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 '존엄사' 도입한 선전시..전국 확산 신호탄되나[특파원 24시]

조영빈 2022. 7. 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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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성의 선전시가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존엄사(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나섰다.

죽음 자체를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중국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선전시의 이번 입법은 상당한 파격이다.

선전시가 중국 전역에서 존엄사를 허용한 최초의 도시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 언론들은 선전시가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됐다며 존엄사 허용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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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 치료 거부' 유언장 제도 허가
죽음 언급 꺼리는 중국 문화서 이례적
다른 도시로 확산할지 관심
노모에게 살충제를 먹여 숨지게 한 중국인 덩밍젠이 2011년 5월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18년간 노모의 병을 수발해온 덩밍젠은 살충제를 먹여 고통을 멈추게 해달라는 노모의 부탁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지며 중국에 존엄사 논쟁을 촉발했다. 바이두 화면 캡처

'존엄한 죽음인가, 무의미한 연명인가'

중국 광둥성의 선전시가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존엄사(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거부하는 행위)'를 허용하고 나섰다. 죽음 자체를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중국 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선전시의 이번 입법은 상당한 파격이다.

17일 중국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선전시는 이달 초 '선전특구의료행위 규정 개정안'을 도입했다. 개정안 78조는 "의료 기관은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 환자 본인이 작성한 '생존 유언장'에 담긴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고결한 죽음 고민할 기회 적은 중국"

생존 유언장이란 의료 행위에 대한 환자의 요구 사항을 담은 문서다. 또렷한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작성되어야 하며, 가족의 동의를 거쳐 사전에 공증도 받아야 인정된다. 환자가 "의미 없는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생존 유언장에 남겼을 경우 인공호흡기 삽관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개정안은 내년부터 시행된다.

중국에선 존엄사 문제가 오랜 기간 공론화되지 못했다. '장수'를 최고의 복으로 여기는 동시에 '훌륭한 죽음보다 고생스러운 삶이 낫다(好死不如惡活)'는 인식이 강한 탓에 존엄사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편이다. 베이징에서 존엄사 인정 캠페인을 벌여온 트레이시 왕은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죽음의 의미를 배우지만, 대부분 종교가 없는 중국인들은 삶에 대한 교육은 받는 반면 자신이 맞아야 할 죽음에 대해선 고민해볼 기회가 처음부터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인들이 맞는 죽음의 질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싱가포르국립대 의과대학(Duke-NUS)이 매년 세계 각국의 의료 체계와 환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는 고통의 수준, 연명 치료 여부 등을 조사해 발표하는 '세계 죽음의 질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81개 국가 중 죽음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는 영국이었다. 아일랜드와 대만, 호주, 한국 등도 상위권을 차치했으나, 중국은 하위권인 53위에 그쳤다.


2011년 덩밍젠 사건 이후 존엄사 개념 확산

중국에서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 논쟁을 처음 촉발한 것은 2011년 중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덩밍젠 사건'이다. 당시 광저우에서 18년간 노모의 병을 수발해온 아들 덩밍젠은 어머니에게 살충제를 먹여 숨지게 했다. 노모가 "더 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으니, 살충제를 먹고 죽게 해달라고"고 간청했기 때문이다. 모친을 죽인 패륜아라는 비난 속에서도 존엄사 허용 여론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이후 '생존 유언장 제도' 도입 운동 단체인 베이징유언장장려협회가 2013년 설립됐고, 지난해 선전에서도 '생활유언장협회'라는 곳이 설립되며 연명 치료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의 지지를 얻었다. 선전시가 중국 전역에서 존엄사를 허용한 최초의 도시가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 언론들은 선전시가 "얼음을 깨는 쇄빙선"이 됐다며 존엄사 허용이 중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선전시의 입법은 우리 사회에 '존엄한 죽음'을 열어준 것"이라며 "존엄사법은 환자의 고통뿐 아니라, 가족의 도덕적 죄책감도 덜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양리신 인민대 법대 교수는 관영 중국망에 "자연인의 안전과 생명의 존엄성은 법으로 보호돼야 한다"는 중국 민법 조항을 소개하며 "생명의 존엄에는 죽음에 대한 존엄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선전시의 개정안이 기존의 중국 민법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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