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 더 치명적인 '무능론'
# 2022년 6월27일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안. 윤석열 대통령이 성남공항을 이륙한 지 12시간 만에 기자단 탑승 구역에 나타났다.
윤 대통령 “먼 길 왔는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많이들 잤어? 아까 내가 오려고 했는데 다들 주무시더라고. 맥주 좀 하셨어?”
기자 “첫 순방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셨습니까?”
윤 대통령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겠습니까.”
기자 “좀 쉬셨습니까?”
윤 대통령 “못 쉬었어, 자료 보느라.”
기자 “일정이 많은데 준비 좀 하셨어요? 회담 일정이 많더라고요.”
윤 대통령 “한 뭐 39, 38개 국가… 시간이 많지는 않아가지고 얼굴이나 익히고 간단한 현안들이나 좀 서로 확인하고 다음에 다시 또 보자, 그런 정도 아니겠나. 만나봐야지, 뭐.”
기자 “10시간 넘게 비행, 어떻게 보내셨나요?”
윤 대통령 “프리미어 축구하고 저 유로컵 있지 않아… 책도 좀 보고.”
# 2022년 7월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정문. 윤 대통령은 오전 8시59분께 차에서 내려 기자들 앞에 섰다.
윤 대통령 “장마라서 그런지 날이 많이 습합니다.”
기자 “대통령님,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나 박순애 (교육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같은 부실 인사라거나….”
윤 대통령 (기자 말을 끊으며) “전 정권 지명된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이어 고개를 돌리며) “자, 다른 질문.”
기자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인사는 결국 대통령이 책임을 진다는 말인데 지금 이 반복되는 문제가 사전에 충분히 검증 가능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윤 대통령 “다른 정권 때와 한번 비교를 해보세요.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거를.”
윤 대통령은 손가락을 흔들며 대답하고서 더는 질문받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취임한 지 60여 일 지난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런 모습을 국민이 어떻게 보는지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된다.
호의적이던 쪽에서 긍정률 하락
7월14일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부정평가(53%)가 긍정평가(33%)를 20%포인트나 앞섰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업체 4곳이 2주마다 진행하는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넘어서는 이른바 ‘데드크로스’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주 전 같은 조사에서는 긍정평가(45%)가 부정평가(37%)를 앞섰다. 단 2주 만에 긍정평가는 12%포인트 급락하고 부정평가는 16%포인트 급등했다.
윤 대통령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의 ‘경고등’은 7월 첫째 주부터 이미 켜지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이 7월8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49%,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37%였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윤 대통령 취임 일주일 뒤인 5월 셋째 주 같은 조사 결과와는 완전히 뒤바뀐 결과다. 당시에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34%에 그쳤고,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51%였다. 특히 자신이 보수층이라고 밝힌 응답자들의 부정평가가 12%(5월 셋째 주)→18%(6월 다섯째 주)→28%(7월 첫째 주)로 꾸준히 올라갔다.
한국갤럽은 “6월 다섯째 주까지는 주로 중도층과 무당층에서의 변화였으나, 이번(7월 첫째 주)에는 윤 대통령에게 호의적이던 고령층, 국민의힘 지지층, 보수층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응답자 특성에서 긍정률이 하락하고 부정률이 상승하는 기류가 공통되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대통령 취임 초반은 ‘허니문’ 기간으로 불릴 정도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윤 대통령의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 등 보통은 지지율 상승을 이끄는 ‘외교 이벤트’도 있었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핵심 지지층이 ‘헤어질 결심’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집권 초반 지지율이 이례적으로 급락하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정치학자와 정치평론가들은 크게 세 장면을 지지율 급락의 핵심 이유로 꼽는다. ‘인사 문제’와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에서의 허술함(말실수), ‘나토 순방’ 등의 장면이다.
명백한 연출사진, 논란되자 없애버려
윤 대통령이 5월 취임한 뒤로, 첫 내각 장관급 인사 후보자 가운데 4명이 중도에 물러났다. 7월10일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제자 성희롱 의혹’ 속에 자진사퇴했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호영·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온 가족 풀브라이트 장학금 논란’ ‘아빠 찬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 각종 의혹에 휩쓸리며 낙마했다.
