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로 곡물대란 버텨낸 아시아..'혹독한 겨울' 다가온다 [글로벌 리포트]
러-우크라 전쟁이 촉발한 밀 부족
북반구 수확 시작되며 수급 늘었지만
시세반영 늦은 아시아 이제 위기 시작
러·벨라루스 비료수출 감소도 변수
안정적이던 쌀가격 끌어올릴 수도
올해 상반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식량 위기가 마침내 한풀 꺾였다. 북반구에서 본격적인 겨울밀 수확철이 시작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말라붙은 밀 공급이 늘어났고 동남아시아의 식용유 원료들도 시장에 다시 풀릴 예정이다. 식량 가격이 올해 정점을 찍고 내년부터는 점차 내려간다는 긍정론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식량 가격은 세계 시세와 반대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시아 시세 반응이 세계 평균보다 약 6개월 느리다며 아시아의 식량 위기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식량 위기 끝이 보이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보다 2.3% 하락한 154.2포인트였다. 해당 지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에 들어간 올해 3월에 159.7포인트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두 국가의 밀 생산량이 세계 수출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8.5%에 달한다. 식량가격지수는 4월 158.4포인트, 5월 157.9포인트로 내려간 뒤 6월까지 3개월 연속 하락했다. 북반구의 밀 수확과 더불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옥수수 수확이 시작되면서 양대 작물 가격이 내려갔다.
식용유의 원료가 되는 팜유는 주요 생산국의 공급량 증가와 함께 최대 생산국 인도네시아가 국내 팜유 재고를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격이 하락했다. 해바라기씨유와 대두유는 최근 가격 상승 영향으로 수입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내려가는 추세다.
미국 투자은행 모간스탠리는 지난 6일 보고서에서 올해 식량 현물 가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겠지만 상품거래소의 선물 가격보다는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 현물 가격도 장외 선도 거래 가격보다는 약 11% 낮을 것으로 추정했다. 모간스탠리의 로베르토 브라운 증권애널리스트는 "농업 부문의 마진이 여전히 평균을 넘어서는 탄탄한 수준이기 때문에 경작지 등 농작물 관련 투자가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추세가 내년도 재고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간스탠리는 동시에 종전 시점을 확정할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점차 진정되면 농작물 생산 감소 및 비료 공급 차질 문제가 해소되면서 식량 가격 또한 안정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쌀'로 버틴 아시아, 위기 임박
문제는 지역마다 변화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5월 기준 아시아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4% 안팎으로 미국과 유럽의 절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미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9일 보도에서 아시아 국민이 세계 쌀 생산 및 소비의 80%를 담당하기에 밀과 옥수수로 시작된 식량 위기의 영향을 덜 받았다고 진단했다. 세계은행에 의하면 밀과 옥수수의 국제 시세는 지난 6월 중순 기준으로 올해 1월 대비 각각 37%, 27% 올랐지만 같은 기간 쌀 가격은 17% 떨어졌다.
아울러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제분·사료 등 식량 관련업계는 9∼10월 사용 물량까지 재고를 보유하고 있고 추가 물량도 확보하는 중이다.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홀딩스는 지난달 20일 보고서에서 세계 식량 시세가 아시아에 영향을 미치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아시아의 식량 위기는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진단했다. 노무라에 따르면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의 지난 5월 식량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5.9% 상승했다. 지난해 12월(2.7%) 보다 두 배 이상 상승폭이 커졌다. 노무라는 식량을 90% 이상 수입하는 싱가포르의 경우 지난 5월 식량 가격 상승률이 4.1%였지만 하반기에는 8.2%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한국의 식량 가격 상승률은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다음으로 위험하다. 해당 수치는 지난 5월 5.9%였지만 하반기에는 8.4%로 오를 전망이다. 하반기 필리핀의 식량 가격 상승률은 5월(4.9%) 보다 2%p 오른 6.9%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식량 가격 상승률은 세계식량가격지수 추세와 반대로 지난 3월 마이너스(-)1.5%였으나 4월에 1.9%, 5월과 6월에 각각 2.3%와 2.9%로 뛰었다.
■비료까지 뛰면 쌀도 위험
그나마 안정적이었던 쌀 가격도 비료 부족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전 전세계 비료 공급의 15%를 책임지는 세계 최대 비료 수출국이었으며 러시아와 함께 서방의 제재를 받게 된 벨라루스도 주요 비료 수출국이다. 러시아 비료생산자협회(RFPA)의 안드레이 구례프 회장은 지난달 16일 기자들과 만나 서방의 경제 제재를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 비료 수출량이 올해 초부터 약 20% 줄었다"며 특히 "지난 4월에는 수출량이 40%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2021년 기준 세계 제2위 쌀 수출국인 태국의 카시콘은행 산하 연구소는 비료 가격 상승으로 태국의 쌀 수확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2위 쌀 수입국인 필리핀은 현재 수확량 감소로 쌀 수입 확대를 논의 중이다. 세계 1위 쌀 수출국이자 세계 쌀 수출의 40%를 담당하는 인도는 올해 장마 강우량에 따라 수확량이 결정된다. 지난 8일 인도 서북부 카슈미르에서는 폭우로 16명이 숨졌다. 인도 중부 구자라트주에서는 12일 폭우가 내려 24시간 동안 400~550㎜의 비가 쏟아졌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의 데이비드 라보드 선임연구원은 "지금으로서는 인도가 밀과 설탕 다음으로 수주 내 쌀 수출금지를 내리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인도는 지난 5월에 식량 안보를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했고 이후 설탕에도 수출 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노무라의 소날 바르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미 경제매체 CNBC를 통해 "쌀 가격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밀 가격 상승은 쌀에 대한 대체로 이어질 수 있고 수요 증가와 재고 부족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쌀 가격은 2008년 수급 불안 당시 1t당 가격이 현재의 2배 이상인 1000달러(약 132만원)를 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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