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어디서 보상받나요"..형제복지원 피해자의 눈물

노유정 2022. 7. 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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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대한 조사와 피해구제가 늦어지면서 이들의 온전한 사회인으로의 복귀가 요원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지난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당시 내무부 훈령(제410호)에 따라 부랑인 선도 명목으로 일반인까지 감금해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폭행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특히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해 5월 첫 조사 개시 결정 이후 최근에야 진실규명 보고서 초안이 마련되는 등 진상규명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뉴스는 피해자들을 만나 당시 참혹한 상황을 낱낱이 전해듣고 이들에 대한 신속한 진실규명과 조속한 피해구제가 이뤄질 수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봤다.
"10세부터 10년간 강제노역 동원" 쪽방촌 5평 방서 여전히 고통 받아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 이춘석(61)씨가 간신히 누울 만한 비좁은 방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다. 이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사진=노유정 기자

기자가 피해자들을 만난 곳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동자동 쪽방촌이었다. 현재 쪽방촌에는 총 5명의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살고 있다.

피해자 이춘석(61)씨는 성인 남성 두 명이 앉으면 꽉 찰만큼 비좁은 16.5㎡(약 5평) 규모의 작은 방이 하루종일 지낸다고 한다. 왼쪽 다리 신경이 마비돼 일상생활이 어려웠고, 허리도 다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이씨는 "형제복지원을 나온 후 공사판 노가다(막노동)를 한 3년 하다가 이삿짐 센터에서 짐 나르는 일을 30년 했다"며 "이삿짐센터에서 모은 돈은 없다. 일주일에 두 번, 손 없는 날 이런 때만 일하고 한달에 네댓번 하는 건데 돈을 모으겠나"라고 했다.

이씨가 받은 정규 교육이라곤 고아원에 있을 당시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2학년 수업을 들은 게 마지막이다. 열살이 되던 1970년 무렵 형제복지원 전신인 형제육아원으로 넘겨졌다. 이후 형제복지원으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이씨는 10년간 감금돼 낚싯대와 풍선 공장 등에서 강제로 일을 했다.

이씨는 "다른 직업을 갖고 싶어도 배운 게 없어 노동판만 전전했다"며 "제대로 배웠으면 사회생활하는 데 나았을 것이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까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쓰레기처럼 산다는 생각은 안들었을 것"이라고 울먹였다.

무리한 육체노동은 이씨에게 장애만 남겨주었고,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매달 받는 80만원 지원금에서 방세 28만원을 내고 나머지로 끼니를 때우며 근근히 버티고 있다.

이씨는 "요새는 물가도 올라서 외식은 엄두도 못 내고 라면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

또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자 박종호(60)씨도 사정은 마차가지다.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박씨 역시 기초생활수급자로서 같은 쪽방촌에 살고 있다.

지난 1973년 아홉살이 되던 해에 고아원에서 형제육아원으로 넘겨졌고, 1983년 탈출하기 전까지 군대 훈련에 가까운 갖은 폭력에 시달렸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니 한글도 모른다. 박씨는 탈출 후 거리에서 만난 사람에 의해 김 양식장에 끌려가 2년간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치료비 명목으로 손에 쥔 건 고작 180만원 뿐이었다. 한 마디로 노동 착취를 당한 것이다.

박씨는 "한글이라도 뗐으면 인생이 바뀌었겠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때 교육 못받고 사회생활 못해 직업 불안정…피해자 45%가 기초생활수급자

지난 16일 오후 7시께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 박종호씨(60)가 자신이 사는 건물을 보여줬다. 다닥다닥 붙은 방은 한 층에 총 13가구로, 이들은 한 층에 하나씩 있는 화장실을 함께 쓴다. /사진=노유정 기자

이씨나 박씨처럼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학령기에 적절한 교육과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못해 일반인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했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실태조사(2020년 기준)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고용률은 58.4%에 불과했다.

취업분야도 단순 노무직이 33.7%에 달했다. 불안정한 직업에 종사하다 보니 피해자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45.0%에 이른다. 사정이 이런데도 제대로된 진상조사는 아직 더딘 상황이고,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피해보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된 피해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건 형제복지원이 문닫은 지 45년이 지난 올해 6월 21일에야 피해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부산시의회에서 의료비 등 지원을 골자로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지원 개정 조례안이 통과된 게 전부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들이 지급받은 피해지원금은 '0원'이다. 특히 피해자들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시킨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피해 보상금 '0원'·가해자 '무죄'…피해 지원 조례도 45년 만에 겨우 제정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재판은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총 7차례 진행됐으나 고 박모 형제복지원 원장은 공금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을 뿐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심에선 특수감금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항고심과 상고심은 형법 제20조에 근거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형법 제20조에 따르면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지난 2018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법령 위반"이라며 사건을 비상상고했으나 기각됐다.

이와 관련 최정학 방송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대법원에서도 비상상고 기각을 하면서도 사실상 내용은 '이건 국가가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했다"며 "'법률적 불법'이고 합법성의 외피를 띠고 있지만 무자비한 폭력"이라고 했다.

법률적 불법은 제정된 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집행하더라도 그 법 내용 자체는 불법인 것을 뜻하는 용어다.

최 교수는 "법이라고 해서 모두 정당하다거나 옳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피해 #무죄 #형제복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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