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군 수용소에 갇혀 있던 우크라 16살 소년 90일 생존기
기사내용 요약
WP, 우크라 고위직 아들의 러군 수용소 90일 소개
고문 비명소리 듣고 고문실 피 청소하며 겁났지만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 꼭 돌아가겠다" 되뇌며 견뎌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17일(현지시간) 러시아군에 붙잡혀 90일 동안 감옥에 있다가 간신히 살아돌아온 우크라이나의 16살 소년의 생존 투쟁을 전했다.
1평짜리 크기에 화장실도 고장난 작은 감옥에 갇힌 부략은 첫날부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고문으로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다음은 자기 차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당국자의 아들인 그는 지난 4월 고향 멜리토폴을 탈출하던 도중 러시아군에 붙잡혔다. 다른 수천명과 함께였다. 갈수록 납치돼 실종된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블라드 부략은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실종자 수천명이 대부분 돌아오지 못하면서 이들의 실종 사실이 전쟁범죄 조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블라드와 아버지 올렉 부략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블라드를 자포리자 지방 바실리우카의 감옥에 데려갔다. 며칠 동안 독방에 가둬두었다. 블라드는 앞 일을 전혀 예상하기 힘들었다. "왜 붙잡혀 왔는지 언제 풀려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감옥에 잡혀 있는지 1주일도 채 안지나 20대 초반의 한 남성이 들어왔다. 얻어맞고 전기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한 번에 세시간씩 고문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계속 고문당하느니 세상을 뜨고 싶다"면서 블라드에게 자기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깡통뚜껑으로 손목을 잘랐고 의식을 잃어가는 그를 블라드가 손을 붙잡고 있었다고 했다. 죽기 직전 간수가 와 위생병을 불렀고 그 사람을 데려갔다고 했다. 부인과 아들이 있다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지 못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인권 단체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들을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유엔도 러시아군이 민간인과 군포로들을 고문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고 밝혔다.
그가 나간 뒤 한동안 블라드는 다시 홀로 지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책을 읽고 잠을 잤다. 다른 사람들이 고문당한 방을 청소하도록 지시를 받기도 했다. 피로 흠뻑 젖은 의료도구들을 보면서 군인처럼 단단히 마음먹어야지 하며 견뎠다고 했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못했어요. 그저 쓰레기를 치우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었지요. 대들지 않았기에 똑같이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구타와 전기고문 외에도 손톱 밑에 바늘을 찌르는 고문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블라드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못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정말 너무 겁이 났다. 충격을 받았고 속 안에 있는 모든 게 불붙는 것 같았다"고 했다.
참기 어려운 장면도 목격했다. 한 고문실에 들어가니 천장에 한 남자가 매달려 있었다. 철사로 묶은 손을 아래로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를 심하게 구타한 러시아군인이 옆에서 조용히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블라드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했다. 자포리자 군사행정 책임자인 올렉 부략은 중앙 정부에 포로교환을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나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러시아 감옥에 갇힌 지 7주가 지나서 블라드는 좀 더 좋은 곳으로 옮겨졌다. 목욕도 할 수 있었고 아버지한테 전화도 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 블라드는 늘 주문처럼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 여기서 나갈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 4일 러시아 협상 대표가 아버지 부략에게 전화해 블라드를 풀어주겠다고 했다. 부략은 자세히 밝힐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고 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도 했다. 블라드는 3명의 포로교환 대상에 포함됐고 민간인 소개 차량을 타고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으로 돌아왔다.
이틀 뒤 블라드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몇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애간장을 태웠다.
아버지가 최전방 지역 도로에서 아들을 맞았다. 위장복과 방탄복, 청바지를 입은 아버지가 밴을 세웠고 블라드가 옆 문으로 내렸다. 두 사람이 드디어 포옹을 했다. 경찰이 두 사람에게 전투지역이라고 상기시켰다. 그들이 "올렉, 빨리 갑시다. 갑시다. 갑시다"고 채근했다.
블라드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고문당하는 소리, 또 붙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 그가 치웠던 현장의 피냄새 때문에 잠이 들기 힘들 것이다. 블라드는 자기가 5년은 붙잡혀 있었던 느낌이라고 했다.
귀환한 지 1주일도 채 안돼 가진 인터뷰에서 블라드는 아버지 못지 않게 냉철했다. 지금은 인도주의 지원을 돕고 자신의 스토리를 전하는 등 전쟁 지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단호한 표정으로 자기가 겪은 일을 전한다고 했다.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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