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2300만원 임금 떼인 건설노동자.."알고 보니 갑근세까지 속여"
<33>무법지대 직업소개소: '1%룰'의 농간
노무사 만나면서 '수수료 1%' 상한 알게 돼
불법 인지하고 고용청·지자체 문의했지만
"돌려받으려면 소송 내야" 법 허점에 무력
알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건설 일용근로자로 일해 온 권기무(가명·59)씨는 산업재해를 당해서 노무사를 찾아가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직업소개소가 매일 임금에서 떼는 10%의 수수료가 당연한 줄만 알고 살았는데, 법대로면 1%(2019년 6월 이전에는 3%)만 뗄 수 있단다. 그가 5년간 불법으로 떼인 금액은 무려 2,300만 원.
이후 권씨는 떼인 돈을 받기 위해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 신문고까지 두드렸다. 그 결과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사실상 불법이 판을 치도록 방치돼온 직업소개소의 중간착취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우선 권씨의 지난한 싸움을 따라가 봤다.
일당도 갑근세도 부당하게 떼였다
2020년 추석을 딱 일주일 앞둔 9월 22일, 권씨는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철제 거푸집을 들고 개구부(물탱크 입구) 위를 지나가려다 발이 빠졌다. 개구부는 늘 덮개나 안전장치를 씌워 둬야 하나 작업 편의를 위해 치워 뒀고, 비로 주변이 침수돼 육안으로 상태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들고 있던 거푸집이 입구에 걸친 덕에 추락은 피했지만 허리 등을 다쳤다. 건설현장에서는 다친 그에게 더 이상 나오지 말라고 했다.
이날 이후 노무사를 찾은 권씨는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너무 많다. 5년간 떼인 수수료, 갑종근로소득세(갑근세)가 모두 불법이라니.
직업소개소에서는 매일 일당 13만 원(2020년 기준)에서 10%에 해당하는 1만3,000원을 떼고, 갑근세 명목으로 2,000원을 또 가져갔다. 명세서도 따로 주지 않았다. 일정 금액을 제하고 봉투에 현금을 담아 주는 식이었다. 2015년 처음 현장 일을 시작할 때부터 과정은 똑같았다.
그런데 직업안정법의 국내유료직업소개요금 등 고시에는 일용노동자의 경우 일당의 1%만을 소개료(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또한 갑근세는 일당 15만 원 이하 일용직 노동자는 낼 필요가 없다. 권씨는 한 번도 일당으로 15만 원 이상을 받은 적이 없지만 5년간 늘 갑근세를 떼였다. 뜯긴 갑근세만 하더라도 200만 원이 넘는다.
1만6000원 VS 18만 원
산재를 신청하려 발급받은 일용근로내역서에는 한 달을 꼬박 일한 현장인데도 한달 7일만 기록됐다. 건설 일용근로자의 경우 1개월간 근로일수가 8일 이상인 경우 4대보험 가입 대상이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근무일수를 건설업체에서 축소 신고한 것으로 보였다. 권씨는 일당을 받은 기록을 토대로 근무일수를 정정했다. 명백한 근거가 있는 데도 3주가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산재 인정을 받았고, 일용근로내역서에 신고된 임금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뒤늦게 '중간착취'를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권씨가 14일을 일해 160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고 신고된 경기 수원의 한 건설현장에서 법으로 정해진 수수료는 1만6,000원 남짓. 하지만 실제로는 18만 원이 넘는 돈을 직업소개소에서 가져가는 식이었다.
권씨는 말했다. "현장에서는 10%를 (직업소개소에서) 가져가는 일이 당연합니다. 따로 설명이 없어도 으레 그렇구나 여겼고, 저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면서 직업안정법의 존재와 1% 소개료 규정을 알았고 큰 배신감을 느꼈어요."
동의서 받았다? 임금과 소개료는 빈칸
직업소개소에서는 "일당에 구인요금이 포함된 것"이라고 항변한다. 직업안정법과 관련 고시(국내유료직업소개요금 등 고시)에는 구인자(사용자)에게는 10%의 소개요금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즉 권씨에게서 뗀 수수료 10%는 구인자에게 받을 것을 합쳐서 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근로계약서에 임금 지급액수가 명확하게 적혀 있고, 수수료 설명이 제대로 이뤄졌을 때에 한정한다.
