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美대법 '낙태권 폐지' 결정에 반발 성조기 거꾸로 걸어 항의
무전기 없던 시절 해상에서의 조난
'국기 거꾸로 달아 구조신호'서 파생
국기법에 '생명·재산 위기상황' 한해
국기 위아래 바꿔 게양 예외적 허용
무면허 의사 불법수술 등 부작용 우려
"임신여성 생명 위협".. 틀린 주장 아냐
대법원의 이번 결정에 반대한 사람들은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대법관이 국민 의견과 다른 쪽으로 법 해석을 내리는 것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사법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국기를 거꾸로 걸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항의의 표시다.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하필 국기를 뒤집었을까? 국기를 뒤집는 게 왜 항의의 표시가 되는 걸까?
우리는 항의의 표시로 국기를 불태우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많이 불에 탄 국기는 성조기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정부의 결정, 혹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국기를 태우는 일이 종종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미국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양키 고 홈!”을 외치며 성조기를 태웠다. 물론 많은 나라가 자국 국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금하면서 꼭 버려야 할 때는 소각하게 하지만, 버리기 위해 국기를 소각하는 것과 항의하기 위해 공개장소에서 태우는 건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물론 성조기를 거꾸로 내건 사람들이 모두 그 시점에 실제적인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 때문에 미국 남부를 포함한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성폭행을 당했거나 근친상간의 경우에도, 심지어는 산모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임신중지 수술을 할 수 없도록 주법을 수정하고 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병원에서 안전한 임신중지 수술을 허용하지 않은 결과 많은 여성이 스스로 이를 시도하거나 의사면허가 없는 사람에게서 수술을 받다가 사망하는 일이 흔했다. 이제 미국 헌법의 보호가 사라진 세상에서 과거처럼 사망하는 여성들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이 큰 위협 아래”에 처하게 되었다는 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국기법은 왜 그런 특이한 예외 조항을 두게 되었을까? 사실 국기를 거꾸로 내거는 행동은 해상에서 시작되었다. 서구 국가들이 커다란 범선을 만들어서 대륙과 대륙 사이를 이동하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그 시절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배에서 사고가 나거나 비상사태가 발생해서 선원과 선박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되면 지금처럼 무선, 위성통신을 사용해 구조를 요청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배, 특히 상선들은 정해진 항로를 따라 이동했기 때문에 항로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그 뱃길을 지나는 다른 배들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바다를 지나는 모든 선박에는 위험에 빠진 사람이나 선박에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대양에서 가장 빠르게 구조의 손길을 제공할 수 있는 건 근처 선박이기 때문이다. 1912년 대서양을 건너다가 침몰한 타이태닉호가 빙산과 충돌한 직후 근처를 지나는 선박들에 구조 요청을 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게 요청을 받은 주변 선박 선원이 모르는 다른 선박 구조를 꺼리지 않는 이유는 이런 관례가 깨지지 않고 지켜져야 자신이 위기에 빠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선상에서 일어난 위기 상황을 지나는 선박들에 알릴 방법이 없었다. 그때 사용하던 것이 깃발이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국제신호기’ 혹은 ‘국제기류신호’는 영어의 알파벳과 1에서 10까지의 숫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무늬의 깃발로 만들어서 단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에 따르면 N과 C, 두 개의 깃발을 게양할 경우 “나는 조난 중이다. 즉시 원조를 바란다”는 메시지가 된다.
물론 이런 오래된 신호기 깃발을 모든 선박이 다 갖추고 있고, 모든 선원이 숙지하고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럴 때 가장 쉽게 사용하는 것이 어느 선박이나 갖추고 있는 자국 국기를 거꾸로 거는 것이다. 많은 나라 선박이 오고 가는 항로에서 선박들끼리 서로를 확인하다가 상대 선박에 국기가 거꾸로 걸려 있으면 누구나 ‘저건 뭐지?’하고 재확인하게 되는 데서 비롯된 연락방법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거꾸로 건 깃발만이 구조신호는 아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아무 깃발에 매듭을 묶어 놓거나, 깃발이 아닌 다른 걸 걸어놓아도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다시 말하면 마스트, 혹은 깃대에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게 걸려 있으면, 심지어는 아무 깃발을 걸지 않은 경우도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바다를 지나는 배들은 항상 위험을 가정하기 때문에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고, 그런 동료애로 상대방의 상태를 민감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국기를 거꾸로 거는 것은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의 국기법이 정하는 예외 조항에 문자적으로 해당한다고 보기 힘들다. 하지만 국기법은 법이기는 해도 처벌조항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잘못 사용하더라도 특별히 강제할 방법은 없다. 오히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해서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기를 불태우는 것보다는 훨씬 더 양호하고 덜 자극적인 방법으로 국기를 거꾸로 게양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승수, 양정아에 차인 후 충격 근황…양다리 의혹 터졌다
- “풉” 尹영상 보던 이재명, ‘웃참’ 실패…“1분 만에 거짓말 들통”
- “술집 여직원이던 아내, 결혼해 빚 갚아줬더니 아이 두고 가출”...서장훈 ‘분노’
- “네 아내 3번 임신시켜서 미안…벗겨봐서 알아” 전남친이 4년간 스토킹한 이유
- "내가 이뻐서 당했구나"… 참혹한 북한 여군 실태
- “내가 그때 팔자 그랬지”… 7.9억→5.7억된 아파트에 부부싸움 났다 [뉴스+]
- “면봉으로 귀 파지 마세요”…고통에 잠 못 드는 ‘이 증상’ 뭐길래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