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길' 가려는 이재명.. 그가 직면할 '네 번의 고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을 겨냥한 대선·지방선거 패배 책임론에도 '재신임'을 물으며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출마선언에서 '이기는 민주당'을 약속한 그는, 당대표 선출 후 가깝게는 2024년 총선, 멀게는 2027년 대선을 내다보고 있다. 이는 2012년 대선 패배 후 '친노(친노무현)계 책임론'에도 2015년 당대표로 선출됐고 2016년 총선 승리를 거쳐 2017년 대권을 거머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행로와 포개진다.
①당대표 선출 ②갈등 봉합 ③총선 승리 넘어야
문 전 대통령은 2015년 2월 전당대회 당시 '세 번의 죽을 고비'를 언급했다. 그는 "당대표가 안 돼도, 당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도,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못해도 저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강조했다. 문 전 대통령이 대권을 쟁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①당대표 선출 ②당내 갈등 봉합 ③총선 승리 등 세 차례 고비를 넘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권 재수를 노리는 이 의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당대표 선출이 급선무다.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란 관측이 나오는 만큼, 완승을 거두지 않으면 당대표 선출 이후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 당장 비이재명(비명)계의 견제와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들의 도전을 넘어서야 하는데, 이들이 단일화에 나설 경우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오는 28일 중앙위원회(70%)와 국민 여론조사(30%)로 치러지는 예비경선(컷오프) 결과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이를 여유 있게 통과한다면 '이재명 대세론'이 보다 굳어질 수 있다. 최고위원 선거에서도 친명(친이재명)계 주자들이 얼마나 입성하는지도 중요하다.
당대표 선출 후엔 '당 쇄신'이란 과제를 받아들게 된다. 이는 이 의원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의원을 비롯한 친명계 최고위원 주자들은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들은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으로 꼽혔던 '팬덤 정치'와 맞닿아 있어서다.
당 쇄신을 위해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요구하는 이가 많은 가운데, 이 의원이 강력한 지지 기반인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관건이다. 벌써부터 차기 당 지도부를 친명계가 장악할 경우 강성 지지층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또 다른 검증대는 2024년 총선이다. 문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사퇴한 배경은 당의 내분을 막지 못해서였다. 안철수 의원뿐 아니라 호남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의원들이 탈당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후 당대표 사퇴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 영입으로 2016년 총선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영입한 인사들이 다수 국회에 입성하면서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과 대선 승리의 동력이 됐다.
비명계에선 이 의원이 당을 장악하고 대선 재수를 위해 차기 총선 과정에서 공천 불이익을 받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 의원이 출마선언에서 "계파 공천, 사천, 공천 학살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라고 '통합'을 약속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文에게는 없던 '사법 리스크'도 넘어야
이 의원 앞엔 고비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바로 '사법 리스크'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두고 검찰과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의원은 "십 수년간 탈탈 털리고 있는데 먼지만큼의 흠결이라도 있었으면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비명계에서는 검·경 수사의 실체가 없다 해도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 의원과 당력이 소진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당대표 선거 경쟁자인 설훈 의원은 CBS 라디오에서 "여당 입장에서는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가 되는 게 꽃놀이패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과도한 검·경 수사가 야권에 결집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재명 첫 행보... DJ 참배와 노동 행보
이 의원은 18일 출마 선언 후 첫 공식 일정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방명록에는 '상인적 현실감각과 서생적 문제의식'이라고 쓰며 민주당을 실용적인 민생정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연세대 청소노동자 노조 사무실을 찾아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가 이제는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노동자에 대한 중간 착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합리적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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