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청소노동자는, 씻고 싶을 때 '대걸레 빠는 곳' 갑니다

서혜미 2022. 7. 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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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새벽 4시 반부터 청소하는데
에어컨은 아침 8시부터 틀어줘
마스크 땀에 절어 하루 3개 쓰기도
휴게실 있는 지하까지 승강기도 없어
"샤워실·400원 인상 요구, 부당한가"
화장실 옆 대걸레 세척대가 있는 공간. 고려대 청소노동자 ㄱ씨는 이곳에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서혜미 기자

지난 14일 날이 밝지 않은 새벽 4시30분께,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의 한 건물 복도에서 만난 ㄱ(63)씨는 이마에 연갈색과 파란색이 섞인 얇은 수건을 질끈 묶었다. “이렇게 안 하면 눈가로 땀이 흘러내려서 닦느라 시간이 다 가서…” 새벽이지만 기온은 24℃였다. 일을 시작한 지 15분이 지나자,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수건이 젖기 시작했다.

ㄱ씨를 비롯해 고려대 청소노동자의 ‘공식 노동 시간’은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다. 오전 중 휴게시간 1시간과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총 8시간을 근무한다. 그러나 새벽 5시가 되자 ㄱ씨 외에도 이 건물의 다른 층 담당하는 청소노동자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계절학기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청소를 끝내기 위해서다. 서재순 민주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장은 “학생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어느 정도 끝내놓으려면 더 일찍 출근해야 한다. 새벽 4시30분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비 오면 장판이 젖는 휴게실에서 

지난 14일 찾은 서울 성북구 고려대 한 건물 지하 2층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며칠 전 내린 비로 배수관에서 물이 새 장판 밑으로 들어가 보일러를 돌려 말리고 있었다. 서혜미 기자

ㄱ씨를 비롯해 고려대 청소노동자들과 경비·주차 노동자들은 이렇게 새벽에 출근하면서 지난 6일부터 학교 본관 1층에서 농성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3월부터 시급 400원 인상과 샤워시설 확충·휴게공간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와 용역업체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연세대 학생이 ‘수업권 침해’로 형사 고소하며 청소노동자의 집회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것에 대해 ㄱ씨는 한숨을 쉬었다.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임금을 올려달라 하는 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샤워시설을 확충해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요.”

ㄱ씨는 여러개의 강의실이 있는 한 개 층을 담당한다. 출근 뒤 제일 먼저 하는 건 복도 곳곳에 놓인 쓰레기통을 비우는 일이다. 그는 쓰레기통 안의 일회용 컵·종이·비닐 등을 직접 두 손으로 하나하나 꺼내 약 80cm 높이의 큰 쓰레기통으로 옮겼다. 무거운 쓰레기통을 들어 쏟아부으면 편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일회용 컵에 남은 음료가 바닥으로 흘러내려 일이 더 많아진다.

건물 밖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하던 새벽 5시께 ㄱ씨의 온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화장실로 가 고무장갑을 낀 손을 변기 23개 안으로 일일이 넣어 수세미로 닦아냈다. 인적 없는 복도에 남성용 양변기 내부를 닦으며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 ㄱ씨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오늘은 그래도 날이 시원해서 할 만한 편이에요. 너무 더운 날에는 (비말 차단용) 마스크가 땀에 절어 하루에 3개씩 바꿔 끼기도 해요.”

14일 새벽 ㄱ(63)씨가 학교 건물 복도에 놓인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서혜미 기자

쉴 틈은 없다. 화장실 다음은 강의실이다. 파란색 걸레 2개와 대걸레 1개를 들고 강의실 청소를 시작했다. 3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 32개가 놓여 있는 첫번째 강의실에는 책상 1개당 코로나19 확산 방지용 투명 아크릴 가림막 2개가 설치돼 있었다.

기존에는 팔을 크게 두 번 움직여 걸레로 닦으면 됐지만, 아크릴판 때문에 손이 더 많이 간다. 강의실 세개를 청소한 뒤 미지근한 박카스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마스크를 내리자 얼굴 곳곳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약 2시간30분이 지나면 아침 청소가 대략 마무리된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씻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는 화장실 한구석, 대걸레를 빠는 공간의 문을 연다. 한 명이 겨우 들어설 수 있는 공간에는 ㄱ씨가 몸을 닦아낼 때 쓰는 수건 2개가 옷걸이에 걸려 있다.

ㄱ씨가 일하는 건물에는 샤워실이 있지만 사람 한 명만 들어가 씻을 수 있는 크기다.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차례로 이용하다 보면 오전 휴식시간이 지나간다. ㄱ씨는 망설이다가 대걸레 옆에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과 팔을 대충 닦고 휴게실로 향한다.

지하 휴게실까지 엘리베이터도 없이

학교에는 청소노동자를 위한 샤워실이 없는 건물도 많다. 지하에 있는 휴게실에 몸을 뉘이지만 습하고, 환기가 잘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난다. 에어컨은 아침 8시가 돼야 작동한다. ㄱ씨와 같은 건물을 담당하는 청소노동자 ㄴ(44)씨는 “휴게실이 있는 지하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새벽 일을 마치고 나면 오르내릴 기력도 없다. 휴게실에 내려가도 환기가 잘 되지 않아서 숨이 너무 갑갑하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그리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고 했다. ㄱ씨는 말한다. “샤워시설 확충은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알아요. 그래도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임금을 올려달라는 게 부당한 요구는 아니잖아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내 13개 대학·대학병원 건물 등 사업장 노조는 지난해 11월부터 용역업체들과 2022년 임단협 집단교섭을 진행해왔다. 최저임금 인상분에 해당하는 시급 440원 인상, 샤워장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조정 절차를 통해 △청소‧주차직은 시급 400원 인상 △경비직 420원 인상을 용역업체에 권고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각 대학 노동자들은 지난 3월말부터 학내 집회와 출근길 선전전 등을 진행했다.

현재 홍익대, 동덕여대, 이화여대 등은 일부 잠정 합의를 마쳤다. 고려대 관계자는 “고려대는 다른 곳보다 시급 200원∼300원가량이 더 높은 편이라 차이가 있다. 현재 (노조 쪽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화장실 옆 대걸레 세척대가 있는 공간. ㄱ씨는 이곳에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서혜미 기자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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