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는 증시 하락 '빌런'?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2> 공매도, 분석해보니
코스피·코스닥 모두 상관관계 0
공매도 비중도 주요국보다 낮아
"공매도 주체 막대한 수익이 증거"
개미들 반박에 고민 깊어지는 당국
경기 침체 공포로 국내 증시가 하락하자 개인투자자(개미) 사이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증시 하락을 유발한다는 논리다. 공매도는 정말 주식시장을 쥐고 흔드는 ‘빌런(악당)’일까.
상반기 증시 공매도 상관관계 사실상 '0'
한국일보는 한국거래소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1월 3일~6월 30일) 코스피200ㆍ코스닥150 편입 종목의 주가수익률과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을 비교ㆍ분석했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는 개미들 주장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부터 이들 350개 종목에 한해서만 부분적으로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매도와 주가 간 뚜렷한 연결고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반기 코스피200 종목들의 주가수익률과 전체 거래대금 대비 공매도 금액 비중의 상관계수는 -0.08로 산출됐다. 절댓값이 1에 가까울수록 상관관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마이너스는 역의 상관관계를 뜻한다. 상관계수가 -0.08이라는 건 주가가 하락할 때 공매도가 늘어나긴 하지만 상관관계가 매우 느슨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된다. 같은 기간 코스닥150 종목의 수익률과 공매도 비중 간 상관계수 역시 똑같은 -0.08로 0에 수렴했다.
종목별로 뜯어봐도 공매도 비중이 클수록 수익률이 떨어지는 일정한 추세를 찾기 어려웠다. 상반기 코스피에서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 상위 종목은 넷마블(19.7%), 호텔신라(18.2%), SK아이이테크놀로지(17.3%) 순이었다. 1위 넷마블의 주가 하락률이 46%로 크긴 했지만, 그보다 공매도 비중은 작으면서 더 크게 떨어진 종목이 11개나 됐다. 공매도 비중 2위인 호텔신라의 주가가 한 자릿수(-9%) 떨어지는 데 그친 점 역시 예상 밖 결과다. 반면 공매도 비중이 1%도 채 되지 않는 에스디바이오센서(0.5%), 한일시멘트(0.7%)는 -29%, -36%씩 하락했다.
전체 시장에서 공매도가 허용된 코스피200 종목들의 주가가 유독 크게 하락한 것도 아니었다. 올해 초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한 공매도 가능 종목 199개의 상반기 평균 수익률은 -15%.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21.66% 폭락해 32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선방한 편이다.
“통계적 근거 약하다” vs “심리적 영향 분명”
금융당국도 지난달 증시 대책회의에서 유관 기관으로부터 ‘공매도 동향 및 분석’을 비공개로 보고받고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해당 보고서는 2020년 1월부터 최근까지 기간을 4개 구간으로 나눠 코스피지수와 공매도 거래대금 간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결과는 절댓값 기준 0.19~0.44 사이에 분포했다. 이를 근거로 보고서는 “공매도는 주가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급락장에서도 공매도 거래 비중이 작은 종목이 큰 종목보다 가파르게 하락한 예상 밖 현상이 나타났다. 코스피에서 공매도 비율 1~10위에 해당하는 종목의 평균 수익률은 -14.3%였는데, 101~110위 하위권 종목은 -18.4%까지 떨어진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1일 ‘증시 변동성 완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공매도 전면 금지를 포함시키지 못한 데엔 이 같은 통계 분석에 따른 고민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계 이면을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계량화하기 어려운 투자자들의 심리적 요인도 현실 시장에 분명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공매도가 늘면 투자 심리가 얼어붙고, 반대의 경우 시장에 낙관적 신호로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삼성전자처럼 전체 주가지수를 움직이는 대형주들의 공매도 비중이 커지면 공매도가 금지된 중소형주들도 덩달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기지 않는다는 주장은 자가당착”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공매도를 실행하는 데엔 비용(주식 대차이자)이 드는데, 주가 하락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건 공매도 세력이 수익 없이 비용 부담만 떠안는 자선사업가라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공매도 주체가 챙긴 막대한 이익이 공매도와 주가 하락 간 상관관계를 방증한다는 이야기다.
미국 등 선진국은 공매도 금지 빈도·기간↓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일본, 홍콩 등 주요국 증시는 대부분 공매도를 허용하고 있다. 전체 거래에서 공매도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한국보다 현저히 높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의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은 전체의 4.6%에 불과했고, 코스닥은 1.9%로 더 낮았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각각 50%, 40%를 넘고, 홍콩도 17%를 웃돌았다.
이들 나라도 상황에 따라 한시적 금지 조치를 활용하지만, 한국에 비해 드물게 시행하고 기간도 짧다. 일례로 2020년 3월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할 때 미국과 일본 등은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의 공매도 금지 조치는 5년 넘게 이어졌지만, 미국은 단 3주만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공매도 제한은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을 좌절시킨 원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MSCI는 지난달 24일 지수별 국가 분류를 조정하면서 “코스피200, 코스닥150 등 대형주만 공매도를 허용하는 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에 오히려 불을 댕긴 계기가 됐다. MSCI 지수 편입이 불발되면서 공매도 전면 재개를 추진할 필요성과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 개미들 주장이다.
고민 깊은 당국... 당장 금지엔 '신중론'
공매도 논쟁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당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취임 직후 “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하면 공매도 금지나 증권시장안정기금을 활용할 것”이라고 언급한 점도 부담이다. 그럼에도 당장의 공매도 금지 조치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때 공매도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당국 관계자는 "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져 속절없이 곤두박질칠 때 매도세를 끊기 위해 공매도 금지 조치를 내리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글로벌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쓰기 어려운 카드”라고 설명했다.
2020년 3월 16일~2021년 4월 30일 사이 코스피 지수가 상승한 것도 공매도 금지 때문으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국 관계자는 "지수 수준이 이미 낮을 때 공매도를 금지했기 때문에 바닥을 치고 올라간 것"이라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막대한 유동성이 풀린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란?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일정 기간 뒤에 사서 갚는 투자 기법이다. 공매도 투자자 입장에선 주식을 빌릴 때보다 추후 해당 주식을 실제 매수할 때 주가가 낮아져야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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