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명' 기류에 97세대 단일화 승부수?
왜 ‘97세대(90년대 학번·1970년대생)’일까. 97세대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은 8월28일 전당대회를 거쳐 당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한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의 관심은 이재명 의원의 출마 여부에 쏠렸다. 이재명 의원이 거취를 두고 고심하는 사이 불출마 압박이 이어졌다. 민주당 전체 재선 의원 48명 중 34명은 “지난 대선·지방선거 패배에 중요한 책임이 있는 분들은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라”고 요구했다. 설훈·홍영표 의원은 ‘동반 불출마’를 제안했다.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당내에서 ‘어대명(어차피 당대표는 이재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유력 주자이던 친문계 전해철·홍영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다. 6월28일 ‘86세대(80년대 학번·1960년대생)’ 대표주자로 꼽히는 이인영 의원이 ‘양강양박’을 만나 “세대교체론이 사그라지면 안 된다”라며 출마를 독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재명 대 97세대’의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양강’은 강병원·강훈식 의원을, ‘양박’은 박용진·박주민 의원을 가리킨다. 모두 1970년대생 재선 의원이다.
‘양강양박’인 강병원 의원(6월29일), 박용진 의원(6월30일), 강훈식 의원(7월3일), 박주민 의원(7월8일)이 잇달아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를 밝히는 자리에서 이들은 모두 자신이 민주당의 ‘새로운 주자’임을 강조했다. “새 술을 새 부대에(강병원)” “이전의 민주당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해왔고, 행동해온 사람(박용진)” “새로운 파격(강훈식).”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이들이 왜 새로운가? 86세대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직선제 개헌 쟁취라는 집단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다. 2000년대 초 우상호·이인영 의원, 송영길·임종석 전 의원 등이 국회에 입성한 이후 당내 주류로 20년 가까이 민주당을 이끌었다.
“97세대는 언론이 만든 프레임 아니냐.”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렇게 물었다. 나이가 젊다는 걸 제외하곤 97세대가 이전 세대와 다른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최병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은 97세대가 주목받는 이유를 “97세대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86세대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각 주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강병원 의원은 자신을 ‘97세대 대표’라고 소개한다. 강 의원에게 97세대의 공통분모가 있냐고 묻자, 그는 “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던 점을 지적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는 것에 대해선 다 (생각이) 같을 거다”라고 답했다.
‘어대명’ 기류 속 이재명은 침묵 중
박용진 의원은 97세대라는 규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본인과 함께 97세대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다르다고 본다. 박 의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97세대 중에서도 계파정치에 기대왔거나 악성 팬덤에 침묵하거나 동조했던 분들이 혁신의 깃발을 들고 달라진 민주당을 대표할 수 있겠냐”라고 말했다. 강훈식 의원은 “(각자 지지) 기반도 다르다(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라고 설명했다.
여론은 어떨까. 7월1~2일 KSOI는 TBS 의뢰로 ‘민주당 차기 당대표 적합도’를 조사했다. 이재명 의원의 지지율(35.7%)이 가장 높았고 박용진 의원의 지지율(16.8%)도 두 자릿수였다. 이어 김민석 의원(6.0%), 전재수·강병원(3.4%) 의원, 강훈식(1.5%) 의원 순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72.7%가 이재명 의원이 민주당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답했다.
새로 선출되는 민주당 당대표가 맞닥뜨릴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민주당은 2021년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2022년 3·9 대선, 6·1 지방선거에서 연패했다. 새 당대표는 민주당을 향한 신뢰를 회복하고 2년 뒤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전체의 35.7%, 민주당 지지층의 72.7%는 그 책임을 이재명 의원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대명’ 기류 속에서 이재명 의원은 침묵하고 있다. 선거에서 압도적인 선두는 선명한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게 전략상 유리하다. 그에 비해 역전을 도모해야 하는 후보는 상황이 다르다. 불리한 판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더 강력하고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지금 출마 선언을 한 97세대 후보들에게서 그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비교되는 게 지난해 6월 ‘0선’ ‘30대’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선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2030 청년 표심이 주목받던 시점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당시 반페미니즘 전선을 구축하며 급부상했다. 탄핵이 정당하다고 말하며 기존 보수세력과도 차이를 보였다.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 필요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당시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종 투표율은 45.36%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 직전 전당대회 투표율은 24.58%에 그쳤다.
다시 질문을 돌려보자. 97세대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용진 의원은 변화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97세대 단일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1년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김대중(당시 47세)·김영삼(43세)·이철승(49세) 세 정치인은 생각도 계파도 달랐지만, 함께해 신민당 변화의 주역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서로 다른 가치를 두고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길을 열어야 한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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