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경제 약자' 고통 전담해선 위기 극복 불가능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정부발 스캔들은 이 가공할 경제 위기의 극복을 위한 생산적 논의를 실종시키고 있다. 정부 여당은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감세와 긴축 재정이라는 낡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사회·정치 현안과 달리 도무지 야당 기질을 발휘하지 않는다. 급기야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에 여야가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부 여당은 '법인세 인하가 기업 투자 증가를 통한 고용과 산출의 증가'를 유발해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미 수많은 실증 연구를 통해 부인되고 신자유주의 종주국을 포함한 국가에서 이미 실전에서 거부된 논리를 수십 년째 되풀이한다는 것은 이번 위기의 효과적인 극복에 대한 전망을 암울하게 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국민 계정을 몇 번만 클릭하면 비금융법인 총투자를 시계열로 볼 수 있다. 이 지표가 기업 투자 전체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법인세 부담의 크기 변화와 매칭시켜서 기업 투자와 법인세 관계를 짐작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해당 그래프는 법인세 최고세율 변화와 비금융법인의 총투자 간 유의미한 관계를 상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히려 수치로만 파악하면 법인세율이 훨씬 높은 노무현 정부 시기부터 이명박 정부 초기까지가 그 이후 법인세율 및 최고세율 적용 구간 변경으로 법인세 부담을 대폭 낮춘 시기보다 기업 투자가 더 활발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데이터를 조금 더 세밀하게 관찰하면 1997년의 IMF 경제위기,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같은 굵직한 대내외 경제 변수들이 기업 투자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짐작된다.
법인세 감세가 산출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정통 경제학 이론으로도 이단적이다. 기업의 생산량 결정이 법인세와 무관하게 이윤 극대화 지점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경제학 원론 수준이다.
이는 단지 이론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30년의 실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됐다. 지난해 다국적기업에 대한 글로벌 최저한세율의 도입 합의, 최근 선진 각국에서 도입했거나 도입 논의가 활발한 횡재세는 '바닥을 향한 경주'로 불리는 법인세 감세 정책 실패의 교훈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정부 여당은 소득세 감세 명분으로 서민의 고통 경감을 내세웠다. 서민의 소득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 할지 경계가 분명치는 않지만 소득세 경감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소득 집단이 상위 10% 이상 소득계층이라는 것은 국세청 통계로 입증된다. 2020년 귀속 근로소득에서 총급여 기준으로 대략 하위 20%까지는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냈고, 상위 40%에 이르러서야 총급여의 결정세액으로 측정한 실효세율이 대략 1%에 도달한다. 실효세율이 5% 이상인 계층은 대략 상위 15%부터다.
전체 소득계층에서 상대적으로 상위에 분포된 이들이 내는 부동산 양도소득에 대한 감세는 근로소득세 감세 못지않게 역진적일 것이 자명하다. 이것만으로도 소득세 감세가 서민을 위하는 것인지 현행 세율대로 거둬서 세수를 경제적 약자에 대한 재정지출로 사용하는 것이 서민을 위하는 것인지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현재의 인플레이션 위기-긴축 통화정책 패키지에 감세 정책은 도무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감세 정책은 상품 가격 인하를 통한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경로를 상정하는 경우에만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효용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법인세, 소득세, 부동산 조세를 인하한다고 해서 이것이 상품 가격에 반영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최근 우리 의원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의 40% 정도만이 유류 가격에 반영되었는데 유류 가격은 그나마 가격의 조세 민감성이 큰 품목에 속한다.
특정한 정책 목표를 둔 감세는 정부 정책에서 '조세 지출'로 분류된다. 조세 지출이 통화량에 미치는 효과는 정부의 재정지출과 마찬가지다. 즉 일단 정부 계좌로 빠져나갈 통화가 민간에 그대로 남게 돼 통화량 증대 요인이 된다. 이로 인해 조세 지출은 불황에 대처하는 케인스주의적 처방으로 통한다. 그런데 이 불황 대책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초유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처방책으로 나온 것이다.
정부는 최근 상당한 재정지출로 이어질 125조원대의 대규모 부채탕감 계획을 발표했다. 조세와 복지 재분배를 통한 사회적 연대 형성이 미미한 사회는 특정 계층에 대한 대규모 부채탕감을 금융위원장의 선의대로 마냥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건이 결여돼 있다. 하지만 고금리 상황에서 심각한 수준의 자영업자 대출 부실화 위험성과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규모를 감안할 때 일정 규모의 부채탕감 자체는 거시 금융 안정에 불가피했다고 인정할 만하다. 다만 금융 시스템 위기에는 그토록 공언하던 긴축 재정도 뒤로 물리는 따스한 인간애가 살인적 고물가 상황에서 실질임금의 추락을 경험하는 노동자에게는 전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위기의 초장부터 재계를 찾아 임금 인상 억제부터 고무하고, 대통령은 최근 대우해양조선 하청노동자들의 생존 투쟁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내적 정합성이 없고 실증적으로 파산한 경제 정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일관성이 있다.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 범위에서 경제 기득권에 이익을 몰아주고 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최대한의 고통 전담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더 많은 가진 계층과 부문일수록 조금 더 내는 방식이 아니라면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의 책략은 실패 확률이 높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hello@yonghyein.kr
○…용혜인 의원은
제21대 국회의원이자 기본소득당의 원내대표이다. 기본소득 실현에 대한 열망 하나로 기본소득당을 창당했고, 현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국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일당백'을 하는 국회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기본소득 공론화법', '기본소득 탄소세법', '기본소득 토지세법'을 대표 발의하며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의정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출산 이후에는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대표발의하며 임신·출산·육아·돌봄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의정 활동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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