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평 철장에 자신을 가둔 노동자 "살 길을 열어달라"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조선업계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 조선업을 살리자는 한 용접공이 있다. 이름은 유최안. 나이는 40세. 지난달 22일 부터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배를 만드는 행위) 중인 선박안에 가로, 세로, 높이 1m 철장에 시너통과 함께 몸을 넣고 용접했다. 0.3평의 공간에 자신을 가뒀다.
1㎥ 철장 안에 갇힌 유최안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18일 전화로 50여 분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20년 동안 일했던 공간이 이것보다 작다. 배안의 작은 구역에서 일을 해와서 이 안에 있는 게 익숙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시위 방식을 불편해 한다. 그는 "극한의 인생을 살아왔다. 말도 안 되는 대우에 침묵해왔다. 그게 한 번에 터져나왔다"고 설명했다. 유 부지회장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가 "소박하다"며 사회가 관심을 가져주길 촉구했다. 본래 회사가 약속한 것만 이행해주면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회사가 약속 했다. 회사가 정상화되면 임금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을 지키라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이루어진 조선업 노동 구조상 최하위층에 속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30% 인상)과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나섰다. 1년여간 이어져 온 교섭에 이렇다할 진전이 없자 결국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철장에 자신의 몸을 가두고, 고공농성과 단식 투쟁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가 다시금 축포를 울리는 사이에도 삭감된 임금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의 시선은 싸늘하다. 법원은 유 부지회장에게 퇴거명령을 내렸고, 응하지 않을 시 1일 당 300만 원씩을 회사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1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크레인 고공농성을 하며 1일 당 100만 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유 부지회장은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잠깐 웃으면서도 "제도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쇠창살 시위에 나섰다.) 때리면 맞아야지 별 수 있나. 포기는 없다. 포기하면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고 결의를 보였다.
2016년 조선업계 구조조정이라는 피바람이 불었다.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직원들이 조선업의 고통을 분담 하자며 임금을 10% 삭감할 때, 시급 8300원의 유 부지회장은 상여금 150%를 삭감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남은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키자고 해서 시급이 1만300원이 되었다. 상여금은 없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2000여만 원이 날아간 셈이다. 그는 "조선소에서는 20년 전에도 시급 1만 원을 받았다. 20년 동안 동결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는 호황을 맞이했고, 회사는 흑자를 기록했다. 회사는 고통을 분담했던 정규직 직원들에게 이자까지 쳐서 돈을 돌려줬다. 하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겐 '나몰라라'였다. 유 부지회장은 "우리도 회사를 위해 고통분담을 같이 했지만, 회사가 정상화하기로 약속한 것들은 전부 지켜지지 않았다. 임금과 상여금은 깎인 채로 유지됐고, 사람은 나가고, 사람이 부족한 채로 일하니까 업무 강도가 올라가고, 일이 힘들어지니까, 사람이 다치고, 다칠 때마다 회사는 모른척한다"고 토로했다.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관리자들은 경쟁을 부추겼고, 모멸감을 주었다. 그는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목적이 일과 휴식의 접점을 찾으라는 건데, 조선소에서는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인) 옛날에 하던 잔업까지 하루 8시간 안에 마치라고 요구한다. 그걸 못하면 사람을 엄청나게 무시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멸감을 준다. 20대, 30대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50대 60대 한국인 노동자를 경쟁 붙인다. 그러면서 '형님은 나이도 많고 돈도 많이 벌면서 왜 얘들보다 못하냐'고 젊은 관리자가 소리친다. 현장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그걸 보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이 남아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과거에는 노동조건이 열악해도 임금을 많이 받는 직종으로 손꼽혔다. 이젠 그마저도 아니다. 노동자들이 떠나갔다. 유 부지회장은 "조선소에서 일하다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 상황이 너무 좋다고 한다. 같은 최저시급인데, 편의점 알바를 하지 왜 조선소에서 일을 하냐고 한다. 조선소를 나가서 돌아올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고 하면 하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이번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에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회의에는 경찰청 차장까지 참여했다. 때맞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권력 투입'을 요구했다.
