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토로 평화기념관, 우리가 차별에 맞서 싸웠다는 증거"

강민경 기자 2022. 7. 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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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디언 "역사가 남긴 상처 마주하고 치유할 기회"
"차별에 맞서 싸워 살아남은 사람들 기억할 수 있어"
우토로 마을 평화기념관 조감도 (우토로 민간기금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일본 서부 교토부 남쪽 우지시의 한 작은 마을. 이곳에는 '우토로 평화기념관'이라는 3층짜리 건물이 자리한다.

우토로마을은 일제 강점기인 1941년 교토 군 비행장 공사를 위해 강제로 끌려온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다. 1945년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1300여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갈 곳 없이 그대로 판자촌에 버려졌다.

주민들은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다. 현재 우토로 마을의 주민은 50여가구, 90여명.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강제퇴거 판결을 내려 주민들은 난민이 될 위기를 맞았지만, 모금과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2011년 토지 일부를 사들여 2018년 1월 1차 시영주택이 완공돼 일부가 입주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일반재단법인 '우토로 민간기금재단'은 2억엔(약 20억원)을 들여 지난 4월 우토로마을에 3층 규모의 평화기념관을 조성했다.

우토로 마을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 뉴스1

영국 가디언은 17일자 기사에서 우토로 평화기념관의 벽에 걸린 현수막에 쓰여 있는 문구를 소개했다.

"여기는 우리가 살아온 곳이다. 여기는 우리가 만나는 곳이다"

신문은 이 기념관이 서로 반목했던 일본인과 조선인이 모여 지난 역사가 남긴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차별과 배척…아직 과거형 아니다

가디언은 이 기념관을 소개하며 우토로 주민들이 인종차별과 분열에 시달려 왔던 점을 되짚었다.

전후 우토로에 남겨진 사람들은 열악한 주거환경과 위생 문제, 빈곤과 실업, 그리고 "지역을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비난을 견뎌야 했다. 배관 시설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주민들은 우물에서 물을 끌어와 생활했다.

이곳의 한반도 출신 주민들에 대한 일본인의 적개심은 아직 과거형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난해 8월 아리모토 쇼고(22)라는 남성이 우토로마을에 불을 질러 빈집과 창고 등 7개 마을이 불에 타 사라지면서다. 당시 평화기념관에 전시하기 위해 창고에 보관돼 있던 사료 40점도 소실됐다.

아리모토는 공판에서 "재일 조선인들을 겁을 줘서 쫓아내고 싶었다"며 기소 내용을 인정하며 우토로 주민들과 재일교포 사회를 경악시켰다.

8월30일 우토로 화재 현장.© 뉴스1

이 사건과 관련해 우토로 거주민 3세인 구량옥씨는 가디언에 "우토로란 나의 정체성이다. 집들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마치 나 자신의 몸에 불이 붙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우토로 민간기금재단의 곽진웅 공동대표는 최근 몇 년간 혐한 단체들이 거리에서 눈에 덜 띄게 된 가운데 온라인 혐오 발언이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곽씨는 "역사의 진실을 부인하는 일본 극우파 인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일본의 일부 보수 정치인들과 극우 활동가들이 위안부와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존재를 부정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극우파는) 일본의 전시 만행들을 부인하는 데 아주 공격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우토로뿐 아니라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혐오 발언과 증오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토로했다.

◇"우토로 기념관, 한국인은 자부심 느끼고 일본인은 새 사실 알게 돼"

혐한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2016년 혐오 발언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법이 위반자들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토로 주민들은 일본 각지에서 풍물을 하며 우토로 문제 해결을 호소했다.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 제공) © News1

우토로 방화 사건의 법적 대리인을 맡고 있는 도미마스 시키 변호사는 "일본은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했기 때문에 혐오 발언에 대한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혐오 발언을 형사처벌이 가능한 범죄로 규정하는 지자체가 나오기도 했다. 대규모 한인 공동체가 자리한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의 가와사키시다. 이곳은 혐오 발언을 한 사람에게 최대 50만엔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는 가운데, 가디언은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재일 조선인 1세대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하고 그들이 차별에 어떻게 맞서 싸웠는지 기억할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40년 전 우토로마을로 이사한 다가와씨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기념관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용기를 얻는다"며 "우토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일본인들은, 이 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차별에 맞서 싸웠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past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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