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업투자 발목 잡는 '시행령 규제' 103건 손본다

송충현 기자 2022. 7. 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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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발목잡는 시행령 규제]
"폐수 재활용 공장을 폐수시설 분류.. 자연보전권역 규제에 증설 제한돼"
민관합동 규제혁신 TF 출범 앞두고 전경련, 시행령 개선과제 목록 제출
이달 TF 첫 회의서 집중 논의할 듯
경기도 자연보전권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A사는 수요가 늘어나 공장을 증설하려다 또다시 정부 규제에 막혔다. 자연보전권역에서 공장을 운영할 경우 물환경보전법 등의 시행령에 따라 폐수배출시설 규제를 받는다. 공장 신증설 규모 1000m²를 넘기지 못한다.

이 회사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공장을 오가는 차량의 타이어 세척에서 발생한다. 폐수를 없애려 지하에 물탱크를 묻은 뒤 물을 끌어올려 타이어를 세척하고 더러워진 물을 전량 탱크로 회수한다. 폐수를 재활용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물탱크의 폐수를 권역 밖으로 옮겨 처리한다. 권역 내 폐수 유출이 없는데 폐수배출시설 규제를 받는 셈이다.

A사는 2018년 공장을 하나 늘릴 때도 규제 때문에 980m² 규모로 공장을 지었다. 이번에도 같은 규모로 공장을 지어야 할 상황이다. A사 관계자는 “폐수배출시설 규제로 공장을 필요한 크기만큼 짓지 못하고 작게 여러 개 지어야 한다”며 “컨설팅 비용과 건설 비용 등이 계속 중복 투입돼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기업 투자 및 산업 경쟁력 강화에 어려움을 주는 ‘시행령 규제’ 등을 이달 출범하는 경제규제혁신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에서 집중 논의한다. 고환율, 고금리, 공급망 위기 등 대외 경제 여건이 급속히 악화하는 만큼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고도 정부가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시행령 규제가 우선 목표가 됐다는 분석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이날 시행령 규제개선과제 103건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정부가 경제단체에 규제혁신 TF에서 다룰 규제 과제 선정을 의뢰했고 전경련이 기업들의 민원을 바탕으로 우선 다뤘으면 하는 시행령 규제 목록을 제출한 것이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규제 해소 100대 과제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형별규정 개선안 37건을 각각 기재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이달 중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민간 전문가가 공동 팀장을 맡는 규제혁신 TF 1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해결이 쉬운 시행령 규제부터 첫발을 떼면 규제 개혁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폐수 배출 않는데 공장 증축 ‘불가’… 플랜트 공사 외국인 고용 ‘불가’


기업 체감 ‘모래주머니’ 어떤게 있나
직원 적은 회사도 정보보호 임원 필수… 싱가포르서 항공부품 정비 재수입땐
美-EU와 달리 한국만 관세 매겨… “불합리한 규제로 기업 경쟁력 위축”
국회 공전탓 법 개정은 기약 없어… “정부 시행령 개선으로 급한 불부터”


건설기업 B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인력난이 극심해지면서 노후화된 발전소·석유화학단지 생산설비(플랜트) 개·보수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충남 서산 등 대규모 플랜트 현장이 있는 지역에서 젊은 인력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문제는 플랜트 시설과 관련해서는 주요 협력사들이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현행 국내법은 건설공사에 대해 외국인력 고용을 허용한다. 하지만 석유화학공장이나 환경시설, 발전소 설비 공사 등에 해당하는 ‘산업환경설비’ 면허 사업자는 예외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 당시 플랜트 공사에 외국인 근로자 고용실적이 없었던 데다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보안, 내국인 근로자 일자리 보호 등의 이유로 금지한 것이다.

18년이 지나면서 현장 상황도 달라졌다. B사 관계자는 “지방 건설현장 일손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전기공사, 정보통신공사, 소방공사까지 외국인을 고용하는데 유독 플랜트 공사만 제외돼 있다”며 “철골, 도장, 용접 등 단순·기피 업무만이라도 규제를 풀어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18일 정부에 제출된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하위법령 규제개혁 과제’ 보고서에는 폐수 유출이 없는데도 폐수배출시설 규제를 받는 A사의 사례같이 각 기업들이 경영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는 ‘모래주머니 규제’가 대거 포함됐다.

주요 그룹 지주회사인 C사의 경우 전체 직원이 40여 명에 불과한데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임원급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를 별도로 고용해야만 한다.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에 해당하는 회사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이 회사 홈페이지는 계열사 소식을 전달하는 목적이어서 개인정보를 다룰 일이 없다. 회사 측은 “지주회사나 특수목적법인 등 정보보호 필요성이 낮은 기업은 CISO를 부장급으로 완화하거나 겸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미비한 제도로 해외 수주 경쟁력에 타격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항공업계는 싱가포르에 정비용 부품을 수출했다가 수리 후 재수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른 나라와 달리 관세 면세 조항이 없어 항공정비 산업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이 싱가포르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은 자국법이 우선 적용되는데 국내법에는 면세 규정이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무관세 혜택을 받는 경쟁국 항공사와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계 경영난이 가중되자 정부가 한시적으로 올해만 이를 면제해주고 있지만 결국엔 궁극적인 해결책이 마련됐으면 한다는 게 업계의 바람이다.

산업계에서 제안한 이번 규제개혁 과제가 정부 시행령 개선에 집중된 이유는 최근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현장의 어려움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21대 후반기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이 50일 가까이 공전하면서 각종 규제개혁안의 입법 논의도 기약 없이 미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험로가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주도해 개정 공표할 수 있는 시행령부터 풀어나가자는 취지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 민간 주도 경제의 활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현장 경영 환경 제고가 시급하다”면서 “정부 의지만 있으면 속도를 낼 수 있는 시행령 이하 행정 입법을 통해 우선적으로 규제 개선의 마중물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초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출한 ‘기업이 바라는 규제혁신과제 100선’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다. 대한상의의 100대 과제에는 신산업 및 신기술 관련 규제 개선안이 26건으로 가장 많다. 여기에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변경만으로도 풀 수 있는 규제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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