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문제, 누리호처럼 성공하기를[서중해의 경제 망원경](3)
2022. 7. 19. 08:08
지난 6월 21일 누리호가 우주에 진입했다. 한국이 독자적인 기술로 우주로켓 발사에 성공하기까지 (1992년 우리별 1호부터 2022년 누리 2호까지) 30년이 걸렸다. 한국형발사체 계발계획을 시작한 이래 6개의 발사체를 시도했는데, 이번에 성공한 누리호는 규모와 구성 측면에서도 가장 진보된 것이라고 한다. 누리호는 부품수가 37만여개로, 자동차(2만여)와 항공기(20만개)보다 많다. 누리호 2차 발사까지 비용은 약 1조9000억원이 들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누리호의 성공으로 한국은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발사한 11번째 나라가 됐으며, 1t 이상의 실용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킬 수 있는 7개국 반열에 올랐다.
지난 7월 1일 민선 8기 지방자치단체가 새롭게 출범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전 온라인으로 취임사를 발표한 직후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 노숙인·쪽방 주민들과 관련한 3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지원 방안은 쪽방촌 주변 ‘동행식당’ 운영, 노숙인 공공급식 횟수 확대 및 급식단가 인상, 쪽방촌 에어컨 설치 등이다.
전국적으로 쪽방촌 주민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쪽방 상담소가 있다. 2000년 처음 설치된 이후 현재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 등 5개 도시에 10개의 쪽방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서울시 실태조사에 의하면 쪽방 주민의 60% 이상이 60대 이상의 노인이어서 경제적 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는 상황이며, 75%는 정부보조금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일당 잡부나 공공근로 등 어떤 형태로든 경제활동을 하는 쪽방 거주민은 전체의 1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근로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시 빈민촌 문제는 선진국이라도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에는 ‘방리유’라 불리는 이민자 집단 거주지가 있다. 2005년 프랑스 전역을 휩쓴 이민 2세 폭동도 발단은 여기에서였다. 미국의 대도시는 인종과 소득에 따라 거주지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빈민 지역은 ‘저소득·범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고시원, 여관·여인숙, 쪽방, 비닐하우스 등 주택 외의 거처로 분류되는 열악한 비주택거주 가구가 증가했다. 빈민계층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우리 경제의 성공 뒷면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다.
쪽방촌 문제의 본질은
우주로켓 발사와 빈민촌 문제는 무관해보인다. 그러나 이 두 사안은 한 사회의 문제 해결 방식과 역량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도전 과제다. 공공정책의 관점에서는 ‘우주로켓을 쏘아올리는 기술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사회에서 왜 빈민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경제학자 리처드 넬슨은 1977년 저서 〈달과 게토〉에서 ‘달에 인간을 보내는 아폴로 프로젝트에 성공한 미국이 왜 빈민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거의 반세기 전에 제기된 이 질문은 기술적 과제와 사회경제적 과제의 본질과 차이를 생각하는 틀을 제공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논점이 몇가지 있다. 첫 번째는 사안의 본질에 대한 이해다. 우주선을 달나라에 보내는 과제는 본질적으로 기술적 문제다. 이는 기술적 돌파와 혁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우주로켓 발사는 부품 37만여개를 조합하는 빅(Big) 프로젝트이지만, 프로젝트의 본질은 공학적 과제로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기술·경제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빈곤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사회의 조직·작동 방식에 관한 문제다. 이 문제는 핵심에 대한 정의가 유동적이고 경제사회의 여러 층위가 교차하는 복합적 과제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쪽방촌 문제를 들여다보면 내부는 매우 복잡하다. 쪽방 면적은 일반적으로 1평(3.3㎡) 정도인데, 월평균 임대료는 18만원 정도다. 서울지역 1평당 아파트의 평균 월세 4만원을 크게 뛰어넘는다. 쪽방촌 거주자가 평당으로는 아주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역설이다. 쪽방촌 거주자와 관리자 및 소유자 사이에 얽힌 이해관계로 인해 거주자에게 주거급여 형태로 소득지원을 하더라도 이 돈은 소유자에게 이전돼 쪽방촌의 월세를 올리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장기적으로는 자립능력을 키우는 게 바람직하지만, 고령자가 대부분이어서 근로활동을 할 수 없는 거주자들에겐 취로사업이 먹혀들지 않는다. 쪽방촌에만 한정되지 않는 만연된 노인 빈곤문제를 생각하면 근원적으로 복지체제를 재구상해야 한다는 요구가 등장한다. 현 체제에서의 변화는 쉽지 않다. 기존의 이해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근원적인 개혁이 매우 어려워 변화는 종종 미봉책에 머물곤 한다(쪽방촌을 현장에서 다룬 2권의 책을 언급해둔다. 탁장한의 〈누가 빈곤의 도시를 만드는가〉,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의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누리호와 쪽방촌 모두 국가적 과제
기술적 과제이건 사회경제적 과제이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하다. 우주계획은 일단 합의를 보면 정파의 이념을 떠나 엔지니어들의 역량이 과제 성공의 관건이 된다. 실패를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반면 사회문제는 출발선에서부터 합의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부터 관점이 대립한다. 빈곤문제를 개인의 역량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경제 체제의 허점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정책 수단과 정부 개입의 범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근원적으로 빈곤문제의 본질은 맥락과 시스템에 의존한다. 이에 대한 관점과 이해는 객관적 과학기술 지식과 달리 한 사회의 세계관과 가치 체계를 반영한다.
누리호 성공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다음날 여러 조간신문이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쪽방과 같은 빈민촌은 사고가 나서야 (그것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주목을 받는다. 누리호와 쪽방촌은 둘 다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서울시장이 업무 첫날에 쪽방촌을 방문해 언론의 주목을 끈 것은 시정의 우선순위를 여기에 둔다는 시그널이어서 고무적이다. 쪽방촌 문제와 같은 사회경제적 과제를 다루는 정책 담당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우주로켓 발사와는 다르지만, 어쩌면 훨씬 더 어려운 과제를 다루고 있다. 우주를 향한 지속적 노력이 성공을 거뒀듯 우리가 당면한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다린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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