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cm '웃는 돌고래' 배 속에는 먹이 대신 2m 낚싯줄

오현지 기자 2022. 7. 1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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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서울대 등 제주서 해양포유류 부검 교육
부검한 상괭이 모두 그물 혼획돼 질식사 추정
상괭이 배 속에서 발견된 낚싯줄과 낚싯바늘. 2022.7.19/뉴스1© News1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이 정도 길이 낚싯줄은 연구진들도 처음 보네요."

19일 제주시 한림읍 한국수산자원공단에서 진행된 해양포유류 공동 부검 교육 현장.

수줍게 웃는 듯한 입꼬리로 '웃는 고래'라는 수식어를 가진 상괭이 한마리가 차가운 부검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매끈한 피부와 여전히 맑은 눈동자만 보면 당장이라도 살아 헤엄칠 것 처럼 생생한 모습이었다.

지난 3월16일 서귀포시 용머리해안 갯바위에서 발견된 이 돌고래는 '인도태평양상괭이'로, 홍콩·대만 등지에 서식해 제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개체다.

이 상괭이가 200㎞도 더 떨어진 제주 해역에서 죽은 채 발견된 이유는 뭘까.

답은 상괭이 '위'에 있었다. 약 6시간에 걸친 부검 끝에 조심스럽게 절개한 위는 수백마리의 기생충으로 가득차 있었다. 전문가들조차 "이렇게 많은 기생충은 처음 본다"며 경악할 정도였다.

둥근 공처럼 한 데 뭉친 기생충 덩어리가 감싸고 있는 건 2m 길이의 낚싯줄과 후크선장손을 빼닮은 갈고리 모양의 낚싯바늘 4개였다.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먹었거나 해상에 떠다니는 폐기물을 삼킨 것으로 보인다.

전국 8개 대학 수의과대학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제주 해역에서 발견된 상괭이와 남방큰돌고래 부검을 하고 있다. 2022.7.19/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이 상괭이의 길이는 171㎝, 자신의 몸 길이보다 긴 낚싯줄을 삼킨 것이다.

위를 가득 채운 기생충과 낚싯바늘만 봐도 이 상괭이가 유난히 야윈 상태로 발견된 이유를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본격적인 부검에 돌입하며 확인한 상괭이의 지방층은 등 0.9㎝, 옆구리 0.9㎝, 배 1.6㎝로 파악됐다.

일반적인 상괭이 지방층 두께는 2㎝ 내외다. 실제로 이날 동시에 부검이 진행된 새끼를 밴 상괭이의 경우 가장 두꺼운 옆구리 지방층이 2.5㎝였다.

상괭이 몸 속에서 발견된 2m 길이의 낚싯줄. 2022.7.19/뉴스1© News1

낚싯줄과 낚싯바늘을 삼킨 후 먹이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실상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였던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식도와 폐에서 올라오는 포말로 미뤄봤을 때 직접적인 사인은 그물에 혼획돼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돌고래는 숨을 쉬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나가야 하지만, 그물에 걸린 탓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익사한 것이다.

결국 인간이 던진 낚싯줄을 삼키고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괭이가 또 인간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죽은 셈이 됐다.

이날 부검을 진행한 이성빈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생생물학의학실 수의사는 "위장 내에 낚싯줄이 있어 면역력이 낮아졌고, 위 내용물이 저류되다보니 기생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질식사 소견도 확인돼 약해진 상태에서 그물에 걸렸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수의사는 "낚싯줄이 발견되는 케이스가 한 두건 정도는 있었지만 이렇게 긴 건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

연구진들은 해당 상괭이가 제주 해역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흔치 않은 만큼 골격을 샘플링해 고래연구센터에서 추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전국 8개 대학 수의과대학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제주 해역에서 발견된 상괭이와 남방큰돌고래 부검을 하고 있다. 2022.7.19/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새끼를 품은 채 죽은 어미 상괭이 역시 그물에 걸려 질식사했다는 부검 소견이 나왔다. 이 상괭이는 갈비뼈부터 가슴지느러미까지 골절된 상태였다.

임신한 지 4~5개월로 추정되는 상괭이 자궁에서는 고작 35㎝에 불과한 수컷 상괭이가 발견됐다. 늑골은 물론 생식기 등 대부분의 신체조직이 발달된 상태로, 약 6개월 후면 65㎝까지 성장해 태어났을 개체였다.

이날 오후에는 지난 4월29일 성산읍 삼달리에서 죽은 채 발견된 남방큰돌고래에 대한 부검도 진행된다.

제주지방해양경찰청과 제주대학교에 따르면 제주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상괭이는 2019년 45마리, 2020년 55마리, 지난해 53마리, 올해 6월 기준 30마리로 집계됐다.

제주 연안에만 12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된 남방큰돌고래는 최근 6년간 한 해 평균 10여 마리가 폐사했다.

한편 이날 진행된 부검교육은 제주 해역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해양표유류의 폐사 원인 분석을 위해 진행됐으며, 제주대와 서울대가 공동 주최했다.

전국 10개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참여하며, 오는 22일까지 바다거북, 상어 등 총 22개체에 대한 부검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폐사 원인은 물론 건강 상태와 이동 경로 등 생태학적 측면을 고려한 간접적인 폐사 원인을 분석할 방침이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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