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가치 20년 만에 최고치.. 신흥국 '줄부도 사태' 경고음

이종민 2022. 7. 17.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 긴축 가속.. 자본유출 확대
외채 부담에 스리랑카 '디폴트'
달러인덱스 2022년 10% 이상 올라
엔화·유로화 연일 약세행진
사진=AP연합뉴스
미국 달러화 가치가 20여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지구촌 곳곳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부채 위기가 고조하고 있는 신흥국의 경우 세계적 고물가 현상과 경기침체 전망이 겹치면서 연쇄적인 국가부도 도미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주요 6개 통화(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털링,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 주는 달러인덱스(DXY)는 108.06을 기록하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올해 들어서만 10% 이상 올랐고, 108 선에 오른 것은 2002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이에 비해 주요 통화인 달러 대비 일본 엔화 가치는 2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상태고 유로당 달러 환율도 20년 만에 1대 1 밑으로 떨어졌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가 단기간에 급변하면서 전 세계 경제에도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달러로 돈을 빌린 정부나 기업이 이자나 원금 상환 부담이 크게 불어 재정 운영,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은 또 수입 비용을 늘려 생산자와 소비자의 물가 상승을 이끄는 등 무역, 물가, 외채, 자본시장 등 여러 부문에서 신흥국에 악재로 작용한다.

달러로 갚아야 하는 외채 비중이 높은 국가는 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채권자에게 달러로 이자를 지불하는 것은 자국 통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는 아르헨티나, 터키와 같은 나라에 특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달러화 강세 여파로 지난달 말 기준 다수의 신흥국 통화 가치가 올해 초에 비해 5% 이상 하락했다. 라오스(-25.5%), 터키(-21.4%), 아르헨티나(-17.7%), 이집트(-16.4%) 등 일부 국가는 하락폭이 특히 컸다.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스리랑카 국회의장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콜롬보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콜롬보=AFP연합뉴스
◆신흥국 도미노 부도날 수도

이미 쓰러진 국가도 있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510억달러(약 67조5750억원) 규모의 국가채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주력 산업인 관광 부문의 붕괴와 지나친 감세 등 정책 실패가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스리랑카는 식량과 연료를 수입할 외화가 없어 국민이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했다.

신흥국의 연쇄 국가부도 사태 우려도 커진다.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기관인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스리랑카 외에 디폴트에 가장 취약한 5개국으로 엘살바도르, 가나, 이집트, 튀니지, 파키스탄을 꼽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와 관련해 “신흥시장 국가의 30%, 저소득국의 60%가 채무 곤경에 빠졌거나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대외부채 급증과 물가 폭등, 외환보유액 감소 등으로 경제위기에 처한 파키스탄은 지난 5월 말 외화 절약을 위해 자동차 등 비필수 사치품의 수입을 금지했고 IMF에서 11억7000만달러(1조5502억원)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AP연합뉴스
앞서 네팔은 외화 부족이 심각해지자 자동차와 술, 담배, 다이아몬드 등 비필수품의 수입을 금지했다. 방글라데시는 외환보유액 부족에 따라 IMF와 40억∼45억달러(5조3000억∼5조9625억원) 규모의 구제금융 협상에 나섰다.

신흥국은 선진국의 통화긴축 여파로 차입 비용이 늘어나는 등 자금조달 환경이 나빠지고 외채 상환 부담은 커지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20개 신흥국을 조사한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달러 표시 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평균 24.6%로 2019년 말보다 1.1%포인트 상승했다. 신흥국 채권·주식 시장에서는 6월에 40억달러가 순유출되는 등 넉 달 연속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지난 13일 “달러화 강세와 함께 이미 신흥시장에서 투자금이 유출되고 있다”며 추가 유출을 걱정했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원인

해외매출 비중이 높은 글로벌 기업도 달러화 강세의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NYT는 “세계 주요 증시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애플과 다른 기술 대기업들은 몇 주 뒤 재무제표를 발표할 때 달러 강세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며 “애플 매출의 60% 이상은 해외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업체 이토로 시장전문가 벤 레이들러는 달러 가치 상승 때문에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포함된 기업의 이익이 5%, 약 1000억달러(132조5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는 주된 이유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전 세계 어느 중앙은행보다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최근 들어 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한다며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연준이 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AP연합뉴스
긴축에 따라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투자금이 달러로 환전돼 미국으로 들어가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덕분에 달러는 금값이 급락하는 상황에도 계속 치솟아 최고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달러 강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경기 부진, 유럽의 에너지난, 일본의 엔저 전략,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전략에 따른 공급 차질, 글로벌 인플레이션 지속에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카맥샤 트리베디 골드만삭스 시장조사그룹 공동 책임자는 NYT에 “현재로서는 달러가 가장 먼저 거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