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인·고객 명의 도용해 휴대전화 100대 개통한 대리점주.. 피해자는 '요금폭탄'
밀린 통신요금 수백만원 청구받은 피해자도
통신사는 "범죄 막을 완벽한 방법이 어딨냐"며 '나몰라라'
A씨는 작년 12월 채권추심 회사로부터 집이 압류될 수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휴대전화 요금 등 약 470만원을 미납했다는 게 이유였다. A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인 명의로 된 휴대전화가 6대나 더 개통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A씨 아내와 친형 명의로도 휴대전화 3대가 개통돼 있었다. 휴대전화 9대를 이용한 소액결제는 1000만원이 넘었다.
A씨 몰래 휴대전화를 개통한 사람은 A씨 지인이자 휴대전화 대리점주였던 B씨였다. A씨 가족은 그간 친형제나 다름없는 B씨를 통해 휴대전화를 구매해 왔는데, B씨가 개인정보를 저장해 놨다 허위로 계약서를 작성해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이동통신사로부터 리베이트(판매장려금)를 받아 챙긴 것이었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미납 요금을 해결했다.
A씨는 사기를 친 B씨도 괘씸하지만 휴대전화가 6대나 개통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던 이동통신사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B씨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세 곳 모두에서 A씨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했다. A씨는 “허위로 작성된 계약서를 보니 내 서명과 전혀 달랐는데, 이를 걸러내는 장치도 없이 개통을 해줬다”며 “휴대전화가 개통됐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체계가 너무 허술하다”고 했다.
B씨에게 당한 피해자는 A씨만이 아니었다. 19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성동경찰서는 B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문서 위조 및 행사, 사기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B씨가 운영하는 대리점이 성동구에 있어서 성동경찰서가 수사에 나섰다. B씨는 2020년부터 최근까지 지인이나 고객 40여명의 명의를 도용해 100대가 넘는 휴대전화를 몰래 개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1명당 적게는 2대, 많게는 6대까지 휴대전화를 개통한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개통한 건 통신사가 지급하는 판매장려금 때문이었다. 그는 개통 사실을 숨기기 위해 요금을 꾸준히 납부해 왔으나, 상황이 어려워지자 이마저도 포기하고 잠적했다.
B씨처럼 판매장려금을 노리고 명의를 도용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8월까지 휴대전화 명의도용 접수 건수는 3만5107건이었다. 이중 실제로 명의도용으로 인정된 사례는 7029건이었으며, 피해액은 63억3100만원으로 파악됐다.
통신업계에서는 휴대전화 대리점들이 장사가 되지 않거나 폐업 위기에 몰리게 되면 일단 위기는 벗어나자는 속셈으로 명의를 도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고객 개인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리점 직원들이 판매장려금을 노리고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를 몰래 개통하는 것이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통신사들은 대리점주들에 대한 교육활동만 하고 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명의도용 위험성이 있는 부분에 대해 예방활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범죄를 완벽히 차단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리점이 고객 정보를 저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우리가 24시간 모니터링을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동통신사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이동통신사가 대리점을 관리·감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고, 이동통신사를 믿고 있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본인 명의가 도용되면 이동통신사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라면서도 “대리점을 취급하는 회사에게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들도 본인의 이름으로 휴대전화가 개통돼 있는지 틈틈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가 제공하는 ‘명의도용 방지 서비스(엠세이퍼)’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자신의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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