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0시간 일했는데 월급 50만원..대학생 현장실습제 '구멍 숭숭'

유선희 기자 2022. 7. 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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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의 한 특수목적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가 현장실습을 하면서 동료들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메신저로, 실습비 지급과 교육시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A씨 제공

충남 천안시의 한 특수목적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27)는 올해 1월 4주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실습기관 측과 갈등을 빚었다. 학교를 통해 실습기관을 소개받았는데, 전공과 관련 없는 단순 노동 업무만 주어졌다. 직무 관련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고, 주5일 40시간(휴게시간 1시간 포함해 하루 8시간)씩 4주간 일하고 받은 실습비는 올 최저임금 기준 급여의 약 34% 수준인 50만원이었다.

A씨는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직무교육이랄 것도 없는 데다, 기계공학 전공에 맞는 업무가 아닌 전선 피복을 벗기고 전선을 잘라 커넥터에 꽂는 작업 등만 반복했다”며 “공업용 열풍기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자칫 화상 입을 우려도 있었지만 목장갑 외에 별다른 보호장구는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문제제기를 하자 담당 부장으로부터 되레 폭언과 힐난을 들었다고 했다.

■운영 미흡 대학생 현장실습제, 인권위 진정

결국 A씨는 대학교 측에 실습기관 교체를 요청하고 일을 그만뒀는데, 이후 제대로 된 기관을 찾지 못하면서 그나마 40시간 이수한 근무 기록마저 삭제됐다. 학교 측은 “실습기관과의 협의, 실제 직무교육시간 등 운영상 미흡한 부분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장실습 학생에게 별도로 40만원의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의 문제제기 이후 면담을 하고 실습기관을 찾아주는 노력도 했는데 불발됐다”며 “연속해 현장실습이 이어지지 못하면 학점으로 인정할 수 없어 이전 근무기록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대학교 측이 현장실습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고 학생들에게 실습기관 선택권 및 학습권을 보장할 것, 이미 이수한 실습시간을 인정해 줄 것과 함께 교육부 측에는 현장실습을 채택한 대학이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을 지키도록 지도할 것 등 의견을 담아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A씨는 “학교는 전공과 관련된, 인턴처럼 실무교육을 한다고 보냈는데 저희가 직접 본 것은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쓰기에는 최저임금 부담이 있으니 저렴한 가격에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현장실습 학생들을 쓰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며 “전반적으로 제도 운영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 진정을 넣게 됐다”고 했다.

■‘저렴한 노동력’에 노출된 산업재해 위험
B씨가 한국농수산대학교와 사고가 발생한 화훼농장 사업주와 맺은 협정서 발췌.

지난달 20일 경기 고양시 화정동의 한 화훼농장에서 대학생 B씨(20)가 상토혼합기(비료 배합 기계)에 포대에 담긴 흙을 붓는 도중 넘어지면서 상반신이 기계의 회전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B씨는 국립대학인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이 학교는 2학년이 되면 무조건 두 학기 동안 ‘장기 현장실습’을 받아야 한다.

B씨가 학교, 사업주와 맺은 ‘장기현장실습교육 협정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B씨는 이 농장과 3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일을 할 계획이었고 실습비는 주5일 40시간 일하는 조건으로 월 90만원을 받았다. 협약서는 현장실습이 시작되고 보름이 넘은 3월20일에 작성됐는데, 이에 대해 학교 측은 “3월2일에 작성했는데 오기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대학 측이 사고가 발생한 화훼농장을 실습기관으로 선정한 것은 2020년 10월로, 농장에서 현장실습 대학생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화훼농장은 1인 사업장으로, 산업재해 가입 사업장이 아니었다. 현장실습 학생도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다. 학교 측은 “실습기관으로 선정하기 전에 현장 농장주가 교육자로서 자질이 있는지, 사업장에 있는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등을 평가 요인으로 봤다”며 “산재보험 가입 여부는 평가기준으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사업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운영규정 마련됐지만...안 지키고 빠져나가고
그래픽 성덕환 기자

