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론 반도체 공장 못 돌렸는데".. 산업계, 원전 활용 환영
대기업 중 국내서 탄소중립 없어
민간 탄소시장 적극 활용 의견도
"국내 재생에너지 자체가 국내에서 워낙 적으니 원자력발전을 재생에너지 실적으로 인정해준다면 환영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 국내 제조업체 관계자는 18일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 방향성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업계에서는 원전이 RE100(재생에너지 100%) 실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유럽연합(EU)이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 분류체계인 EU 택소노미 편입을 결정한 만큼 원전도 탄소중립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활용하애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RE100 가입이나 탄소중립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09TWh로 전체 발전량의 7.5%에 그쳤다. 이는 전력 소비가 많은 국내 5대 기업의 연간 전력 사용량만 합해도 쉽게 초과하는 규모다. 지난해 기준 전력 소비가 많은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가 18.41TWh로 가장 많았다. 이어 SK하이닉스 9.21TWh, 현대제철 7.04TWh, 삼성디스플레이 6.78TWh, LG디스플레이 6.23TWh 순이다.
국내 5대 전력 사용 기업의 사용량(47.67TWh)도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없는 만큼 국내 100대 전력 사용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RE100 선언 기업이 많을수록 낮은 재생에너지 때문에 RE100 달성이 더 어려워지는 셈이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공장이 한국에 밀집해 있는 삼성전자가 해외 투자자들의 압박에 국내에서 RE100 달성을 본격화하면 국내 재생에너지의 약 42%가 소진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환경 때문에 RE100 목표를 제시한 국내 제조 기업들 중 국내에서 RE100이나 탄소중립을 달성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LG이노텍, LG에너지솔루션,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실트론, 현대모비스, 기아, 현대차, SKC, 현대위아, SK하이닉스 등 10개의 한국 제조기업이 RE100을 선언했지만, 공장 위주일 뿐 국내 본사나 연구소 등 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한 곳은 없다.
기업들은 원활한 국내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다.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가 진행한 '재생에너지 조달 현황 및 제도에 대한 기업의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0%는 현재 재생에너지 조달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효율적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4%에 불과했다.
재생에너지 조달 장애물 중 개선이 가장 시급한 요소의 우선순위로는 정부의 재정적·제도적 지원 확대(38%)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재생에너지 가격 현실화(24%),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21%), 경영진 인식 개선(16%) 순이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상황상 재생에너지로만 달성이 쉽지 않으니, 신재생에너지로 RE100을 달성할 때까지 원전은 보완적인 수단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원전을 포함해 신재생에너지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들은 정부의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계획에 대해 '가야 하는 길'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행기업들이 과도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2026년부터 적용하는 만큼 준비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방법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를 해야 이마저도 준비할 수 있다는 입장은 같았다.
정부와 경제계는 국내 배출권거래제(ETS)의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 탄소시장을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민간 탄소시장은 법적 규제와 무관하게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기업이 참여해 '탄소 크레딧'(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분을 거래할 수 있도록 발급한 인증서)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시장 운영 방향도 민간이 주도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민간 탄소시장이 활성화되면 우리 기업들이 이를 통해 협력업체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관리하고 ESG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류·플랫폼·철강·시멘트 등 직접 감축에 한계가 있는 기업들도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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