유 부지회장은 '하청업체 노사간 교섭'을 강조하는 정부의 관점을 비판했다. 유 부지회장은 "하청업체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을 해봤자 폐업하면 그만이다. 원청이 우리의 노동조건을 보장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강조했다. 전례가 있었다. "과거 고통분담을 이유로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녹일 때, 우리회사 형님들하고 (상여금을 기본급에) 못 녹인다고 싸워서 하청업체 150여개 중 우리만 상여금을 안 녹였다. 그리고 우리 회사, 하청업체는 결국 폐업했다. 이후 다른 사장이 와서 이름만 바꾼 하청을 다시 개업한 뒤, 상여금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조선업계에서 하청업체의 폐업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유 부지회장은 왜 조선소를 떠나지 않고 농성을 시작했을까. 그는 "돈 몇 푼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이 상황을 바꿔야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조에 도움 받으려고 가입했다. 노조를 지켜왔던 사람들을 보니까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맞고, 하는 행동이 맞다. 이들을 놔두고 갈 수가 없다. 회사와 싸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동지들이 늘어나고 함께 싸운다고 하니까 내가 시작한 일을 무책임하게 그만둘 수가 없어졌다"고 했다.
이들은 '국민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유 부지회장은 "살 길을 열어달라"며 "밖에서는 하청노동자들 시위가 불법이냐, 합법이냐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는 이게 문제가 아니다. 이 상황이, 조선소 상황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유 부지회장과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때리면 맞을 수밖에, 포기는 없다... 포기하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좁은 공간 안에서 잘 지내고 계신가
유최안 : 잘은 아니지만 지내고는 있다. 저는 용접사다. 용접을 20년 동안 해왔고, 다른 일을 한 적이 없다. 20년 동안 일했던 공간이 이것보다 작다. 배안의 작은 구역에서 일을 해와서 이 안에 있는 게 익숙한 느낌이다. 극한의 인생을 살아왔다. 말도 안 되는 대우에 침묵해왔다. 그게 한 번에 터져나왔다. 우리의 요구는 소박하다. 회사가 약속했다. 회사가 정상화되면 임금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죽으려고 들어왔다. 유언장을 남겨놓고 왔다. 제가 (철창) 밖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당한 게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노조 조합원들도 그렇고 부모님도,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찾아와서 건강만 생각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프레시안 : 밥은 어떻게 드시는가.
유최안 : 저희 조합원들이 전해줘서 먹고 있다.
프레시안 :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가.
유최안 : 기저귀를 차고 있다.
프레시안 : 좁은 공간에 있으면 쥐는 안 나는가.
유최안 : 쥐는 안 난다. 조금이나마 목을 움직이고 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괜찮은데 잠에 들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한 시간 뒤 관절이 아파서 깨고, 몸을 풀려고 하면 잠이 깬다.
프레시안 : 덥지는 않나.
유최안 : 처음엔 더웠는데 근육이 빠져서 대사량이 떨어져서 그런지 그렇게 덥지는 않다.
프레시안 : 부모님이나 가족들은 투쟁 상황을 알고 있는가.
유최안 : 가족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해봤자 좋은 소리 듣지 못하니까. 그러다 어머니께서 티비 뉴스를 보고 놀라서 찾아오셨다. 어머니는 다른 말씀 없이 안전만 보장되면 지켜볼 수 있다고 하셨다. 여기 들어올 때는 전화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알게 되신 후 어머니와 연락하려고 전화한다. 하루 5번씩 전화한다.
프레시안 : 어머니와 전화로 어떤 말씀을 나누나.
유최안 : 어머니는 다른 거 안 바란다. 몸 상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머니께 (나의 투쟁 상황을) 잊어버리고 있으라고 한다. 걱정되서 찾아보면 결국 불안감만 증폭되는 것 아닌가. 결국 나의 선택이고 언젠간 끝난다.
프레시안 : 지난 15일 법원에서 퇴거명령을 내렸다. 퇴거하지 않을 경우 1일 300만 원씩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유최안 : 모든 노조 파업행위를 합법적으로 할 수 없지만, 각오는 하고 있었다. 제도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시위에 나섰다. 때리면 맞아야지 별 수 있나.
프레시안 :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2011년 고공농성을 할 때는 1일당 100만 원의 배상 판결이 났는데, 유 부지회장은 1일당 300만 원을 회사에 지급해야 한다.
유최안 : 물가가 많이 올랐다. (웃음)
프레시안 : 경총에서는 공권력을 투입하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유최안 : 우리가 매일 듣고있는 말이다. 저희 기준은 명확하다.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다. 포기는 없다. 포기하면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
"20년동안 시급이 1만 원... 임금 깎으며 고통분담 같이 했지만 정규직만 정상화"
프레시안 : 투쟁을 포기하면 '이대로' 살 수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이대로'는 어떤 삶인가.
