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도 안 돼 떠난 이상민 장관..공권력 투입 가능성 못 박았다
“장관님. 살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제발 공권력이 투입하겠다는 말은 안 나오게 해주십시오.”
19일 오후 2시 55분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1 독(Dock·선박 건조 공간)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의 부탁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 장관은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머물다 발길을 돌렸다. 20여m 높이의 독 게이트에서 점거농성 중인 조합원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날 1독 농성장에는 이 장관을 비롯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가 방문했다.
이 장관은 그러나 앞서 공권력 행사에 대해 고려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연히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여러 희생이나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최대한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독 케이트에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쓴 팻말을 든 하청지회 소속 노동자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바닥에서 15m 위 철제 난간에는 농성 중인 조합원 6명이 “여기 사람이 있다! 하청노동자도 사람이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독 화물창 바닥에는 가로·세로·높이 1m의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용접으로 출입구를 막고 ‘옥쇄 투쟁’ 중인 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철장 사이로 보였다. 동료 조합원들은 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출신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농성 중인 노동자를 직접 만났다. 그는 김 지회장에게 “정부로서는 불법행위를 국민이 우려하고 있고, 여러분들 건강이라든가 안전이 우려돼 일단 농성을 풀면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 현장에선 정부의 공권력 투입 가능성과 이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파업노동자들은 정부가 공권력 투입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불법파업 주장에 대해 “이번 투쟁의 핵심은 불법 파업이 아니라 하청노동자의 저임금”이라며 “원청의 하도급 대금 후려치기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했다. 하청업체가 원청에 기성금 30% 인상을 요구했지만 3.2%밖에 인상되지 않아 결국 ‘헐값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회장은 옥쇄 투쟁 중인 유 부지회장이 있는 공간을 가리키며 “왜 자기가 20년 동안 갈고 닦은 숙련 (용접)기술로 감옥을 만들어서 스스로 들어가게 하느냐”며 “우리가 정규직 시켜달라는 것도 아니다. 7년 전에 빼앗긴 임금의 원상 복귀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정부의 ‘엄정 대응과 처벌’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 하는 경남연대는 이날 오전 국민의힘 경남도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 노동자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은 파국”이라며 “하청업체와 노조의 교섭이 합의로 이어지려면 정부가 산업은행(대주주)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대우조선해양의 실질적 사용자성에 따른 해결을 주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강경 대응이 현실화 한다면 우리는 모두 거제로 향할 것”이라며 “우리가 하청노동자들의 방패이자 울타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농성이 진행 중인 1독 주변에는 이날 조선하청지회 소속 노동자가 아닌 대우조선지회 조합원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불법파업으로 거제시민 죽어간다’, ‘10만명의 목숨이 달린 불법파업 즉각 중단하라’, ‘우리의 일터를 지킵시다’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김돌평 대우조선해양 협력사협의회장은 “파업이 한 달을 넘기면서 직원들 월급도 못 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하루빨리 파업을 풀고 대화에 나서서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도 조선하청지회 소속 조합원 일부가 6일째 단식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한쪽 얘기만 듣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만난 노동자 3명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지분의 과반(55.7%)을 보유한 산업은행에 사태 해결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소에서 15년째 용접공으로 일하는 강봉재씨(51)의 지난해 시급은 9510원으로 4년 전(9410원)보다 불과 100원만 올랐다. 강씨는 “시급에 상여금이 녹아들면서 통상임금으로 바뀌었고, 체감상 해가 지날수록 연봉이 적어졌다”며 “5년여 전 연말정산할 때 계산된 연봉보다 30%가 줄었다”고 말했다. 13년가량 조선소에서 탑재취부 일을 해온 최민씨(51)는 “연봉으로 따지면 6년 전 대비 2000만원 가까이 못 받고 있다”며 “업체 대표들은 ‘경제가 회복되면 원상 복귀하겠다’고 했지만 다 거짓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원청의 ‘꼬리 자르기’ 행태를 비판했다. 15년 넘게 조선소에서 도장 일을 하는 계수정씨(49)는 “(원청 직영) 노동자들의 임금은 안 깎고 왜 하청노동자만 깎는가”라고 되물었다. 계씨는 “현재 임금으로는 전기세, 수도세, 집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시급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원상복귀라도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8시간 일하고 일당 12만원을 손에 쥔다는 그는 “7~8년 전만 하더라도 15만~16만원을 받았다. 한 회사에서 20년을 일한 사람의 임금도 최저시급 수준”이라고 했다.
최씨는 “21개 하청업체 사장들은 ‘힘도, 돈도 없다’고 말한다”며 “(원청은) 회사가 어려우면 하청업체 사람을 먼저 정리해고하고, 모든 책임을 하청 쪽에 전가한다”고 했다. 그는 “조선소의 근로복지가 좋지 않고 임금 인상도 없다 보니 직업훈련원으로 온 이주노동자는 건설업 등으로 빠지려 한다”고 했다.
정부가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 기조를 밝힌 데 대해 불만이 나왔다. 강씨는 “오늘도 4차 교섭을 계속하는데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해 안타깝다”고 했다. 계씨는 “다들 ‘끝까지 투쟁하자. 더는 개돼지처럼 살기 싫다’고 했다”며 “요구가 쟁취되지 않으면 조선소를 떠나야 할 상황까지 내몰렸다”고 토로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김정훈 기자 j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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