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보릿고개'.."수급난 2년 더 간다, 국내 업체 키워야"
"자동차 수요 급감해야 2023년 수급난 해소"
"추위·더위 견디며 15년 이상 고장 없어야"
"높은 기술력 요구되지만 수익성은 낮아"
"신규업체 진입 장벽 높고, 신규 투자도 어려워"
"현대차, 국산 반도체 사용해주며 육성해야"
돈이 있어도 원할 때 새 차를 못 사는 시대다. 인기 차종은 출고까지 1년 반 넘게 기다려야 한다. 자동차 부품 수급 문제 때문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가 주범으로 지목된다. 2021년 시작된 ‘반도체 보릿고개’가 기약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만난 이성수 교수(전자정보공학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2024년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전기전자학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12년 전 차량용 반도체 설계 연구에 뛰어든, 이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가 신규 투자를 하거나 기존 라인을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없다. 수급난이 당장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지 않는다면 수급난은 계속될 것이란 설명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차량 내 부품과 전자장비의 두뇌 역할을 한다. 2021년 상반기부터 한파(미국)와 화재(일본)로 엔엑스피(NXP), 인피니언, 르네사스 등의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말레이시아의 차량용 반도체 후공정 시설마저 마비됐다.
이 교수는 “차량용 반도체는 엔엑스피 등 7개 업체가 점유율 80%를 차지한다”며 “재고를 쌓아두지 않으며, 한번 중단되면 재가동까지 최소 3개월이 걸린다. 공장 하나가 멈추면 곧바로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 멈춰선 공장이 재가동을 시작했지만, 자동차 수요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밀린 주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4주에 불과하던 리드타임(주문 뒤 제품을 받기까지 시간)은 현재 최대 30주로 파악된다.
반도체 품귀 현상은 차량용 반도체 가격을 크게 끌어올렸다. 2020년 약 8달러이던 차량용 마이크로콘트롤러(MCU)는 2021년 50달러로 급상승했고, 아직도 내려가지 않고 있다. 가격이 뛰면 공급이 늘어나야 하는데, 이 시장은 예외다. 신규업체들의 진입 장벽이 높고, 기존 업체가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추위·더위·충격 등 극한 상황 속에서도 15년 이상 견뎌야 한다. 완성차 업체들이 검증 안된 신규업체를 꺼리는 이유다. 이 교수는 완성차 업체들이 “신입이 아닌 경력직만 원한다”고 빗댔다. 기존 반도체 제조사 쪽에서도 책임은 크고 돈이 안 되는 제품이다. 교체 주기가 길고 생산 수량도 적어서다. 제조사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생산량을 늘릴 이유가 없다. 이 교수는 “지금 같은 호황을 제 발로 걷어차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수급난은 이번에 해소되더라도 반복될 수 있다. 그는 “수요와 공급이 딱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며 “만약 특정 공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수급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를 수익성이 아닌 전략적 관점에서 봐야 하는 이유다. 이 교수는 “그간 반도체 공급 부족이 발생한 적이 없었지만, 이젠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특히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늘어나, 차량 1대당 필요한 반도체가 2∼3배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제조 업체가 부족한 것도 해결 과제이다. 이 교수는 “주요 반도체 16가지 가운데 비전센서, 전력용 등 2개 정도만 국내서 잘 만들고, 나머지는 불모지”라며 “첨단 차량반도체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들지만 초기 매출이 작아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매번 수억∼수십억원씩 투입되는 시제품 반도체 제작비 지원, 장기 저리 금융 지원, 석·박사급 설계 인력 공급 등을 주문했다.
여기에 국내 완성차 업체의 책임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회사가 국내 생산 반도체를 사용해주며 키워줘야 향후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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