대통령 당선 뒤 취임까지 두 달여 준비 기간이 있었는데도 부실 검증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에서는 빈틈없이 사람을 발탁했다고 저는 자부하고 전 정부에 비교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덕성 면에서도 전 정부에서 밀어붙인 인사들을 보면 비교가 될 수 없다고 본다”(7월4일 약식회견)고 말했다. ‘인사 실패’에 대한 사과 대신 느닷없이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며 책임을 피해나간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국회의원은 “인사 내용에 실패한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언론에 대해 보여주는 (대통령의) 태도에서 국민은 더 실망했다”고 말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통령실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였다. 7월3일 대통령실은 나토 정상회의장 안팎의 대통령 사진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갑게 만나는 장면과 윤 대통령이 정상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지 숙소에서 자료를 검토하는 모습이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도 홍보 효과를 봤던 이른바 ‘B컷’ 사진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이 의아했다. 대통령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텅 빈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거나 아무 글자도 없는 백지 자료를 넘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연출용’에 가까운 사진이었다. 대통령실은 “보안 때문이었다”는 해명을 뒤늦게 내놨다가, 누리집에서 논란이 된 사진을 아예 없앴다.
7월5일에는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부인 ㄱ씨가 ‘민간인’ 신분으로 윤 대통령의 나토 순방 일정 사전답사단과 선발대에 들어갔고, 윤 대통령 부부와 함께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사실이 드러났다. ‘비선’ 논란을 의식한 대통령실은 “(ㄱ씨가) 오랜 해외 체류 경험과 국제행사 기획 역량을 바탕으로 각종 행사 기획 등을 지원한 것이다”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집무실 옮기고 용산 출퇴근 외 메시지는
해명되지 않는 해명이었다. 대통령실은 ‘ㄱ씨가 어떤 전문성이 있는 거냐’는 기자들의 질의에 “(회사에서 하는) 업무 자체가 글로벌 부문을 담당했다. 그 회사에서 국제교류 행사 기획을 주로 했다”고 답했을 뿐 그가 대통령 행사와 의전에 어떤 전문성을 갖췄는지 구체적 설명을 하지 못했다. ㄱ씨는 유명 한방의료재단 이사장의 딸로, 윤 대통령이 소개해 이원모 비서관과 결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선’ 의혹이 더 커졌다. ㄱ씨와 그의 어머니는 2021년 대선 예비후보였던 윤 대통령에게 각각 1천만원씩을 후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이미지는 장관 인사든 부인 문제든 잘못된 게 있으면 ‘내가 좀 부족해서 그런데 고쳐나가겠다’인데, (윤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 처음 해봐서 그런 거다’ 하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며 “중도층의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도어스테핑이 (소통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윤 대통령의 ‘실력 부족’을 꼬집었다. 박 교수는 “도어스테핑을 하려면 굉장히 어려운 사안을 이해하고, 자신의 말이 가지는 임팩트와 결과까지 생각하는 등 실력이 필요한데 윤 대통령은 자기 실력을 과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고물가·고금리에 이어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 주변에서 보이는 비상하지 않은 모습에 국민이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경제위기가 터질 것이 보이는데도 민생경제비상회의를 이제야 하고, 대통령 취임 뒤 두 달이 넘어가는데 장관 업무보고를 지금에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21>이 5월10일~7월14일 대통령의 두 달간 공개 일정을 확인한 결과, 윤 대통령은 민생 현장이라 할 만한 곳을 제대로 찾지 않았다. 직접 발로 뛰며 민생 현장을 살피기보다 5월13일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 6월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회의, 7월8일 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등 윤 대통령은 회의하는 데 집중했다. 대기업 총수(6회)나 정치인(6회)과의 만남이 중소기업인 또는 소상공인과 만남(4회)보다 빈번했다. 윤 대통령은 7월14일에야 처음 민생 현장에 나갔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고금리 대출 등의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만났다.
두 번의 연이은 승리, 갑작스럽게 꺼진 거품
하상응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문재인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비정규직 현장을 찾아가고 최저임금 이야기를 하는 등 대통령이 새로 바뀌니까 뭔가 바뀐다는 것을 보여줬는데,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 용산으로 출퇴근하는 거 말고는 메시지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관후 박사(정치학)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과 행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며 “메시지 실패는 수습 가능하지만 메신저가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는 정치 지도자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무능론’과도 맞닿아 있다. 장덕현 한국갤럽 수석전문위원은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를 자유응답식으로 적게 하는데 (대통령의) 자질이나 능력과 관련한 내용이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7월 첫째 주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을 부정평가한 이유는 인사(25%)-경제·민생 살피지 않음(12%)-경험·자질 부족/무능함(8%) 순서로 꼽혔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윤 대통령은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외교·안보는 중심을 잡으면 된다는 식으로 ‘정치가 별거냐’고 생각하고 뛰어든 것 같다. 그런데 정치는 생각 못했던 문제와 챙겨야 할 문제를 계속 풀어나가야 한다. 이것을 뒷받침해줄 (대통령의) 정치 경험이나 좋은 참모가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연이어 승리하며 터뜨린 샴페인의 거품이 이제 꺼져버렸다.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이완 기자 wani@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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