권씨가 다닌 직업소개소에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면서 '건설일용 및 간병·파출 소개요금 대리수령 동의서'를 받기는 했다. 이 동의서에는 '1일 금액은 하기와 같이 구직자의 임금과 구인자의 소개요금을 합산한 금액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설명받아 구직자 본인이 알고 있다'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일일임금과 소개요금은 빈칸인 채였다.
고용부의 관련 고시에는 '구직자에게서 받는 소개요금은 반드시 사전에 구직자와 체결한 서면계약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지키지 않았을 경우 처벌 규정이 따로 없어 이처럼 눈가림으로 이뤄지곤 한다.
"실제로는 40~50% 뗀다"
직업소개소는 수수료 정산방식을 설명하지 않았다. 권씨는 "첫날 직업소개소에 가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설명도 없이 이런저런 서류를 주면서 표시된 곳에 사인을 하라고 하기에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서명을 해야 일을 받을 수 있어서 덮어놓고 이름을 썼다"고 말했다.
'깜깜이 수수료'의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2018년 '서울지역 건설현장 단순노무직 노동실태와 정책방안' 토론회에서 당시 우상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건설업체와 유료 직업소개소 간 계약금액을 건설노동자들은 정확히 모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건설업체는 수수료 등을 포함해 직업소개소에 1인당 14~15만 원으로 계약하지만, 노동자에게는 12만 원 내외로 설명하고 여기서 또 수수료를 떼 10만 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우 연구위원은 "결국 직업소개소는 40~50% 이상의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법적 수수료의 4~5배에 해당한다"고 했다.
중간착취 금액 받으려면 소송 내라?
권씨는 올해 1월 고용노동부 경기고용노동지청을 찾았다. 직업소개소가 소개요금을 과다하게 징수했고, 이로 인한 중간착취 금액 2,300만 원을 어떻게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 진정서를 넣었다.
고용부의 답변은 금세 왔다. '국내유료직업소개소는 고용부 관할이 아니니 해당 지역의 지자체로 이송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직업안정법에서 국내직업소개소는 사업소가 있는 지자체가, 국외직업소개소는 고용부에서 관리·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이건 행정처분밖에 안돼요. 사업 정지나 허가 취소 같은." 올해 2월 권씨의 진정을 고용부로부터 건네받은 구청 담당자는 해당 직업소개소의 소개료 과다 징수 여부를 조사하겠다면서도,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처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직업안정법(제50조)은 '고용부 장관이 고시한 요금 외의 금품 수수'의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또 등록·허가 등의 취소를 규정한 36조의 시행규칙에는 소개료 기준을 위반하면 △1차 위반시 사업정지 1개월 △2차 위반시 사업정지 2개월 △3차 위반시 등록취소 처분을 받게 돼 있다. 그러나 받은 금품을 돌려주도록 하는 규정은 별도로 없다.
권씨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직업소개소에 행정처분이 내려진대도 중간착취를 당한 노동자의 피해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는 "영업 정지를 한다면 다른 사람이 다시 문을 열 수도 있고, 무허가로도 얼마든지 영업할 수도 있는데 처벌이 될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권씨는 재차 중간착취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소개요금에 대한 분쟁이나 환불은 당사자 간 계약에 따른 부분으로서 민사상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할 사항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된 내용이 법령에 규정되어 있지 않기에 지자체에서는 별도의 처분을 부과할 수 없다는 점 알려드리며 이에 대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구청의 답변이었다.
