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재집권 후 기근·경제난..아프간 임산부·신생아 건강 적신호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기근, 산부인과 인력 부족, 정권의 여성 인권 탄압 등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임산부와 신생아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프간은 산모 사망률과 신생아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악명 높았으나 지난 20년간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통해 꾸준히 개선됐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아프간의 영아 사망률은 2000년 1000명당 91명에서 2020년 45명으로 줄었다. 산모 사망률은 2000년 신생아 10만명당 1450명에서 2020년 638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상황이 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탈레반 재집권 이후 아프간 동부 호스트주와 남부 헬만드주에서 운영 중인 산부인과 병원을 찾는 조산 합병증 산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체중으로 태어난 신생아가 사망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배경에는 극심한 기근이 자리잡고 있다. 30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아프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2000만명이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중부 바르다크주에서는 최근 며칠 사이 영양실조로 치료를 받은 임산부들이 84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최근 몇 년 사이 평균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라고 WSJ는 전했다.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간 경제 사정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외환보유액 약 70억달러를 동결하고 자금 지원을 차단하는 등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대비 34% 감소할 전망이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기근에 시달리면서 일부는 인신·장기매매까지 나서는 등 아프간의 인도적 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지금 아프간이 겪고 있는 인도적 위기는 지난 20년간보다 훨씬 많은 아프간인을 죽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재 여파로 정부 지원이 급감하면서 지방 병원들은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이 때문에 임산부들이 수도 카불로 몰리면서 일부 병원에서는 인큐베이터에 신생아를 최대 3명까지 수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카불의 산부인과 병원들은 재정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카불의 말랄라이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의료진이 몇 달간 무보수로 일한 끝에 폐업 직전까지 갔으나 지난해 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지원을 받고 간신히 회생했다.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WSJ은 탈레반 재집권 후 다수의 조산사들이 아프간을 떠났거나 떠날 계획이라고 전했다. 탈레반 정권이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부인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금지하는 등 여성 인권을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지난해 전체 신생아의 7%였던 아프간의 영아 사망률이 앞으로 미국의 20배가 넘는 10%로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사망률은 그 이상으로 나빠질 수 있다. 대부분 아프간 산모들이 집에서 출산하는 데다 행정 기능 마비 등으로 인해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상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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