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 '블랙리스트' 기관장 사퇴 후 돌연사.."과기부, 비리 몰아가며 압박"

주형식 기자 2022. 7. 1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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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부 대면 조사 다음날 사의
조사 질문서에 채용비리 기정사실화
법원 "비리 여부 밝혀지지 않아
거취 스트레스로 뇌출혈 인정"

與 박성중 "文정부 무리한 조사에
'과기부 블랙리스트' 희생양"
과기부 블랙리스트 의혹

문재인 정부 초기에 채용 비리 의혹 등으로 감사를 받고 중도 사퇴한 후 돌연 사망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A씨가 조사 당시 과기부의 사퇴 압박을 받은 정황이 19일 드러났다. A씨는 이러한 과기부의 대면 조사 다음 날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8개월 여 임기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사임 처리된 A씨는 약 3개월 뒤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상세불명의 뇌출혈 추정)를 보이며 갑자기 쓰러졌고 결국 숨졌다. 문재인 정부 당시 과기부 산하 기관장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이들은 A씨를 포함해 총 18명이다. 국민의힘은 “A씨는 지난 문재인 정권이 공공기관장에게 부당하게 사표를 강요했다는 이른바 ‘과기부 블랙리스트’ 희생양 중 한 명”이라고 했다.

◇과기부 “명예와 위신을 크게 실추시켰다”고 압박…조사 하루만에 사의 표명

19일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연구직으로 입사한 A씨는 연구원에서 산하 센터장, 부원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0월 말 원장으로 취임한 인물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으로 재직하던 A씨는 2017년 12월 국무조정실과 과기부로부터 자신의 친·인척에게 채용 특혜를 줬다는 의혹으로 감사를 받았다.실제로 5촌 인척인 B씨는 A씨가 미래정책연구본부장이던 당시 해당 기관 부서에 지원하여 최종 합격했다. A씨는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당시 인력 충원에 따른 공고는 전임 원장이 결재한 것이며, 내가 일면식도 없는 5촌 인척 B씨 채용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시 국무조정실이 작성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채용비리 조사 경과’ 문서를 보면, 감사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과기부는 국무조정실의 감사 결과를 이첩받은 뒤 2018년 2월 8일 A씨를 상대로 심문을 했고, A씨는 바로 다음 날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과기부는 A씨 사의를 받자마자 감사를 중단했고, 2월 13일 원장 보직 사임조치를 취했다. 과기부가 국무조정실의 감찰 결과를 이첩받고 조사를 시작한 지 6일 만에 원장 보직 사임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비리 의혹 기정사실화한 질문으로 A씨 괴롭혀”

과기부는 대면 조사 당시 A씨를 상대로 채용 비리 의혹을 기정사실화한 내용의 질문을 수차례 하며 압박 수위를 높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성중 의원실이 입수한 당시 ‘2월 8일 사실관계 확인 및 문답서’를 보면, 과기부는 A씨에게 ‘해당 건은 현 정부가 핵심 정책으로 척결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채용 비리와 무관하지 않아 기관장으로서 기관의 명예와 위신을 크게 실추시킨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 이라고 물었다. 채용 비리 의혹을 이미 사실로 간주하고 A씨가 문재인 정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압박했다고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A씨는 이에 대한 답변으로 자필로 “B 행정원 채용 당시 저는 인사권자가 아닌 정책부장의 당연직(인사규정)의 면접위원 개인으로 참석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또 과기부는 ‘결론적으로 귀하께서는 4촌 인척의 부탁을 받아 (중략) 그의 딸 B씨를 채용하기 위해 다른 면접위원들에게 B씨의 인사청탁(의혹)을 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이에 대한 귀하의 의견은?”이라고 물었다. A씨는 자필로 “점수는 저(정책부장)보다 다른 두분이 최고점을 했으며, 어떠한 청탁도 받지도 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과기부의 질문에 대한 A씨의 답변 중에는 미리 작성이 된 내용도 있었다. A씨는 해당 의혹에 대해 인정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답에 대해 자필로 부인하는 내용을 적기도 했다. 과기부는 질문지에 ‘귀하는 위 면접 평가 과정에서 면접대상자 B씨(A씨의 외종 5촌)를 제외한 25명의 대상자들에게 평균 111.76점의 점수를 부여한 사실이 있습니다. 맞는지요?’라고 했고, 답안에는 ‘네 맞습니다’라고 인쇄된 글씨가 적혀있다. A씨는 이 답안 바로 옆에 자필로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라고 부인했다.

A씨는 대면 조사 초반엔 ‘임직원 행동 강령’ 등을 읽기도 했다. 질문자는 A씨에게 ‘임직원 행동강령 제6조를 말씀해달라’ ‘12조를 말씀해달라’’정관 제13조(임원의 해임) 제 5항을 말씀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이에 A씨는 “직무내외를 막론하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입니다” 등을 대답해야만 했다.

박성중 의원은 “과기부가 A씨를 상대로 한 질문만 봐도, A씨를 채용비리자로 몰아가려고 한 의도가 분명히 보이며, 이로 인해 사망까지한 사실을 모른채하고 산재처리가 되지 않아 유가족 장례비 등 일체의 비용을 개인부담으로 해야했다”며 “과기부의 블랙리스트로 인해 사퇴 압박에 내몰린 피해자들을 전수 조사해 진상 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강제 수사에 돌입한 검찰은 교육부, 과기부, 통일부에 대한 수사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뉴스1

◇재판부 “채용비리 밝혀지지 않아...거취 스트레스로 심뇌혈관계 질환”

A씨는 2018년 2월 원장직을 사임한 후 산하 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감사원은 해당 센터의 실험용 동물 구매 과정에 대해서도 추가 감사를 실시했다. 이후 A씨는 2018년 5월 21일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며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그는 동료에게 여러 차례 감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내가 그만두면 감사가 끝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A씨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 급여 등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이유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냈다. 유족 측은 법정에서 “(A씨가) 불명예 퇴진해 일반연구원 지위에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고, 센터에 대한 감사가 실시되면서 연구원직 사직을 종용받아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숨진 A씨의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 1월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재판부는 “고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고인은 센터에 대한 감사가 실시된 것을 알고 사망 당일에도 배우자에게 연구원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며 “자신의 거취를 고심하던 중 스트레스가 가중돼 심뇌혈관계 질환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문제가 된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실제로 채용비리가 존재했는지, 채용비리 의혹이 어떻게 조사되기 시작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A씨 유족을 변호한 권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유스트)는 “결국 채용 비리 의혹은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으로 결론이 났고, 원숭이 구매 감사도 이례적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과기부는 최근 박성중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과기정통부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원장 A씨에 대한 국무조정실의 조사결과를 이첩받아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감사를 실시한 바 있으며, 원장의 사망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A씨는 과기부 대면 조사 마지막 질문 ‘추가적으로 하실 말씀이나 제출하실 자료가 있으신가요’에 자필로 이렇게 적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큰 꿈을 위해 절제(금주와 금연)와 함께 자신의 주변을 관리하며 생활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정부 출연 연구원 최연소 기관장으로 선임된 결과가 그 일례입니다. 외람되오나, 원대한 포부와 꿈을 가진 저 자신이 친척도 아닌 일면식도 없는 또한 왕래도 없던 외종 5촌 채용과 관련하여 이렇게 사소한 일에 발목잡히는 일을 할 수 있었겠는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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