대학생 현장실습을 둘러싼 열정페이 논란과 산재사고는 과거부터 반복돼 왔다. 2020년 2월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 외항선 승선 실습을 위해 실습기관사로 나섰다가 닷새 만에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9년 7월에는 서울반도체에서 발생한 방사능 피폭 사건 피해자 중에 대학생 현장실습생도 포함돼 있었다. 학생들은 현장실습 첫날부터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부는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 전부개정안을 고시하고 지난해 7월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생 현장실습제도는 미흡하게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실습학기제는 ‘표준형’과 ‘자율형’으로 구분하는데, A씨는 대학교, 실습기관과 3자 간 ‘표준 현장실습학기제 협약서’를 체결했다. 표준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에 따르면 직무관련 교육시간은 총 실습시간의 10~25%를 차지해야 하고, 실습비는 최저임금의 75%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실습비는 실습기관에서 학생에게 지급하는 비용으로, 학교를 통한 장학금 형태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 A씨의 경우 이런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학교 측은 A씨가 보다 규정이 느슨한 ‘자율형’으로 참여했다고 본다. 학교 측은 “지난해 7월 이후 6개월 만에 모든 학생을 ‘표준 현장실습학기제’로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며 “학생들을 위해 표준형을 확대하려고 노력 중인데,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의 75% 이상 지급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현실”이라고 했다.

교육부의 운영규정은 학생보호 조치의 일환으로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를 명시하고 있다. 실습기관은 현장실습 학기제에 참여하는 학생에 대해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또 산재보험 가입 여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가입 후 일주일 이내에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이 규정대로라면 한국농수산대학교는 규정을 어긴 것인데, 해당 대학은 ‘한국농수산대학 설치법’이라는 별도 법령에 따라 의무실습을 진행하고 있어 교육부 운영규정 고시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됐다. 교육부는 별도 법령 등에서 정한 기준과 학칙을 정해 운영하는 경우 적용제외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농수산대학교 측은 “설치법에 따라 장기현장 실습 훈령을 만들어 운영해왔다”며 “일반적으로 근로자 없는 사업장의 경우 산재보험 가입 제외인데, 학생들이 실습을 나갈 경우 근로자가 없어도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노동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실습장에 안전관련 전문가가 나가 점검하는 방식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산재 유형화, 보험가입 확대 등 필요
육군 종합군수학교에서 현장실습하는 대학생들. 연합뉴스

교육부는 “학생들의 안전보호와 권익강화 차원에서 산재보험 의무가입과 최저시급 수준의 시급 제공 등 제도개선이 이뤄졌는데, 아직까지 현장에 안착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지난해 제도 개선을 하면서 대학 스스로 체계를 갖춰보자는 취지에서 교육부 소속 비영리법인으로 ‘현장실습 지원협의회’가 출범했다. 협의회를 중심으로 필요한 기준과 절차들을 들여다보고 산재를 유형화하는 등 체계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적용제외를 두는 대학교의 경우는 소관 부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예를 들어 한국농수산대학교의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지휘를 받는데, 농식품부가 현장실습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노동부는 “대학생 현장실습생인 경우 산재보험이 가입된 사업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현실은 1차산업인 농어업종이나 1인 사업장의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농식품부나 교육부에서 실습생 제도와 관련해 고민한다면 산재보험에 임의로라도 가입한 사업장에서 현장실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고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미정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는 “대학생 현장실습에 대한 산재 현황이나 규모, 학생들의 인권실태 등을 유형화해 공개되는 자료가 없는데, 부처 간 업무가 나뉘어 있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며 “주기적·정기적인 관리감독과 정보공개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운영규정이 현실에 잘 반영되는지 업종별로 따져보고, 관리감독을 위해 각 부처와 학교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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