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는 '그 섬'에 갑니다

한겨레 2022. 7. 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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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러리 티티섬'을 가보니
경기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트윈&틴' 중심 공공도서관
청소년 생활권 속 '제2의 집'..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서
함께하는 즐거움까지 알게 돼
11층 티티라운지에서 책을 읽는 청소년들의 모습.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우리도 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요”

“나만의 아지트요!” “제2의 집!”

‘나에게 ‘티티섬’은 ○○○이다!’라고, 빈칸을 채워달라는 질문에 청소년들이 참신한 답변을 쏟아냈다.

“책도 많고, 누워 쉴 곳도 있고, 춤출 공간도 있어!” 조유미(19)씨는 이런 친구 말을 듣고 ‘라이브러리 티티섬’(이하 티티섬)을 처음 찾았던 지난해 연말을 기억한다.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과 완벽히 일치하는 공간”이었다. “11층 ‘티티라운지’ 해먹에서 쉬거나 친구들하고 수다 떠는 거 좋아해요. 경치도 멋져요. 보통 도서관에선 조용히 있어야 할 거 같고, 괜히 눈치도 보이거든요. 티티섬에선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어요.”

말만 들어도 행복한 모습이 그려진다. 티티섬? 어디에 있는 섬일까?

(왼쪽부터) 티티섬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허승, 최윤서, 조유미, 박주은씨. 김청연 작가

‘섬’처럼 자유로운 우리 도서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광명로. 8호선 수진역 부근에 위치한 대연빌딩. 티티섬은 이 건물 9층부터 12층 절반까지 3.5개 층에 걸쳐 만들어진 트윈(12~16살)과 틴(17~19살) 중심의 공공도서관이다.

트윈은 ‘틴에이저’(Teenager)와 ‘비트윈’(Between)을 합친 말로, 어린이라 또는 청소년이라 부르기 애매한 10대 초반을 뜻한다. 한창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탐색할 시기이지만 이들에게 이런 시도를 해볼 공간과 기회는 많지 않다. 티티섬은 도서관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여러 형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설립과 운영은 도서문화재단씨앗이 하고 있다.

티티섬은 ‘트윈’(tween)과 ‘틴’(Teen)을 의미하는 ‘티티tT’와 ‘섬’이 합쳐진 단어다. 설계 단계에 참여한 트윈과 틴 대표 그룹(TNT Architect) 가운데 한 명이 “‘편안하고 여유로운, 가깝지만 살짝 떨어져 있는 ‘섬 같은 공간’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데서 힌트를 얻었다.

10층과 11층의 청소년 전용공간에서는 각자의 관심사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활동이 일어난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공간 구성부터 청소년 의견 청취

햇빛이 유독 쨍하던 지난 7월2일. 조씨가 말한 11층 티티라운지에 가봤다. 소문처럼 중원구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가슴이 뻥 뚫렸다. 성남여고, 성일정보고 등 인근 학교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 초·중·고교 수 9곳, 학생 수 5600여명. 티티섬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곳이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일상생활권이기 때문이다. 티티섬 쪽은 “청소년들이 일상 아무 때나 이곳을 쉽고 편하게 찾아올 수 있었으면 했다”고 전했다.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와요. 제가 집에 없으면 부모님이 여기 간 줄 아세요.” 박주은(14)씨에게 이곳은 ‘일상’이었다.

지난 7월2일 9층 모두라운지에서 열린 오프라인 안전 상식 오엑스(OX) 퀴즈 활동 모습. 김청연 작가

티티섬 공간은 크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9층·12층)과 트윈&틴 전용공간(10층 일부, 1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업용 고글부터 전동 드릴, 나무 합판, 재활용 캔, 물감, 각종 전자기기, 악기 그리고 소규모 인공암벽까지. 특히 10층은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재미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작업 도구가 구비된 10층 티티랩에선 나무로 만든 칼, 테이블, 고카트(레이싱카트) 등 청소년들이 직접 작업해 완성한 다양한 물건들도 눈에 띄었다.

11층에는 각각 트윈, 틴 전용공간을 따로 두면서도 중앙에 양쪽이 모두 이용하는 티티라운지를 만들었다. 으레 청소년은 ‘혼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함께’하는 공간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다.

티티섬 공간은 크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9층·12층)과 트윈&틴 전용공간(10층 일부, 1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10층은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재미있는 공간이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공간 구성에는 청소년의 목소리도 반영됐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 아닌, ‘청소년의 공간’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지역 청소년 23명과 약 4개월 동안 인터뷰와 워크숍을 진행했다. 조은정 관장은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쉬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쉼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봤어요 ‘스스로 결정해서 원하는 걸 하고 싶다’는 의미가 읽혔죠. 즉 ‘자기결정권’이 주어지는,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청소년과 다른 세대와의 ‘분리’를 목적으로 전용공간이 있는 건 전혀 아니다. 티티섬 전체가 청소년을 환대, 존중하더라도 어른들과 함께했던 이전 다른 공간에서의 경험들 탓에 자기 목소리 내는 걸 주저하는 이들도 있겠다 생각했다. 조 관장은 “전용공간은 청소년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내면의 힘을 길러봤으면 하는 의미로 만들었다”며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인 등 모두와 어우러지는 공간에서도 청소년들이 자기다운 모습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9층 모두라운지에서 연말파티 기획단이 회의를 하는 모습.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어디서든 자유롭게 원하는 경험 해봐요

