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내 곁에는 왜 '우영우'가 보이지 않을까
市 "장애인의무고용 저조한 기업 대상 간담회 진행"
"제도 재정비보다 인식 개선이 급선무"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요즘 라노의 소확행 중 하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시청. 주인공 ‘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변호사인데요. ‘영우’가 동료들과 함께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흐뭇하다가도 자폐를 앓고 있단 이유로 부당한 일을 겪을 때면 기분이 씁쓸해집니다. 그렇게 울고 웃던 라노의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스칩니다. 왜 지금껏 한 명의 ‘영우’도 마주치지 못했을까요? ‘영우’처럼 직업을 갖고 있는 발달장애인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누가 그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 있을까요?
지난 14일 오전 10시. 실습 수업이 한창인 부산발달장애인훈련센터를 찾았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 설명에 따라 정해진 길이에 맞게 전선을 자르거나 피복을 벗겨 단자에 결속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이곳에선 조립·포장 기술이나 ▷컴퓨터 활용 ▷우편 분류와 사서 보조 같은 직무 교육을 합니다. 또 국어·영어·수학 수업과 직장생활에 필요한 외모·위생·시간 관리 요령도 가르칩니다. 올해 1월부터 이곳에 다니고 있는 배다미(20) 씨는 “소심했던 성격이 활발하게 변했다. 나중에 취업하고 첫 월급을 받으면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합니다.
훈련센터는 2019년 12월 문을 열었는데요. 1년에 80여 명의 발달장애인들이 6개월 교육과정을 수료합니다. 이 중 90%가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요. 하지만 모든 발달장애인들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옥성윤 선생님은 “발달장애인의 ‘취업’이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업무 처리 능력은 반복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다 해도 혼자 출퇴근이 가능한지와 기본적인 업무 지시를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최소한의 능력을 갖췄는지 입학 전에 평가과정을 거칩니다”고 설명합니다.
라노가 함께한 수업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선생님과 학생들의 유대감입니다. 정인현 선생님은 학생들이 졸업한 학교, 가장 좋아하는 과목, 특별한 강점을 줄줄 꿰고 있었어요. 개개인의 특성과 기호를 잘 알고 있어야 나중에 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는 직무로 연계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 선생님은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이 직장 생활 잘 하고 있다고 인사하러 찾아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직장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면 다른 직장을 계속해서 알아봐 주는 일도 선생님들의 몫입니다.
선생님들과 대화하면서 ‘제2의 우영우가 많아지려면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정부는 1991년부터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올해는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민간기업은 3.1%(공공기관은 3.6%)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합니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부과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장애인 고용보다 벌금으로 ‘퉁 치려는’ 기업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1년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 15세 이상 등록 장애인 17만2615명 중 취업자는 5만8032명. 전국 16개 시도 중 장애인 고용률 11위(23.3%)입니다. 올해는 어떨까요. 부산시 담당자는 “장애인 의무 고용 이행률이 저조한 기업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이 자구 노력을 하면 의무 고용 불이행 명단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상황은 아직 밝힐 수 없다”고 하더군요.
장애인 고용률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기업들은 1년 미만의 단기 체험형 인턴을 채용해도 의무 고용률에 반영되는 점을 이용해 한시적 일자리를 늘리는 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노모(24)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훈련센터에 입학했습니다. 그 결과 OO전자에 취업했으나 1년 뒤 계약이 끝나 퇴사. 다시 훈련센터→취업→계약(2년) 종료→퇴사→훈련센터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산장애인부모회 도우경 회장은 “발달장애인도 노동권을 가진 주체이다. 이들이 잘 할 수 있는 맞춤 직무를 개발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비장애인에게만 노동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장애인을 시혜를 받는 대상 또는 잉여로운 존재로 보는 차별의 관점을 더 굳건하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어떻게 해야 상황이 나아질까요. 라노는 정부가 제도 재정비에 나서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했는데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개선’이 더 급하다고 입을 모았어요. 김성민 부산발달장애인훈련센터장은 “장애인 고용이 단기 일자리에 치중된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으로 장애인 고용을 강제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드라마 ‘우영우’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합니다.
질적 개선에 앞서 양적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체험형 인턴이나 계약직 고용이 늘어나는 상황을 마냥 나쁘게 보지 않는다. 비장애인들도 대학 졸업하자마자 정규직으로 바로 입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느냐”라고 합니다. 전 교수는 이어 “아직 국내에 장애인을 단 한 명도 고용해 보지 않은 기업이 많다. 이러한 기업들이 어떤 형태로든 장애인을 채용하는 경험을 하게끔 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장애인 고용부담금은 최저임금에 연동돼 해마다 늘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이로 인해 ‘부담금을 내는 것보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인식하는 기업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 교수는 전망합니다.
드라마 ‘우영우’를 보는 시청자들은 “자폐증을 가진 천재변호사 ‘영우’보다 ‘영우’ 동료들이 장애를 사랑으로 감싸 안아주는 모습이 더 판타지 같다”고 합니다. 우리도 발달장애인이 문밖을 나설 때 영우의 동료처럼 할 수 있을까요? 전국의 발달장애인은 총 25만5207명이라고 합니다. 부산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은 1만4638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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