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기' 뒤질세라..통일부·외교부·국방부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허진무 기자 2022. 7. 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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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통일부 대변인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수사 중인 전 정권의 ‘대북 연관 사건’과 관련해 정부부처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과거 입장을 번복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 당시의 발표를 번복하고 사과하면서 시작된 부처의 ‘180도 입장 뒤집기’는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에서 통일부에 의해 비슷한 형태로 반복됐다. 통일부는 이전 발표 내용 뒤집기를 넘어 당시 판문점 사진들까지 무더기로 공개하며 ‘여론몰이’에 적극적인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여기에 당시 ‘북송’ 현장을 생생히 담은 영상 공개까지 검토하고 있다면서 검찰 수사에 한껏 힘을 불어넣고 있는 모양새다.

통일부는 여러 부처 가운데서도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사실상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7일 탈북 어민 2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송되는 현장 영상을 공개할 것인지 검토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이미 지난 12일 북송 현장 사진 10장을 전격 공개했는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앞서 공개한 사진 속 북한 어민들의 끌려가는 모습은 전후 맥락과 무관하게 검찰 수사에 동력을 제공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국가정보원의 전직 원장 고발로 시동을 건 검찰 수사를 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사진 공개 전날인 11일에는 브리핑을 통해 탈북 어민 강제 북송에 대해 “분명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며 3년 전 밝혔던 입장을 뒤집었다. 번복 이유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어민 2명이 동료 선원을 살해했다는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냐’는 질문에 “선원 추방 결정이 이뤄진 직후 통일부는 국가안보실로부터 언론브리핑 요구를 받았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3년 전 발표는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는 뉘앙스다.

통일부는 3년 전 브리핑에선 “통일부는 북한 주민 추방에 대한 여러 사안을 (국가안보실과) 함께 검토했다”며 북송을 옹호했다. 통일부가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흉악범죄 북한주민 추방 관련 보고’를 보면 “(살인) 범죄 행위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통일부는 이 보고서에서 “추방 결정 관련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간의 입장 차이는 없었다”고 했는데, 3년 뒤인 이달 6일 국정원은 탈북 어민에 대한 합동조사 조기 종료 혐의로 서훈 전 원장 등을 고발해 검찰 수사를 촉발했다.

외교부도 최근 ‘입장 번복 릴레이’에 가담했다. 외교부는 문재인 정부가 2020년 2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탈북 어민 북송이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로 답변서를 보낸 것에 대해 지난 15일 입장문에서 “보편적 국제 인권규범의 기준에 비춰볼 때 부족하거나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답변서 작성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점을 대외관계 주관부처로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 힘 불어넣는 ‘입장 번복·사과’ 릴레이
진상조사 없는 ‘셀프 디스’에 갉아먹는 정부 신뢰

앞서 국방부와 해경은 지난달 16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인 2020년 9월 ‘자진 월북 추정’이라고 발표한 것을 2년도 되지 않아 뒤집은 것이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로부터 사건 관련 주요 쟁점 답변 지침을 하달받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지침에 따라 ‘자진 월북’이라고 발표했다는 취지의 답변인데, 이는 유족이 검찰에 고발장을 내는 계기가 됐다.

검찰 수사도 이들 부처가 입장을 번복한 이유부터 시작해 문재인 정부의 부당한 개입 여부 확인까지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정권교체 때마다 전 정권을 정면으로 겨눈 수사는 반복되고 있지만 최근 부처들의 경쟁적인 입장 번복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나 대통령 탄핵 이후 적폐청산 국면에서도 부처 안팎에 과거사위원회 등의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두고 이를 통한 진상조사부터 먼저 이뤄져 왔다. 그러나 최근 부처들의 행태는 이 같은 절차 없이 전광석화처럼 ‘뒤집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부처나 기관 스스로 발표했던 내용을 단언하듯 ‘자기 부정’하고 있는 것은 결국 대한민국 정부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향후 다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이번 입장 번복에 윤석열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수사가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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