유최안 : 10년 전만 해도 조선소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몸은 힘들어도 돈은 많이 받는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10년 전부터 완전히 무너졌다. 이후에는 임금과 고용상황, 노동 강도가 계속 나빠져 왔다. 몇 년 전부터 조선소가 살아나고 흑자가 나는 상황이 됐지만 (하청업체들이) 사람을 못 구한다. 조선소 일할 곳이 못 된다는 걸 사람들이 안다.
올해 6월부터 파업을 시작했지만, 파업을 안 한 사업장에도 파업을 한 효과가 나왔다. 공장이 조용하다. 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에 수주 절벽이 아니라 인력 절벽이 왔다. 입장이 바뀌었다. 노조가 오히려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올해까지는 싸워보자, 올해까지는 일해보자 이렇게 말했다. 조선소 안 좋은 거 다 알고 있는데 노조가 조합원들을 잡았었다.
프레시안 :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줄 수 있는가.
유최안 : 저는 통영사람이다. 통영의 중소 조선소가 2014년부터 문을 닫기 시작해서 2016년쯤에는 하나도 남김없이 다 닫았다. 그때부터 일하면서 임금을 떼먹혔다. 조선소가 잘 나갈 때는 일급 10만 원을 준다고 했다가 5만 원 준 적은 있어도 돈을 안 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가 문을 닫으니까 마지막 한 달 임금을 떼먹혔다. 사정이 안 좋아지니 일을 하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서 (회사를) 옮겨 다녔는데, 계속 다니던 사람들 임금은 주는데 옮겨서 일한 나같은 사람은 돈을 떼였다. 그때 한 동료가 (대우조선해양같이) 큰 조선소는 20년 ~ 30년씩 일하니까 임금 떼일 염려는 없다고 하더라. 통영이 내 집이고 집에서 멀어지면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니까 옮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업체가 폐업하고 계속 임금이 떼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대우조선 하청업체로 왔는데도) 1년만에 업체가 폐업을 하고 임금을 떼였다. 내가 가면 임금이 떼이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는가 했다. 조선소를 때려칠까 고민하고 있는데, 폐업한 업체를 다른 사람이 인수했다. 이름만 바꿔서 같은 곳에서 일을 했다. 1년 정도 지나니까 대우조선해양 정규직들이 회사를 살릴 거라면서 임금의 10%를 반납했다. 그리고 하청업체도 고통을 분담해야 하니까 상여금의 150%를 삭감하자고 했다. 당시 시급 8300원에 550%의 상여금을 받았는데, 상여금 150%가 한달의 20만 원 정도니까 '할 수 있지'하고 넘어갔다. 그 상태로 1년을 지나니까 상여금의 400%를 기본급에 녹이자고 해서 시급이 1만300원이 되었다. 연봉으로 따지면 2000여만 원이 날아갔다. 조선소에서는 20년 전에도 1만 원을 받았는데 20년 동안 동결이 된 셈이다.
프레시안 : 조선소 하청업체는 몸이 고된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20년 동안 시급이 계속 1만 원이 된 건가.
유최안 : 그렇다. 제일 억울했던 게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직원들이 임금의 10%를 반납했다고 하지 않았나. 회사가 흑자가 나니 정규직 직원들은 그 임금 10% 삭감한 부분을 1년 동안 이자까지 쳐서 다시 돌려줬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회사를 위해 고통분담을 같이 했지만, 회사가 정상화하기로 약속한 것들 다 지키지 않았다. 임금과 상여금은 깎인 채로 유지됐고, 사람은 나간다. 사람이 부족한 채로 일하니까 업무 강도가 올라가고, 일이 힘들어졌다. 그러니 사람이 다친다. 다칠 때마다 회사는 모른 척한다. 작업반장에게 사업자 등록하도록 (꼼수를) 써서 5인미만 사업장을 만들어서 4대 보험도 안넣어주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까 다쳐도 치료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그간 반복됐다. 이런 상황을 참다가 지금처럼 나섰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
"하청업체와 교섭해도 폐업하면 그만... 원청이 보장하지 않으면 도루묵"
프레시안 : 사람이 나가서 일이 더 힘들어졌다는 것은 업무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말인가.
