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폐기 줄이고 환경보호".. 4년간 200개 식품에 '소비기한' 추진
■ 안전한 食·醫·藥, 국민건강 일군다
- 내년부터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시행
안전 이상없는 기간‘소비기한’
올 빵류 등 50개 유형에 설정
과학적 실험… 안전계수 적용
식품폐기 줄어 발생하는 편익
10년간 7조5000억원 넘을 듯
대다수 소비자들은 식품을 살 때 습관적으로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두부와 우유, 빵과 같은 신선식품이라면 더 꼼꼼하게 살펴본다.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이라도 더 긴 식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만약 집 안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발견한다면 어떨까. 10명 중 9명은 버린다고 응답한 조사 결과가 있다. 아까워도 혹시 먹었다가 배탈이라도 날까 봐 찜찜해서다. 소비자들에게는 유통기한이 식품 폐기 시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23년 1월부터 식품에 표기되는 유통기한은 ‘소비기한’으로 바뀐다. 유통기한이 1985년 도입된 지 38년 만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내년부터 먹거리 표기 기한의 기준을 이같이 바꾸고 올해 빵류, 떡류 등 50개 유형에 대해 권장 소비기한을 설정해 공개한다. 식약처는 4년간 200개 식품유형별 ‘권장소비기한’을 설정하는 것을 추진한다. 다만 우유 등 냉장보관기준 개선필요 품목은 8년 이내 적용이 유예된다.
19일 식약업계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팔아도 되는’ 유통기한이 ‘먹어도 되는’ 소비기한으로 대체된다. 유통기한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의 60∼70% 수준에서 정한다. 이와 달리 소비기한은 냉장 등 보관 방법을 지킬 경우 섭취해도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간을 의미한다. 맛과 식감은 떨어져도 먹기에는 아무 문제 없다는 뜻이다. 이에 같은 날 생산한 제품도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20%가량 더 길어질 수 있다.
수십 년 만에 제도를 바꾸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유통기한이 지나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을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식품을 섭취할 때 식중독 등 안전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도 있다. 소비기한을 적용하면 멀쩡한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다만, 우유류에 대한 적용은 8년간 유예된다. 위생적 관리와 품질유지를 위해 냉장보관 기준 개선이 필요한 품목으로 우유류가 정해졌기 때문이다. 유(乳)업계는 냉장환경을 조성한 후 제도를 도입해달라면서 우유에 대한 유예를 요청한 바 있다. 우유류는 2031년부터 소비기한이 표기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품 폐기량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환경 보호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는 식품 생산, 6%는 음식 쓰레기가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 비용은 1조 원이 넘는다. 식품 폐기가 줄어들면 소비자와 산업계 모두 이익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식품 폐기 감소로 연간 소비자는 8860억 원, 산업체는 26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10년간 편익(사회적 할인율 4.5% 적용)을 따져보면 소비자 7조3000억 원, 산업체 2200억 원으로 예측됐다.
소비기한은 국제 사회 기준에도 부합한다. 전 세계 주요 선진국은 대부분 소비기한 표시제를 시행 중이다.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외에도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 대다수 국가는 소비기한 표시제를 운영하고 있다.
식약업계에 따르면 EU와 캐나다, 호주, 홍콩 등은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을 같이 표기하고 있다. 일본은 소비기한·상미기한(식품의 맛이 가장 좋은 기간)을 각각 표기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11년 9월 소비기한과 품질유지기한을 도입하면서 유통기한 표기 방식을 없앴다. 미국은 현재 유통기한·소비기한·품질유지기한 중에서 업체가 하나를 선택해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소비자 혼란을 막기 위해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 중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도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을 삭제했다. 소비자에게 유통기한이 식품의 폐기 시점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식약처 관계자는 “정부의 강력한 유통기한 관리, 국가 간 일자 표시 불일치 등으로 국내 식품의 수출 경쟁력이 저하되던 문제점도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기한은 과학적인 설정 실험 등을 통한 안전계수를 적용해 설정된다. 여기에는 제품별 원료, 제조공정, 포장재, 보관 온도 등을 고려한 과학적 근거가 적용된다. 우선 원재료와 제품 배합 등 제품 내부 요인을 분석한 후 공정, 위생, 포장, 저장, 유통 등 제품 외부 요인을 분석한다. 이후 과학적인 설정 실험을 통해 제품 유통 중 안전성과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으로 설정한다. 식약처는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소비기한을 도입할 때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방침이다.
■ 식약처 “11월 ‘콜드체인’ 가이드라인 마련… 냉장식품 유통환경 개선”
유통업소 봄·여름 온도 관리
산업계 계도기간 운영 검토
내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가 빠르게 자리 잡으려면 여러 가지 제도적 여건이 필요하다. 정부는 식품표시광고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 정책적 기반은 마련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는 11월 냉장식품 콜드체인(저온 유통망)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냉장 유통 환경을 개선할 계획이다. 봄·여름철 유통업소에 대한 온도 관리도 수시로 점검 중이다. 지난 3월부터는 유통업계 자율로 오픈형 냉장고 문 달기 사업을 시행해 유통 과정에서 냉장 온도 관리를 보강했다. 산업계에는 일정 기간 계도기간 운영을 검토하는 등 제도 안착을 지원할 방침이다. 이는 지난 2019년 소비자가 달걀 생산 날짜를 알 수 있도록 달걀 껍데기에 산란일자를 표기하는 ‘달걀 산란일자 표시제’를 시행할 때 전례가 있다. 식약처는 달걀 생산농가 등 생산현장이나 유통업계가 변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시행 후 6개월간 제도를 어겨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운영한 바 있다.
소비자 인식 개선을 위한 소통도 강화한다. 주된 내용은 △소비기한 개념 △식품 보관 방법 준수 △기한 경과제품 섭취 금지 등이다. 영업자는 생산·유통·접객업 등 영업종류별로, 소비자는 어린이·청소년·성인·노인 등 연령대별로 구분해 맞춤형 교육이 추진된다.
영업자들에게는 주로 소비기한 개념과 설정 방법을, 소비자들에게는 보관 방법과 주의사항을 강조할 계획이다. 소비기한제도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은 식품을 안전하게 먹기 위해서는 식품별 보관 방법을 꼭 지켜야 한다. 소비 기한이 경과된 음식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당분간 유통·소비기한 표시 제품이 혼재되는 만큼 보관 방법과 날짜 표시를 확인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기온이 높은 하절기에는 장보기 시간과 택배 소요 시간 등에 주의해 냉장 제품은 곧바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영업자는 제품 특성과 유통 환경 등을 고려해 과학적이고 안전한 소비기한을 설정해야 한다. 식품 신선도를 좌우하는 냉장·냉동 콜드체인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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