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들었다, 외롭던 고시원 생활에 '이웃'이 생겼다

김보미 기자 2022. 7. 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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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고시원 1인 가구 위한
주민센터 '원데이클래스' 반향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 12일 열린 고시원 1인 가구의 ‘테라리움’ 만들기 수업에서 주민들이 각자의 어항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일주일 어떻게 지내셨어요?”

“주말에 동묘에 갔다가 약속 있어서 성수동에 들렀어요. 어제는 주민센터에 상담받으러 왔잖아요.”

“어르신은 뭐하셨어요?”

“나도 동묘에 갔었어요. 자전거 새로 사러.”

“도난 방지 자물쇠도 같이 사셨어요? 다음에 두 분이 같이 동묘 가시면 되겠네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 주민자치실에 모인 박정수씨(61·가명)와 최성민씨(67·가명)에게 주민센터 윤덕규 주무관이 안부를 묻자 이야기가 시작됐다.

“얼굴이 좀 나아지신 거 같아.” “나아지긴. 잘 먹어야 하는데…. 잘 안 되네.” 그리고 김주철씨(68)가 주무관에게 물었다. “오늘은 뭐 만듭니까? 지난주에 만든 방향제 향이 방 안 가득 차서 너무 좋아요.”

세 사람은 주민센터에서 멀지 않은 고시원에 혼자 사는 주민들이다. 같은 고시원 2층과 3층에 짧게는 반년, 길게는 5년간 살았지만 한 달 전 이곳에서 처음 만나, 처음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딱히 특별할 것 없이 주고받은 이날의 대화가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과의 교류였다.

“다들 혼자 있는 게 익숙하잖아요. 텔레비전이 가장 친한 친구지. 사람들이 수시로 들고나는 고시원은 옆방 사람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말을 먼저 걸었다가 거절당하면 상처받으니, 그게 걱정돼 인사도 잘 안 하게 되지.”

올 초부터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최씨가 말했다. ‘이웃이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고시원 1인 가구는 다른 주거 형태보다 고립되기 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중장년 비율이 높아 고독사 등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교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취약계층이 많이 사는 고시원을 대상으로 이 같은 ‘원데이 클래스’를 꾸린 건, 거주자들을 ‘방’ 바깥으로 이끌어 관계망을 만들고 여가 활동을 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서교동에는 58개(마포 지역의 38%)의 고시원이 밀집돼 있다.

서교동주민센터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도록 같은 고시원에 거주하는 1인 가구 6명과 협의체 위원들로 수업을 구성했다.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도장과 부채, 방향제를 만들었다. 이날은 마지막 ‘테라리움’ 수업이다. 어항 바닥에 야자활성탄을 깔고, 난석(휴가토)을 올린 뒤 두껍게 부은 배양토 위에 이끼를 심어 각자의 정원을 만들었다.

“잘하시네. 내 것도 좀 봐줘요.” “이끼가 시루떡 같아. 농사짓는 거 같지 않아? 식물이랑 흙을 만지니 힐링 되고 너무 좋지요?” “사람은 흙이랑 가까워야 해.”

수업 전에는 “차라리 먹거리를 지원해 주는 게 낫지 않냐”며 회의적이었던 고시원 주민들도 이젠 서로 친해질 기회를 갖고 사람들과 활동하는 시간을 보내는 데 만족감이 컸다. “같은 고시원 사람과 처음 대화했다”는 참여자들은 “앞으로 주민센터의 다른 교육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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