티티섬 각 공간은 그 쓰임새를 규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초록 식물이 있는 9층 텃밭에서 공부를 한다. 한쪽 벽면에 전신거울이 달린 10층 티팟2에선 춤을 출 수도 있지만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실컷 떨 수도 있다. 이용자 스스로 공간의 용도를 발견해 어디서든 자유롭게 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경험은 혼자 해도 되고, 함께 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서로 몰랐던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일을 도모하는 사례도 나온다. 최윤서(13)씨는 고카트를 만들며 각기 다른 경험, 재능이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맛봤다. “조립을 좋아하긴 하지만 혼자 카트를 제작하는 건 힘들거든요. 애초 ‘이렇게 팀을 꾸려서 하자’고 한 건 아니고요. 과정에서 나무 잘 자르는 사람, 색칠 잘하는 사람 등 참여자가 하나둘 더해졌어요. 함께 완성하니 더 뿌듯했죠.”

책은 티티섬 각 층 어디에나 있다. 책을 꽂을 땐 도서관 표준 분류법인 한국십진분류법(KDC)·듀이십진분류법(DDC)이 아닌 티티섬만의 분류체계를 적용했다. 한 예로, 모두의 부엌에는 ‘야무지게 먹어야지’라는 주제로 음식 관련 책이 꽂혀 있다.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연계해 책이라는 콘텐츠를 만나보는 식이다. 한편, 법정대리인이 없거나 아이핀 인증이 어려워 회원가입에 어려움을 느끼는 청소년들을 위해 가입 절차를 간소화했다.

이용자 스스로 공간의 용도를 발견해 어디서든 자유롭게 원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경험은 혼자 해도 되고, 함께 할 수도 있다.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사서 선생님’ 아닌 ‘닉네임’으로 수평적 소통

티티섬에선 이용자를 ‘용자’, 운영자를 ‘영자’로 부른다. 영자들은 각각 ‘코난’, ‘당근’ 등의 닉네임을 쓴다. 조 관장의 닉네임은 ‘라라’다.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수평적 소통을 하며 함께 더 나은 티티섬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나온 문화다.

때론 영자와 용자의 역할 경계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허승(18)씨는 티티섬에서 열린 행사(‘삼 작가’(웹툰작가)와의 만남, ‘도티’(크리에이터)의 강연 등)에서 ‘영자’로 활약했다. “사전 예약자 명단 체크하고, 자리를 안내하는 등 스태프로 일했어요. 보통 행사에서 청소년은 관객 입장이 되기 쉽지만, 여기선 저희가 주도해 뭔가를 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제 또래만이 아닌, 다양한 세대와 친구가 된다는 점도 좋습니다.”

티티섬이 지향하는 문화를 담은 ‘매니페스토’.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붓 좀 잘 닦아.” 공간 곳곳에 청소년들이 붙여둔 메모는 이곳이 ‘함께’, ‘서로를 존중하며’, ‘능동적으로’ 꾸려가는 공간임을 잘 보여준다. 티티섬의 지향점을 담은 5가지 ‘매니페스토’는 이런 문화가 자리를 잡는 데 역할을 했다. ‘여긴 공짜 아니고 공공!’, ‘실수, 실패, 쓸데없음 대환영!’, ‘안전 완전 중요!’ 등이 그것. 박주은씨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젠 이 항목 모두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조유미씨에겐 매니페스토 가운데서도 ‘실수’에 대한 내용이 특히 더 와닿았다. “지난 3월 ‘삼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서 진행을 맡았었어요. 사실 ‘내가 잘할 수 있으려나’ 고민도 했는데 ‘그냥 한번 해보지, 뭐!’ 그런 마음으로 도전했죠.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11층 트윈 전용 공간에서 책을 읽는 청소년들의 모습. 라이브러리 티티섬 제공

“N명의 이용자들, N개 목적으로 방문해요”

현재 하루 티티섬 이용자 수는 많게는 200명. 조 관장은 “이곳을 많이 찾는 이들을 특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N명의 용자에게 N개의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쉬러, 친구 만나러, 보드게임 하러…. 찾는 이유는 각기 다 달라요. 그냥 와봤다가 9층부터 12층까지 두어 바퀴나 돌고 ‘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는 경우도 있죠.”

오는 8월31일. 티티섬은 개관 1주년을 맞는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곳은 정체하는 공간이 아닌, 용자들 관심과 바람을 담아 활발하게 움직이고 소통하는 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 관장은 “용자의 작은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면서 용자 스스로 결정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발견하는 공간으로서 실험을 해나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김청연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 저자 carax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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