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방치되고 있는 마당개.. 얼굴 없는 학대견, 9살 '다정이'의 해방일지
[9년 만에 풀린 목에 걸린 족쇄]
프로그램 촬영차 방문한 한적한 마을의 가정집이었습니다.
잘 관리된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의 2층 주택.
이번 촬영의 출연자인 집 주인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가던 순간, 강아지 형태를 띤, 더럽고 냄새 나는 물체가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불길한 예감 속에 촬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
“이리 와봐!”라고 부르자, 온갖 아양을 떨며 달려온 것은 괴성이 절로 나오는 몰골의 강아지였습니다.
가까이서 마주한 상태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온몸의 털은 뭉치고 굳어 악취가 진동을 했고, 한쪽 눈은 피부가 벗겨진 채 눈알의 형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주변 피부도 녹았는지 뜯겨져 나갔는지, 얼굴의 반가량이 피부조직이 없는 상태.
새하얗게 말라버린 사료와 시퍼런 이끼가 가득 낀 물, 1미터 남짓의 녹슨 목줄 등이 강아지가 살아온 애처로운 삶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습니다.
집주인과 즉각 대화를 시도해봤습니다.
“아니, 눈이 이상해서 애들 쓰다 남은 마데카솔도 발라봤는데 계속 그러더라고요. 병원은 비싸잖아요. 아는 사람이 돼지 농장을 하는데, 거기 들어오는 항생제를 좀 준다고 해서... 그걸 좀 써보든지, 아님 그냥 그쪽으로 보내려고요. 동물병원요? 애가 어차피 나이도 많고, 나이 들면 다 이렇게 되더라고요. 이런 지는 한 1년 됐나 봐요.”
“사장님, 이 강아지는 왜 키우시는 거에요?”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 나가고, 애들 학교 가면 집에 사람이 없으니 집 지키라고.”
놀랍게도 강아지는 이 집에서 9년을 살았습니다.
자기 집을 9년이나 지킨 기특한 녀석은 그저 목줄에 묶인 채 가려운 눈을 발로 긁으며 자신의 살점을 스스로 벗겨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옆집 개가 아파도 걱정이 될 만한 긴긴 세월을 함께 했건만, ‘동물에게 돈을 쓸 수 없다’는 주인의 사고를 바꾸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나 봅니다.
집주인에게 강아지의 소유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가져가세요.”라는 가벼운 말 한 마디로 강아지는 구조될 수 있었고, 태어나 처음으로 그 무겁고 더러운 목줄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촬영하던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다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고통, 쉽지 않은 재건치료]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20년 넘게 전주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한 수의사는 “이런 심각한 상태의 강아지는 처음 본다”고 얘기합니다.
“엉킨 털 미는 데 5시간 걸렸네요. 태어나서 목욕을 한 번도 안 한 것 같아요. 교통사고 당해서 온 개도 있었지만, 이렇게 피부가 다 괴사해서 녹아 없어진 경우는 처음입니다. 성향은 너무나 좋은 아이에요. 치료를 받으면서 아플 텐데 입질도 없고 사람을 무척 좋아해요.”
온갖 오물로 뒤엉켜 딱딱하게 굳은 털을 밀어낸 후 드러난 다정이의 민낯은 심각했습니다.
왼쪽 눈의 시력은 남아 있었지만 눈 주변의 피부조직이 전부 괴사해 근육과 뼈까지 노출된 상태.
수의사는 이미 녹아 사라진 피부는 되살릴 방법이 없다며 남은 피부를 조금씩 당겨 봉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사람을 잘 따른다는 수의사의 말이 가슴 아팠습니다. 오랜 시간 사람의 잔인함을 겪고도 아직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일 터.
구조 후 드디어 새로운 삶을 사는가 싶었지만, 상태가 심각해서 동네 동물병원과 필자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학대받는 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위해 앞장서는 ‘동물자유연대’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다정이의 사례를 ‘방임으로 인한 명백한 학대’로 보고, 외상치료 전문의들과 동물 구조 및 훈련 활동가들이 있는 ‘유기동물과 학대동물의 안식처, 온센터’의 입소를 결정했습니다.
전주를 떠나 멀리 남양주의 전문 보호시설에서 살게 된 다정이. 이제 다정이는 자신과 비슷한 상처가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활동가들의 보살핌 속에서 치유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운이 좋게도 다정이는 최악의 상태에 다다르기 전에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도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잔반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삶을 이어가는 또 다른 ‘다정이’들은 어떨까요?
[보호권 밖 150만 마리의 마당개]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집 지키는 용도’의 마당개들.
잘 관리되는 사례도 있지만, 많은 마당개들은 집과 배변 공간의 분리도, 올바른 영양분의 끼니나 깨끗한 물도, 스트레스를 풀어줄 산책도 없이 평생을 살아갑니다.
정부도 ‘동물보호법’ 제도 밖에 있는 마당개 문제 해결을 위해 개체수 감소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부 추산 전국의 마당개는 149만여 마리나 됩니다.
(사진 :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마당개 상당수는 걷고 뛰고 냄새를 맡는 기본적인 욕구조차 채울 수 없으며 겨울에는 혹한에, 여름에는 폭염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채워놓은 목줄이 성장하면서 목을 조여 살 속을 파고 들어도 목줄의 크기를 조절해 주지 않거나 병이 나고 다쳐도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 사례’도 많다고 언급합니다.
동물에게는 5대 자유가 존재합니다.
1.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2.불안과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3.정상적 행동(본능)을 표현할 자유.
4.통증, 상해,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5.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섯 가지 자유가 침해된 채 ‘마당개’로 살아가는 동물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행법상 동물보호법 저촉 대상은 ‘반려동물’로 한정돼 있습니다.
소유자가 자신의 마당개를 ‘집 지키는 용’이나 ‘판매용’, 또는 ‘가축’이지, ‘반려동물’이 아니라고 정의해 버리면 동물 학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마당개들은 동물보호법 테두리 밖에 방치된 채 방임과 학대에 노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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