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 양성도 수도권·비수도권 양극화 우려
정부가 19일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을 발표해 사실상 수도권 대학의 관련 학과 증원을 허용하면서 지방대학 등이 반발하고 있다. 또 10년간 15만명에 달하는 인재 양성이 향후 인력 과잉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합동으로 이날 발표한 ‘반도체 관련 인재양성 방안’에는 이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던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반도체 관련 학과 신·증설에 의지와 역량이 있는 대학이면 우선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학과 정원이 늘어날 수 있게 됐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도권 대학이 더 큰 수혜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운영난을 겪고 있는 비수도권 대학들이 반도체 관련 학과에 지원할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말 전국 40개 대학을 표집해 반도체 학과 신설 및 정원 확대에 관한 수요조사를 한 결과 수도권 대학에선 14개교가 1266명을, 비수도권 대학에선 13개교가 611명 증원을 희망했다.
정부는 전체 15만명에 달하는 인재 양성 규모 중 대학·대학원·직업계고까지 포함한 정원의 증가로 4만5000명의 인재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늘어날 정원은 일반대학에서 2000명, 대학원 1102명, 전문대학 1000명 등으로 구분된다. 앞서의 수요조사를 감안하면 일반대학 정원 수요의 3분의 2 가량이 수도권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교육부는 그간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리는 데 제약이 됐던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대학 정원 관련 규제를 손보지 않고도 반도체 관련학과 정원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정한 수도권 대학 정원 총량 가운데 8000명 정도 여유가 있다”면서도 “정책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수도권과 지방의 적절한 안배는 불가피하지 않은가 하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대학은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최대한 묶어둬야 지방대학의 숨통이 틘다’고 주장해왔다. 이우종 청운대 총장은 “지난 8일 비수도권 7개권역 지역대학총장협의회 연합의 총장들과 함께 박순애 부총리와 간담회를 갖고 요구사항을 전달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의 방안이 발표됐다”며 “그동안 구조조정을 감내해온 지방대학도 상생할 길을 찾자는 요구일 뿐인데 정작 정부는 ‘지방대학 시대’라는 국정과제조차 방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련 산업분야의 중장기적 경기변동을 고려하지 않은 과잉인력 공급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몇 년 후 해당 분야로 진출할 전공자는 수도권·비수도권을 막론하고 취업 부담이 가중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처한 근본적 위기를 짚지도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업대 교수는 “현재 윤석열 정부는 당장 위기에 빠진 반도체 산업의 문제를 10년 후에나 가능할 인재양성 정책으로 풀려 하고 있다”며 “한국이 엔지니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국가가 되게 하는 것이 제 1책인데, 이대로 가면 당장 필요한 인재는 대만과 일본에 모두 빼앗기고 10년 후엔 과도하게 양성된 졸업생들의 일자리가 부족한 현상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산업을 콕 집어 대학 정원까지 늘려가며 집중 지원하는 이번 방안이 효과를 보려면 산업계와의 긴밀한 연관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초기에는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정부 시책 지원사업들이 시간이 흘러 시들해지면 일부 수도권 유명대학만 정책의 혜택을 누리는 양극화로 귀결될 수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반도체 학과를 정부 정책으로 밀어붙인다면 어느 대학이 선정되더라도 혜택을 볼 수 있게 지원 대학 선정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졸업 후 진로 등의 지점에서 지원 방안을 명확하게 해놓지 않으면 사업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고 괜히 대학의 양극화만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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