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 밥숟가락 들어가듯.." 손웅정이 말하는 축구 기본기 경지

배준용 기자 2022. 7. 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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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화제된 손흥민 부친 손웅정 감독의 철학과 리더십
손웅정 감독이 지난해 10월 출간한 자전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의 표지 사진/수오서재 제공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60) 손축구아카데미 감독은 오래 전부터 방송·강연·언론사 등에서 인터뷰와 강연, 출연 요청이 무수히 쏟아졌지만, 거의 대부분은 거절한다고 합니다. 손 감독이 방송이나 언론 앞에서 서는 경우는 손축구아카데미에서 열린 행사나 운영 등으로 불가피한 상황일 때라고 하네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변 사람들은 “행여 실언을 해서 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걱정한다”고 전합니다. 아들 손흥민은 물론 본인에게도 철저히 겸손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도 하네요. 손흥민 선수의 변함없는 겸손은 세계적으로도 화제인데, 이 겸손함은 고스란히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게 지인들의 얘기입니다.

아이러니한 건 손 감독이 이렇게 숨으려 할수록, 그의 겸손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손흥민 선수의 위상이 높아진 영향도 크겠지만, 그보다 늘 성실함과 기본기를 강조하고 어떤 훈련이든 선수들과 같이 하는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그가 출간한 자전 에세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지난 5월부터 다시 판매량이 3~5배씩 늘기 시작해 최근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이 월드클래스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하는 손웅정 감독/유튜브 영상 캡처

얼마 전 손 감독의 사인회가 열렸는데, 예상보다 많은 팬들이 몰려들었더군요. 팬층도 다양했습니다. 어린이부터 중년·노년층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는 많은 팬들이 손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결국 1시간 정도로 예정된 사인회는 1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지요.

손 감독의 속내가 그나마 잘 나와있는 건 그가 쓴 자전 에세이입니다. 그의 에세이를 본 많은 독자들이 감탄과 찬사를 전해왔습니다. “철학과 내공이 대단하다” “한 명의 수도승을 만난 느낌”이라고 하더군요. 더 커진 호기심으로 살펴본 그의 인생과 철학은 기사에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손웅정 감독은 1962년 충남 서산 인지면 산동리 출생입니다. 도비산 자락에 있는 마을로, 당시 “하루에 버스가 단 한 번 오는 궁벽한 곳”이었다네요. 손 감독이 강조하는 지독한 성실과 노력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듯합니다. 학창 시절 별명이 ‘숙소 귀신’ ‘연습벌레’였답니다. 다른 친구들이 방과 후 친구도 만나고 여가를 누릴 시간에 본인은 오로지 훈련과 숙소에서의 휴식에만 매진하다 보니 ‘숙소 귀신’이라는 말이 붙었다네요.

“몸뚱이 하나에 의지해 오직 축구만 생각하며 중고등학교 6년을 보냈다. 그 시절 나는 삶의 배수진을 치고 살았다. 단 하루라도 게으름을 피웠다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중에서-

손 감독은 자신의 현역 시절에 대해 늘 “삼류 선수” “천둥에 놀라 뛰는 개 마냥 두서없이 뛰었다”며 평가절하합니다. 하지만 그의 자전 에세이와 축구계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손 감독의 말은 역시나 과한 겸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 우연히 교회 대항 축구대회에 나간 게 처음 축구를 한 것인데, 거기서 골을 넣고 활약해 단박에 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네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탓에 학교 진학과 소속팀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럴 때마다 손 감독의 재능과 성실함을 높게 사는 지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것으로 보입니다.

1983년 제38회 청룡기쟁탈 전국 중·고교 축구선수권대회에 춘천고 선수로 출전한 손웅정 당시 선수가 영광고와의 시합에서 생애 첫 공식 해트트릭이자 대회 첫 해트트릭을 한 사실을 보도한 10월 18일 자 조선일보 기사./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

“결정적인 순간에 선수를 물건 취급하는 현실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조금 실력이 보인다 싶으면 그 선수의 미래는 바로 어른들의 철저한 계산 안에서 저당 잡히고 만다. 열다섯 열여섯 그 어린 선수들이 학교와 지도자의 계획과 계산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진로 선택의 문턱 앞에 서 있는 선수와 가족의 고민은 누구의 염두에도 없었다.”

