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농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농부 목사 "이웃 섬기는 게 은총"[인터뷰]
“목회자의 본분은 이웃을 섬기는 것입니다. 손과 발을 꼼지락거려서 주변 농사일도 도와드리고, 농기계 수리도 해드리고, 마을 가꾸기도 하고 있어요. 이웃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은총입니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위봉마을에 있는 위봉교회 안양호 담임목사(60)는 ‘농부목사’로 불린다. 목회활동보다 이웃 나이 든 농부들을 도와 농사 짓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트랙터를 모는 이도 목사님이고, 고장난 농기계를 수리하느라 기름범벅이 되는 이도 목사님이다. 그가 미국 코넬대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교회가 들어선 위봉마을은 20여년 전만 해도 길이 뚫리지 않는 첩첩산중의 끝에 있었다. 다행히 소양에서 동상으로 연결되는 산길이 열리면서 그나마 차량이 다니는 시골마을이 됐다.
안 목사가 이곳에 둥지를 튼 때는 지난 2018년. 폐허를 방불케 했던 이 교회에 부임한 후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목회 활동을 하면서, 그 외 시간은 주민들 곁을 얼씬 거렸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데 힘을 보태주니 촌로들에겐 목사님이 아들 같고 친구 같다.
현재 위봉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은 37여가구에 불과하다. 70대 이상인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안 목사가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활력을 잃은 오지산골에 다름 아니었다. 가파른 산에 밭이 있어 놀리는 땅도 많았다.
안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꽃길 만들기를 시도했다. 무엇보다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다. 해바라기 6000주를 심었고, 작년에는 8500주로 늘렸다. 포토존과 산속 장터인 마운틴 마켓, 버스킹 등을 추진해 이른바 ‘스토리가 있는 위봉마을’로 만들었다.
다행히 도로가 뚫린 이후 동상저수지가 드라이브 비경으로 소문나면서 외지 방문객이 늘고 있던 터였다. 이곳은 지금 입소문을 타 사진작가들과 드라이브를 즐기는 연인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애초 30여가구에 그쳤던 마을에도 집을 짓고 이사오는 도시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 목사는 주민들의 소득을 올리는 데도 힘썼다. 해발 350m의 분지에 있는 위봉마을의 농사는 척박했다. 악조건에서 밭일을 하는 농민들을 돕기 위해 그는 사재를 털어 트랙터와 경운기·관리기·예초기·땅속작물 수확기 등 중고 농기계를 하나씩 구입했다. 이렇게 구입한 중고 기계만 총 20대에 이른다. 최근에는 어르신들의 장작 패는 모습이 안타까워 유압도끼까지 사들였다.
그는 “농기계가 생기면서 무성한 잡초도 제거해 드리고, 경사진 조그마한 밭인 ‘뙈야기밭’도 갈아드리기가 수월해졌지만 풀이 우거진 밭을 갈다가 트랙터가 거의 뒤집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면서 “힘들게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자신이 지은 농사 수확물로 나눔을 실천한다. “멧돼지 좋은 일 시킨다”며 마을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노는 땅 1600㎡에 고구마를 심어 풍작을 일궈냈다. 고구마는 집집마다 한 박스씩 배달됐다. 작년부터는 1300㎡ 규모의 포도농사를 지어 이웃과 함께 나눈다. 과거에 배워둔 제빵 기술로 빵을 만들어 인근의 학교 학생들과 군부대에 나눠주는 봉사도 수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는 “당장은 먹고 사는데 힘이 드는게 사실이지만 예배와 찬양 만이 목회 활동은 아니며 어르신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드리는 것도 목회”라고 말했다. 이어 “마을 주민들을 돕기 위해 농기계를 사들였는데 비 가림막이 없어 농기계가 녹슬고 노후화돼 안타깝다”며 “농기계 보관 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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