유최안 : 남아있는 사람들만 골병이 든다. 일 할 사람이 없고 현장에 나이 많은 사람들만 있으니 능률이 안 오른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못하겠다고 도망가버린다. 주 52시간을 도입한 목적이 일과 휴식의 접점을 찾으라는 건데, 조선소에서는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인) 옛날에 하던 잔업까지 8시간 안에 마치라는 것이다. 그걸 못하면 사람을 엄청나게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멸감을 준다. 20대, 30대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50대 60대 한국인을 경쟁붙인다. 그러면서 '형님은 나이도 많고 돈도 많이 벌면서 왜 얘들보다 못하냐'고 젊은 관리자가 소리친다. 현장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그걸 보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이 남아있겠나. 다 못하겠다고 나가버린다.
프레시안 : 악순환의 반복인 것 같다.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유최안 : 죽든가 다치든가 둘 중 하나다. 조선소에서 일하다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 상황이 너무 좋다고 한다. 같은 최저시급인데, 편의점 알바를 하지 왜 조선소에서 일을 하냐는 것이다. 조선소를 나가서 돌아올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고 하면 하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솔직히 대우조선해양 정규직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하면 출근시간을 타각(출퇴근 기록을 남기기)하지 않지만, 하청은 출근시간부터 퇴근시간까지 타각한다. 타각한 만큼만 돈이 나온다.
프레시안 : 하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는데, 그래도 회사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노동부 장관은 당사자간 대화를 강조하며 '하청업체 노사가 당사자'라고 했는데.
유최안 : 하청업체하고 이야기를 해봤자 폐업하면 그만이다. 하청은 인력사무소나 다름없다. 인력만 넣어주면 끝이다. 고통분담을 이유로 상여금 400%를 기본급으로 녹일 때, 우리회사 형님들하고 (상여금을 기본급에) 못 녹인다고 싸워서 하청업체 150여개 중 우리만 상여금을 안 녹였다. 우리 회사, 하청업체는 결국 폐업했다. 이후 다른 사장이 와서 이름만 바꾼 하청을 다시 개업한 뒤 상여금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하청업체를 껍데기 상 (협상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원청이 보장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프레시안 : 조선소에서 하청업체의 폐업이 잦은 일인가.
유최안 : 그렇다. 하청업체가 폐업하면 같은 직원이었던 총무가 사장을 한다. 그리고 업체가 폐업을 하면 마지막 두 달 임금을 체불하고, 3년치 퇴직금을 체불하고, 4대 보험료를 횡령하고, 세금을 체납하고, 은행 대출을 떼먹고 파산한다. 그것만 해도 (제가 일한 하청업체 규모면) 20억 원쯤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른 이름으로 하청업체는 또 만들어진다. 사실 하청업체들도 원청에서 기성금을 올려줘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지만, 원청에 절대로 저항할 수 없다.
"돈 몇푼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다... 이 상황을 바꿔야 한다"
프레시안 : 유 부지회장은 아직 젊으니 다른 이들처럼 조선소를 떠날 수 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결심하고 파업에 돌입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유최안 : 돈 몇푼 때문에 하는 게 아니다. 노조 때문이다. 노조에 도움 받으려고 가입했다. 노조를 지켜왔던 사람들을 보니까 이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맞고, 하는 행동이 맞다. 내가 이들을 놔두고 떠날 수가 없다. 회사와 싸우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동지들이 늘어나고 함께 싸운다고 하니까. 내가 시작한 일을 무책임하게 그만 둘 수가 없어졌다.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이 상황을 바꿔야지 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지금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 앞에서는 또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인 최민(53), 계수정(50), 강봉재(52) 씨가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유최안 : 미안해 죽겠다. 계수정 동지는 업체가 4대 보험 15억 원을 떼먹어서 노조에 왔고, 최민 동지는 형수가 작년 정리해고 대상자여서 같이 싸운 동지고, 강봉재 동지는 하청 노동자들 수천 명이 잘려나갈 때 함께한 동지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노조 외에는 아무 것도,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는 조직력으로 간다. 누구라도 피해보면 같이 해결한다. 한 명이라도 피해를 받지 않게 같이 간다. 그 결의가 된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것이라 이 말도 안되는 파업도 계속 해나갈 수 있다.
프레시안 : 이 농성을 보고 있을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유최안 : 살 길을 열어달라. 지금 조선소에서 못 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람이 힘들면 돕고 거들어줘야 하는데, 이들을 마른 걸레를 짜듯이 쥐어 짜는 것을 보고 넘어가야 하나. 비인간적이다. 밖에서는 하청노동자들 시위가 불법이냐, 합법이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는 이게 합법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 상황이, 조선소 상황이 문제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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