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헌혈증 1942장..광주 정광고 학생들의 '생명 나눔'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에 '희망'
헌혈대가 마련된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 학생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익숙한 듯 차례에 맞춰 문진표를 작성하고 헌혈대에 올라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뾰족한 바늘이 팔에 꽂히자 눈을 질끈 감는 학생부터 ‘앗’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도 보였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대기하던 일부는 겁에 질려 도망갈 법도 했지만, 학생 대부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이 학교 학생들에겐 헌혈이 꽤 익숙한 듯 보였다. 광주 정광고등학교에서 지난 7일 진행된 헌혈 캠페인의 모습이다.
헌혈에 참여한 정광고 2학년 이민재군(17)은 “작년에 선배들이 헌혈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번에 참여했다”며 “관심과 나눔이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계기”라고 말했다.
정광고 학생회장인 3학년 이지범군(18)은 “고3 수험생으로 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저의 작은 헌혈증서 하나가 혈우병 환우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시간을 쪼개 참여했다”며 “졸업한 뒤에도 꾸준히 헌혈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광고 학생들이 10년째 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들을 위한 생명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13년부터 기증한 헌혈증만 1942장에 달한다.
정광고 학생과 교직원은 지난 16일에는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생명 나눔 한마당 행사를 갖고 1년간 모은 현혈증 200장을 혈우병 환우회에 기증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화엄사 스님들의 권유로 대구 능인고 학생 20여명도 함께 참여해 ‘영호남이 함께하는 생명 나눔 행사’로서 그 의미를 더했다. 대구 능인고 학생들은 정광고 학생들의 헌혈 나눔 소식을 듣고 올해 준비한 헌혈증 100장을 기증하기도 했다.
정광고 학생들의 헌혈 행사는 2013년 7월 교내 동아리와 학생회를 통해 처음 시작됐다. 당시 청소년 범죄 증가와 함께 인터넷 악플 문화가 확산하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보자’는 한 교사의 제안을 학생들이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당시 학생 120명은 168장의 헌혈증서를 모아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에 기증했다. 이후 이런 학생들의 모습은 점차 학교 전체에 귀감이 되었고 현재는 교직원 등 전체가 참여하는 학교 대표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헌혈증 기증 역시 꾸준하다. 매년 적게는 120장에서 많게는 208장까지로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까지 광주전남혈액원과 혈우병 환우회 등에 전달한 헌혈증만 모두 1942장에 달한다.
참여 인원도 2016년부터는 200명대를 넘어서면서 학교 측은 1년에 한 번 진행하던 헌혈 행사를 두 차례로 늘렸다. 또 장소도 헌혈 차량에서 교내 체육관 전체로 확장했다. 헌혈이 진행되는 날이면 학교 체육관에는 헌혈대 12~13개가 마련된다. 헌혈은 각 학급 반마다 시간대를 나눠 진행된다.
함병권 교장은 18일 “학생들이 바쁜 학교 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미 있는 행사에 많이 참여해 정말 대견스럽다”며 “학생들이 헌혈을 통해 소중한 나눔의 가치를 깨닫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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