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 위기 장기화에 R의 공포까지..기업들 투자 접고 '긴축경영'

이준기 2022. 7. 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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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솔, 美배터리 공장 투자계획 전면 재검토 결정 이어
SK하이닉스 충북 청주공장 증설 계획 전격 보류 '파장'
애플·TSMC 등 글로벌 빅테크·반도체사들 줄줄이 '긴축'
삼성·현대차 등 "계획대로 투자" 공언..현실화 미지수

[이데일리 이준기 김상윤 박민 고준혁 기자] 기업들이 하나둘씩 투자보따리를 다시 거둬들이는 모양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위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속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까지 점증하면서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1조7000억원을 들여 배터리 단독공장을 짓기로 한 투자계획을 연기한데 이어 SK하이닉스도 최근 충북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대만 TSMC를 비롯한 애플 등 반도체와 빅테크 기업들도 사실상 ‘긴축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국내외에 ‘1000조원 투자보따리’를 풀겠다고 예고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10대 기업들도 현 국면을 예의주시하며 투자계획 손익계산서를 다시 따져보고 있다.

▲SK하이닉스 청주공장 전경. (사진=SK하이닉스)
10대 기업들 “예정대로” 단언하지만…‘글쎄’

19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이사회에서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내 43만3000여㎡ 부지에 수조원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공장(M17)을 증설하는 안건을 논의했지만 최종 결정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 2개 라인을 증설하는 내용이다. 충북도·청주시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며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4차 산업혁명시대 폭증할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고려해 미리 클린룸(먼지·세균 없는 생산시설)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계획대로면 내년 초 착공해 2025년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사회는 전반적인 경기침체 기류를 고려해 보수적인 투자 집행 기조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플레이션이 치솟았고, 중국 코로나19 봉쇄정책 등으로 IT기기 수요가 둔화하면서 메모리반도체 수요 역시 한동안 내림세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메모리 공급과잉에 따른 반도체 가격 급락도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여기에 환율 상승 등에 따라 애초 계획한 투자비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한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3고(高) 시대를 언급하며 SK의 투자 지연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다만, 최 회장은 “투자가 지연된다는 얘기이지, 안 한다는 계획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055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다른 대기업들도 투자계획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1조7000억원을 투자하려던 미국 애리조나 원통형 배터리 단독공장 설립 시점을 미루기로 했다. 원료비·인건비 등 인플레이션으로 공장 설립 비용이 증가해 투자비를 늘려야 하는데다 애초 계획만큼 수익이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탓이다. 환율 상승에 따른 차입금 부담도 한몫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이들 기업은 “투자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 당장 17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제2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환율 상승 여파에 2조원 이상 부담이 더 늘었다. 미국 전기차 생산 체계 구축에 58억달러를 붓기로 한 현대차그룹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현 상황에서 투자계획을 유보 또는 연기하거나 최악의 경우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경기가 저점을 찍을 때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하는 식으로 투자 계획을 수정할 수도 있다”고 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선 흑자 폭이 감소하면 투자할 여력이 줄어드는 셈”이라며 “고환율 시기 기업 여건이 악화하는 만큼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사진=AFP)
글로벌 빅테크·반도체업체들도 ‘긴축경영’

기업들의 긴축경영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블룸버그통신은 18일(현지시간)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미국 애플도 경기침체에 대응하고자 긴축 경영에 나섰으며 이에 따라 채용 속도를 늦추고 지출도 줄일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빅테크 기업인 구글도 같은 날 “올해 남은 기간 고용 속도를 줄일 것”이라고 직원 메일을 통해 알렸다. 이미 직원을 정리해고한 기업들도 여럿이다. 테슬라는 지난달 21일 전체 직원 3.5%에 해당하는 수천명을, 같은 달 넷플릭스는 300여명의 직원을 각각 해고했다. 구직 웹사이트인 트루업(TrueUp)에 따르면 5월 이후 최소 미국인 3만7000명이 해고를 당했다. 대부분 부동산과 IT기업으로, 모두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에 직격탄을 맞은 업종들이다.

글로벌 반도체업체들도 하나둘씩 투자를 재검토하고 있다. 앞서 메모리반도체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달 30일 3~5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향후 수 분기에 걸쳐 공급 과잉을 피하고자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며 “신규 공장·설비 투자를 줄여 공급과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생산 및 향후 설비투자 축소까지 고려해 반도체 가격 급락을 막겠다는 취지다. TSMC는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 심화에 대비해 생산 설비 신설 계획을 일부 변경키로 했다. TSMC는 대만 타이난 과학단지 내 자사 2개 공장에 설치할 예정이었던 3나노미터(㎚·10억분의1m) 생산 시설 대신 5나노미터 시설을 우선 배치하기로 했다.

이준기 (jeke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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