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망하고, 집에 갇히고..팬데믹 이후 극단선택 22% '코로나 탓'
극단선택자 132명의 유족 등 대상 조사
29명, 22%가 코로나 영향 심하게 받아
경제스트레스 79%·직업스트레스 66%
20대 남성 ㄱ씨는 3년간 배달일 등을 하며 돈을 모아 2019년 7월 유명 관광지에 카페를 차렸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맛있는 커피로 입소문을 탔던 것도 잠시, 2020년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카페 매출은 급락했다. 수입은 없는데 수도세와 전기세, 카페를 차릴 때 빌린 대출금은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고금리 대출과 지인들의 도움으로도 자금난이 해결되지 않자 ㄱ씨는 물류센터에서 일을 시작했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빠졌다. 이후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던 ㄱ씨는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예약했다. 하지만 병원 방문 하루 전날 ㄱ씨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 쉬고 싶다’는 유서를 남긴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0대 남성 ㄴ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봉사활동과 동아리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평소 꾸준히 운동을 해왔지만, 혹시 외출했다가 손주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그마저 포기했다. 움직임이 줄면서 체중이 늘자 허리통증이 재발했고 점차 우울해져 갔다. ‘가족에게 폐만 끼친다. 이렇게 살아봐야 의미가 없다’는 말을 했던 ㄴ씨는 결국 외출을 하겠다며 집을 나선 뒤 집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처음 발생했던 2020년 1월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5명 가운데 1명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보건복지부(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희망재단)이 2020년 1월 이후 자살로 숨진 132명과 그들의 유족들을 대상으로 심리부검을 한 결과 29명(약 22%)의 사망이 코로나19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리부검은 자살로 숨진 이들의 마지막 행보와 주변 진술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으로, 복지부는 ‘자살예방기본계획’ 등을 수립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매년 이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자살사망과의 관계를 조사해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아 숨진 29명이 심리적 위기에 놓였던 원인(중복응답)을 살펴보면, 경제 스트레스가 79.3%(23명)으로 가장 많았다. 관광·문화·요식업 등 코로나19로 인한 사업부진·실직 경험으로 인한 직업 스트레스도 65.5%(19명)로 많았고 △가족관계 51.7%(15명) △부부관계 42.9%(6명) △대인관계 27.6%(8명)가 뒤를 이었다. 대인관계를 원인으로 꼽은 8명 가운데 7명은 ㄴ씨 사례처럼 거리두기 조치로 대인관계가 위축·단절되는 경험을 했다.
복지부는 숨진 29명 상당수가 우울증 등 정신과 질환을 앓거나 앓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29명 가운데 24명(82.8%·중복응답)이 우울장애를, 5명(17.2%)이 불안장애 등을 겪은 것으로 집계됐는데, 29명 중 17명(58%)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정신과 치료나 상담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황태연 희망재단 이사장은 “대부분의 자살자가 사망 전 자살 경고신호를 보인다는 심리부검 결과는 자살 고위험군을 발견해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생명지킴이 양성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23∼2027년)’에 반영할 예정이다. 정은영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관은 “향후 코로나19 등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른 자살 원인분석을 위해 심리부검을 확대하겠다”며 “코로나19 시대 전 국민 정신건강 증진과 정신질환 조기 발견·치료, 자살 고위험군 사후관리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된 범부처 차원의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12월 중 수립하겠다”라고 설명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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