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력 추가 배치 긴장감 .. 금속노조 6000명 20일 결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긴장 팽팽 곳곳서 망치 소리·투쟁가 동시에 행안장관·경찰청장 잇따라 방문 파업 노동자들 "공권력 투입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 펼쳐질 것" 시민단체 23일 희망버스 운영도 고용부 장관, 농성자들과 20분 면담 행안부 장관 "최대한 신중히 고려" 대화 여지 속 극적 타결 가능성도
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1독 인근의 파업 현장. 메인 독(main dock·배를 만드는 작업장)인 이곳에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다는 예상 때문인지 현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긴장감이 귓가를 때리는 소음, 투쟁가와 어설픈 부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의 현장 곳곳에서 ‘깡∼깡∼’ 망치 소리와 “살고 싶다. 살고 싶다. 투쟁!”이라는 투쟁가가 사방으로 전해졌다.
이곳 1독에서 선박 건조 작업이 멈춘 지는 1개월하고도 보름이 넘었다. 임금 30% 인상과 단체교섭 인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2일부터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파업에 돌입하면서다. 하청지회 조합원 중 6명은 1독에서 건조 중인 30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 원유 저장 시설 난간(높이 15m)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선박 바닥에 1㎥ 크기의 철 구조물에서 28일째 점거 농성하고 있다. 좀처럼 상황 변화의 전기가 마련되지 못한 가운데 국무회의에서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모두발언은 현장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윤 대통령은 “불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더 이상 국민들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사를 불문하고 산업 현장에서 법치주의는 엄정하게 확립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노사 양측을 압박해 타협점을 도출하려는 메시지였지만, 윤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서는 관련 질문을 받고 “국민과 정부 모두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답했다. 전조도 있었다. 경남경찰청이 전날 하청지회 점거 농성에 대해 수사팀 인력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급박한 상황 전개에 김형수 금속노조 하청지회장 등 현장 조합원 100여명의 얼굴엔 비장함이 가득했다. 김 지회장은 “우리 상황이 이 땅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라며 “공권력을 투입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니, 정부가 나서 산업은행에 이 사태를 대화로 해결하라고 촉구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을 시작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등 정부 관계자들이 이날 헬기로 파업 현장을 급히 찾았다.
얼굴 맞댄 정부·파업 노동자 19일 경남 거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을 방문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조선소 독 화물창 바닥에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m인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면담하고 있다. 거제=연합뉴스
이정식 장관은 김형수 하청지회장을 만나 이야기한 뒤 1독 점거 농성장으로 내려가 유 부지회장과 6명의 고공 농성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청지회 파업 48일째, 하청지회와 주무부처 장관의 만남이었다. 이정식 장관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내용들이 평화적으로 타결되도록 지원하겠다”며 20분간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을 떠났다. 이정식 장관은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일촉즉발’ 국면에서 노조 측에 마지막 설득 작업을 벌이기 위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5분 정도 시간차를 두고 이상민 장관이 파업 현장을 방문했다. 이상민 장관은 취재진의 질문에 “공권력 투입도 당연히 고려하고 있다”며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어 최대한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속에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처벌을 말하기 전에 해결을 논하고 답해야 한다”며 “정부의 강경 대응이 현실화한다면 우리는 모두 거제로 향하겠다”고 경고했다. 20일 오후엔 영호남권 금속노조 조합원 6000여명이 대우조선해양 정문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펼친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이번 대우조선해양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23일 희망버스를 운영할 예정이다. 11년 전 한진중공업 사태 때 처음 등장한 희망버스는 노동자 연대의 상징으로 꼽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40여개 단체는 이날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희망버스에 현재까지 67개 단체가 참여 의사를 보냈다고 밝혔다. 희망버스는 서울과 경기, 대구, 강릉, 광주 등 전국에서 출발한다. 참가자들은 23일 오후 2시30분 거제 대우조선 서문 앞에 집결해 파업지지대회를 한 뒤 오후 6시30분에 해산할 계획이다. 황철우 희망버스 공동집행위원장은 “윤석열정부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불법 낙인을 찍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며 “정부는 노동자와 단 한 번도 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노동자와 생명과 인권을 짓밟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당분간 극도의 긴장감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양측의 입장이 잇따라 표출되면서 교섭의 극적 타결 여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용부에 따르면 노동계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박근혜정부이던 2013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파업이 최근이다. 당시 경찰은 노조 집행부와 실무 간부 28명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고, 2명을 구속했다.
이날 조선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호소문을 배포하고 노조를 향해 협상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공권력 투입과 철저한 법집행을 요구했다. 협회는 “기나긴 수주 절벽이 지나고 2020년 4분기부터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로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가 증가하고 있다”며 “하청노조의 불법파업은 이러한 재기 몸부림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진수(건조한 선박을 물에 띄우는 작업)가 지연된 것은 한국 조선업 역사상 최초”라며 “과거에도 혼란스러운 파업의 시기가 있었지만 노조는 독을 점거하거나 인도할 선박을 볼모로 삼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이번 파업에는 사내협력사 근로자의 1.1%인 120명만 참여하고 있지만 생산시설 점거 등 불법행위로 다수의 근로자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피해가 중소 조선업계와 기자재 업계로 확산되고 있어, 향후 국내 조선산업이 존립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