1990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결국 28살 젊은 나이에 현역 선수로서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네요.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체육시설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그걸로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주말에는 공사판에 나갔다고 합니다. 방과 후 체육교실 강사, 학교시설 관리 등 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힘든 상황에 대해 손 감독은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네요.

“지고 메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해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

손 감독은 손흥민 선수를 지원하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하는 일은 운동, 축구, 청소, 책읽기가 전부라고 합니다. 손 감독의 철학 중 또다른 핵심이 ‘무욕’과 ‘행복’, ‘자기주도적 삶’입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운동선수에게 승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선수, 오늘 경기가 잘 풀렸다면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선수,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찰 수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선수, 멀리 봤을 때 나는 이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손흥민 선수의 수익에 대해서도 손 감독은 굉장히 엄격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또다른 철학이 바로 “부모와 자식은 철저히 다른 인격체”라는 것이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손흥민 선수가 만약 축구가 힘들어 포기하려 했다면, 자신도 그것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축구가 더는 행복이 아니라면 아이들은 축구 곁을 떠날 것이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했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부모가 강요할 이유도 없고, 강요해서 될 일도 아니다. 축구선수로 재능이 보여 아이를 그 길로 가게 했느냐고? 아니다. 축구가 좋다니 할 수 있도록 도왔을 뿐이다. 아이가 원하는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흥민이가 번 돈에 대해서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내가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는가. 내가 왜 자식 눈치를 보며 살겠는가. 흥민이가 어렵게 번 돈은 통장에 잘 넣어놓고 흥민이가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노력한 것들이 흔적이 되고 자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그래야 동기부여가 된다. 흥민이에게 나는 종종 이야기한다. ‘네가 은퇴하면 아빠는 조용히 산속에 가든 뭘 하든 아빠 알아서 살 거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손웅정 감독은 손흥민 선수가 트로피나 상패를 받아오면 집 안 창고에 넣어둔다. '자랑하기도 싫고, 자칫 자만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유튜브 캡처

손 감독과 손흥민 선수 모두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럼 그 기본기는 대체 어떤 수준까지 연마해야 하는 걸까요? 손 감독은 “캄캄한 방 안에서도 밥숟가락이 저절로 입에 들어가는 경지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숟가락질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정전이 되어 캄캄해져도 밥숟가락을 자연히 입에 넣을 수 있게 되는데, 축구 선수도 그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볼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불 꺼진 방 안에서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지.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축구선수는 공을 좀 다룬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민이의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세월이 걸렸다. 365일 쉬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겸손’과 ‘성실’이다.”

손흥민 선수는 어린 시절 3살 위 형(손흥윤)과 함께 손웅정 감독에게 축구를 배웠는데, 형 흥윤씨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흥윤씨는 독일 5부리그까지 진출했지만, 부상으로 이른 은퇴 후 지금은 손축구아카데미 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흥윤이와 흥민이가 함께 축구를 했는데 흥윤이가 부상으로 이른 은퇴를 결정하고 흥민이는 축구판 안에서 큰 인정을 받을 때 가족 안에서 갈등이 없었느냐는 것이다. 어린 흥윤이와 흥민이를 데리고 축구 훈련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 두 아이의 관계를 살폈다. 이 두 아이는 가장 가까운 피붙이 형제이지만 가장 날카로운 맞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흥민이는 어릴 때 형이 제일 좋은 협력자였다고 고백했다. 흥민이는 아직도 형에게 전화해 흉금을 털어놓는다. 흥윤이가 없었다면 흥민이 혼자 그 고된 훈련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솔직히 의문이다.

부모로서 두 아이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일찌감치 알 수밖에 없었다. 볼 리프팅 훈련을 반복하는 모습만 봐도 맏이 흥윤이는 내가 시키는 대로 정석대로 하는 아이였고, 자기 주관과 고집이 무척 셌다. 내 판박이 같았다. 하지만 둘째 흥민이는 요령도 있고 꾀도 있었다. 맏이가 더 부담을 갖는 것처럼 보였다면 둘째 흥민이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즐기는 느낌이 들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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