계가 살아있고, 원 소속 기업으로의 복귀 발령이 나면 기존의 근로계약 관계가 현실화해 계속 존속하게 된다”며 “파견법상 근로자 파견과 외형상 유사하더라도 그 제도의 취지와 법률적 근거가 구분된다”고 판시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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