권씨는 고용부의 담당 부서에도 전화해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 역시 "현행 법이나 규정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받아내려면 민사소송을 하시라"였다. 권씨는 "매일 10만 원씩 받고 일 다니는 사람들이 수수료 받자고 수백만 원의 변호사비를 내가면서 소송을 하겠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청와대에도 호소해봤다. 올해 2월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자신이 겪은 건설현장의 중간착취를 고발하고, 과다 징수된 중간 소개료를 정부가 일단 노동자에게 내주고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임금체불의 경우 이런 내용의 진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비슷한 내용의 정책제안을 국민 신문고에도 게시했다. 그러나 청원은 공개요건인 100명의 사전동의를 채우지 못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권씨는 "사람들이 건설현장에서 일어나는 중간착취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해당 직업소개소는 제재 없이 영업 중
권씨의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해당 직업소개소는 아무런 제재 없이 영업 중이다. 사건 처리가 늦어지자 권씨는 지자체에 이유를 물었다. 지자체에서는 구인자, 즉 건설사에서 직업소개소에 소개요금을 따로 주지 않고 권씨 임금만 줬을 경우, 직업소개소가 떼는 10% 수수료가 '임금체불'에 해당할 수 있어 이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담당자는 그러면서 "직업소개소에서의 원천징수가 임금체불에 해당하는지를 노동청에 한번 알아봐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권씨가 "그런 일은 관청끼리 협조를 해야 하는 일 아니냐. 여태 처리도 안 하고 있다가 나에게 직접 하라는 거냐"고 따지자 그제야 상의를 해보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지자체 측에서는 "권씨 사례의 경우 구인자인 건설업체가 (약속한) 소개료를 지급하지 않아서 직업소개소가 임금에서 떼어 간 사안으로 보인다"며 "직업소개소를 대상으로 한 소개요금 과다 징수로 행정처분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최종 검토를 거치고 있어 이달 중에는 결론이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건설사에서 직업소개소에 약속한 구인요금을 주지 않아 구직자의 임금에서 가져갔더라도, 권씨가 이를 알아볼 방도는 없다. 고용부와 지자체 역시 들여다볼 권한이 없다. 고용부 관계자는 "구인 요금을 받았는지 여부는 갑과 을 사이의 당사자 계약이라 조사하기 어렵다"고 했다. 직업소개소 측에서 문제를 삼아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에나 알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임금체불로 인정되면 정부가 대신 받아낼 수 있지만, 이미 사업장이 없어진 경우도 적지 않은 데다 임금채권 소멸시효에 따라 3년 안에 받아내야 한다. 2015년부터 일을 시작한 권씨는 2019, 2020년의 임금채권만 남아 있다.
"노동자 머릿속 10% 수수료 룰 사라져야"
권씨가 중간착취와의 싸움을 시작한 지 약 2년이 흘렀으나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법이 그렇다 하고 공무원들도 의지가 없다"고 한탄하던 권씨는 며칠 후 이메일을 보내왔다.
권기무(가명) 씨가 보내온 이메일
일당 13만 원 중 1만3,000원을 떼이고 11만7,000원을 받는 상황에서 1만3,000원을 더 받으려다가 소개소 소장에게 찍혀서 11만7,000원을 벌 기회조차 잃게 된다면 어떤 근로자가 신고를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차라리 맘 편하게 11만7,000원을 버는 걸 택할 것입니다.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이번 결정이 저 하나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11만7,000원을 벌기 위해 침묵하는 전국의 100만 건설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부당한 관행이 형성된 가장 큰 문제는 구청의 지도 점검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개요금 과다 징수에 대한 지도 점검은 구청에서 담당하는데, 언론에 떠들썩하게 중간착취나 직업소개소 과다징수에 대한 기사가 잠깐씩 이슈가 되긴 해도 변하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법 위반을 알고도 수수방관하는 관청, 관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돌보아주는 방향으로 노동법규를 정당하게 적용하고 처벌하고 해야 공정한 세상이 옵니다.
권씨는 앞서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와 헤어지면서 "노동자들 머릿속에 10%를 소개료로 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래야만 부당한 중간착취가 사라질 여건이 조성되리라는 희망에서다.
[알려왔습니다]
5년간 2300만원 임금 떼인 건설노동자..."알고 보니 갑근세까지 속여" 관련,
이에 대해 상당수 직업소개소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사단법인 전국고용서비스협회는 “협회 소속 직업소개소 대부분은 대리수령동의서, 소개요금약정서 작성 후 구직자 본인의 임금을 제외한 구인자 부담 소개요금을 구직자로부터 전달받는 등 적법하게 운영되고 있다”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 보도는 정정보도가 아닌 반론보도입니다. 반론보도는 기사에는 잘못된 부분이 없으며, 다만 이해 관계자의 다른 주장을 반영해주는 의미를 지닙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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