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대표 "제사·차례상 간소화, 홍동백서·조율이시 근거 없어"

이강은 2022. 7. 1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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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간소화' 추진
최영갑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 신임 회장
“설과 추석만 되면 차례상 음식 준비로 스트레스를 겪는 여성, 가족 불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차례·제사 음식을 간소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영갑(59)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 신임 회장은 18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민 고충을 덜어드리는 것이 유도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제사상을 차릴 때 신위를 기준으로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홍동백서’나 대추·밤·배·감 등 제사상에 필수적으로 올려야 하는 과일을 일컫는 ‘조율이시’ 등은 어떤 근거도 없다”며 “다음달 중순에 의례 간소화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에는 기제사(忌祭祀·해마다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도 간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국 유림조직인 성균관유도회총본부는 지난달 제25대 회장에 최영갑 박사를 선출했다. 최 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최 회장은 성균관대에서 유교 철학을 전공한 후 30여년간 유림활동을 해온 정통 유학자다. 그는 “오늘날 성균관은 전통의 맥을 계승하기 위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유교에 대한 교육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오늘날에도 성균관에서는 다양한 강좌와 교육을 통해 전통 수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친근한 생활 속 유교가 될 수 있도록 달라진 시대상황에 맞춰 유교 현대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례(茶禮)를 제사상처럼 차리는 게 문제”라며 “차례는 글자 그대로 간소하게 지내는 것으로 18∼20가지인 차례상 음식 수를 10가지 내외로 조정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의례 간소화’ 작업이 한창 마무리 단계인데 8월 중순쯤 공개하고, 내년에는 기제사(忌祭祀)까지 간소화하겠다고 소개했다. 

이어 간소화된 차례상에 올릴 10가지 음식으로 “밥과 국, 과일, 나물, 포(脯), 술 정도가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과일이나 나물은 2∼3종류 정도만 상에 올리면 될 것이라고.  

최 회장은 차례나 제사상의 대표 음식인 전(煎)이 빠진 것과 관련, “예전에는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화려한 유밀과(油蜜菓)나 기름에 튀긴 음식은 권하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전했다.

유도회총본부에 따르면 고려말 포은(圃隱) 정몽주가 들여온 ‘주자가례(朱子家禮)’나 15세기 말 성종 2년에 완성된 조선시대 기본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벼슬 품에 따라 조상 몇 대(代)까지 제사를 모셔야 하는지를 적은 제례규정이 담겨 있다. 경국대전을 보면 3품 이상은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 ‘4대’를 제사 지내고, 6품관 이상은 증조부모(曾祖父母)까지 3대,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祖父母)까지 봉사(奉祀)하며 서민(庶民)들은 부모만 제사 지낸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양반들이 하던 것처럼 하는 게 제대로 효도하는 것이란 풍조가 생기면서 누구나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1969년 정부가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해 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내라고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이후 시대가 급변하며 오히려 제례 문제는 집안 갈등의 불씨가 되곤 했다.

최 회장은 “국민과 유림분들을 나눠 각각 1000명 정도씩 설문조사를 진행하고자 한다. 질문은 ‘몇 대’까지 제사를 지내는 게 좋은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라며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한 세태에 근거해 유교 변화의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역대 유도회총본부 회장 중 가장 어린 최 회장이 용감하게(?) 의례 간소화 등 유교 변화를 추진하는 건 ‘시대가 변하면 시대에 맞게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유교 현대화’를 표방해왔어요. 그런데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국민에게 유교라고 하면 ‘꼰대’나 고리타분한 이념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조선시대 유교를 그대로 가지고 온 느낌이랄까요.”

최 회장은 우선 유교가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그간 잘못 알려진 유교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또 어려운 한문으로 된 유교 경전도 최대한 한글화시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처럼 만들어볼 계획이다. 

그는 임기 3년 동안 ‘성균관 문묘’에 더 많은 유교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 문묘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 최치원, 퇴계·율곡 선생 등 39인의 유교 선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여기에 남명 조식 선생이나 일제 강점기 때독립운동을 폈던 유학자 심산 김창숙 선생 등 ‘살아있는 유교’를 대변할 이들의 위패를 새로 모시자는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등 나라를 지켰던 무인의 위패도 모시는 방법도 강구하기로 했다. “추가로 위패를 모시는 문제는 논쟁거리가 돼야 합니다. 엄청난 반대자들이 많이 생길 거예요. (하지만) 문묘에서 빠져있는 분 중에 훌륭한 분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이런 분들을 추배(趨拜)를 해야 유교가 살아있게 되는 겁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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