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헤르손 합병 위해 주민에 '범죄자' 낙인 찍어 추방
"러시아에서 강제 노동 시키거나 총알받이로 쓰려는 것"
현지 산업 시설을 자국용 제품 생산에 쓰려는 움직임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40일을 넘긴 가운데 러시아가 남부 흑해 연안의 헤르손주를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해 강제 추방 조처까지 동원해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거세지자, 러시아군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재통합협회’는 17일(현지시각)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가 헤르손주에 구성한 ‘가짜 정부’가 ‘법 위반자’를 헤르손주 밖으로 추방하는 내용의 새로운 처벌 규정을 선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규정에 따르면 법 위반 사실이 인정될 경우 군 사령부의 승인을 받아 24시간 안에 추방이 이뤄질 수 있다. 이 단체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수복하기 위한 활동가, 법률가, 시민사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곳이다.
협회는 이런 규정이 시행되더라도 점령군에 저항하는 주민들이 다른 처벌 없이 추방만 당하는 것은 아니라며 러시아군은 저항하는 이들을 사살하거나 고문하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러시아군이 인근 자포리자주의 멜리토폴에서도 비슷한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며, 러시아군은 점령지 주민을 크림반도나 러시아로 보내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총알받이’로 쓰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헤르손주는 남부 흑해 연안의 주요 교통 요지인 데다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 내륙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이 지역을 우선적으로 점령했으며, 4월 말 민군 합동 정부를 설립하고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군은 최근 현지 정부에 러시아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각종 규정을 러시아 규정에 맞추는 작업 등 영토 편입을 위한 주민 투표 사전 정지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는 헤르손의 산업 시설을 러시아 국내에 제품을 공급하는 데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헤르손시 정부 책임자 올렉산드르 코베츠는 이날 현지 조선소를 러시아가 필요한 선박 생산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코베츠는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에 전문화되어 있는 조선소가 선박 건조 채비를 마쳤다”며 배 주문을 많이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소에서 유조선 등도 생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주 수복을 위한 군사 작전을 강화하자, 러시아군이 주민들을 ‘인간 방패’로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자국군의 반격에 대비해 “주민들 뒤로 숨는 전술”을 시도하고 있다고 이날 주장했다. 남부 사령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군이 군인들을 인구 밀집 지역으로 배치하고 있다”며 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주민 피해를 우려해 폭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대 교전 지역인 동부 돈바스 지역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매일 매일 전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통신은 도네츠크주 북서부 지역의 많은 도시들이 유령 마을처럼 바뀐 가운데 일부 주민만 남아 구호 단체들이 제공하는 식량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셀레도베 주민인 지타 토필리나(61)는 “다른 지역에서 주민들이 탈출하고 있다는 공포스런 이야기들이 들리고 있다”며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이 땅에 속한 사람이니 이 땅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주요 점령 목표인 크라마토르스크의 초밥집 요리사 베수흐(23)는 영업을 하다가 폭발음이 들리면 대피소로 피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영업을 재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런 일을 당하면 다음날 다시 일하러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며 “하지만 전쟁은 전쟁이고 손님들에게 제때 음식을 내놓는 것도 그만둘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침공 144일 동안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은 순항 미사일이 3000발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안드리 네비토우 키이우주 경찰청장은 키이우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한 이후 지금까지 확인한 학살 희생자가 1346명으로 집계됐다며 300명은 아직도 실종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희생자 중 700명은 권총 같은 소형 무기로 살해됐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군이 지난 4월 초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철수한 이후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이 부차 등 곳곳에서 확인된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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