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첫 중동 순방..원유 증산·관계개선 성과 없이 '빈손' 귀국
'원유증산' 핵심 사우디와 성과 없이 주먹만 부딪혀
사우디 "당초 계획대로 증산..탄소중립정책 비현실적"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왕세자의 이익은 분명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중동 순방에 대한 외신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으로 빈 살만 왕세자는 대내외적으로 그의 입지를 확인시키고, 국제무대로 복귀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원유증산 △이란 핵 문제 공동 대응 △중국과 러시아 견제 등 소기의 목적 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주먹인사’로 웃으며 시작했지만 “원유 증산 논의조차 안해”
15일(현지시간) 사우디 제다에서 만난 바이든과 빈 살만 왕세자의 첫 만남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두 정상은 악수 대신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했고, 표정도 비교적 밝았다. 빈 살만 왕세자는 고령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86) 국왕을 대신해 실질적으로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장면은 양국 관계에 상당히 우호적인 신호로 해석됐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통적 맹방’을 자처해 왔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사우디에서 자신의 상대는 살만 국왕이라며 왕세자를 무시했다. 급기야 2018년에는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가 지목되면서 양국 관계는 냉각됐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 우선 정책의 ‘후퇴’라는 비판을 무릅쓰면서도 이번 사우디 방문을 강행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가격을 필두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실세인 사우디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미국, 러시아와 함께 세계 3대 산유국이자 최대 원유 수출국이다.
그러나 사우디 외무부 장관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원유 증산 문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우디는 오는 2027년까지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증산 관련해서는 OPEC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시장 상황을 평가해 적절한 생산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오히려 빈 살만 왕세자는 정상회의에서 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서방 주도의 ‘무리한’ 탄소 중립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요 에너지원을 배제함으로써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비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은 향후 몇 년 동안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가격 상승, 실업률 증가와 심각한 사회 문제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걸프협력회의(GCC)와 정상회담에서 “국제적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에너지 생산업체들은 이미 증산했으며 향후 수개월간 벌어질 일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유국들에 원유 증산을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결과는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후에나 확인할 수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당장 OPEC+의 다음 회의만 해도 다음달 3일에 열릴 예정이다.
카슈끄지 암살 관련 ‘평행선’…이스라엘과 관계개선 논의도 흐지부지
바이든 대통령은 개별 면담에서 빈 살만 왕세자에게 카슈끄지 암살 관련 문제 제기를 했다. 이에 왕세자는 “사우디에는 고통스러운 사건임, 끔찍한 실수”라면서도 “개인적으로 나는 책임이 없으며 책임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 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미 정보기관들은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 지시를 내렸다고 보고 있지만, 그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국제 인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과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피격 사건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성과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를 정상화 해 이란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연합 방공망을 추진해왔다. 이른바 ‘중동판 나토’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파이살 빈 파르한 외무장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연합 방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 방문에 맞춰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항공기에 대해 사우디 영공 통과를 허용한 것에 대해서도 외교관계와 상관없는 조치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중동 순방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지지층으로부터의 도덕적 비난이라는 역풍 역시 더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2020년 대통령 선거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카슈끄지 살해에 대한 책임을 빈살만 왕세자에게 묻겠다고 공언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사우디 문제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점했다”면서 “지금 빈살만 왕세자와 함께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강제로 마피아 두목의 반지에 입을 맞추며 절박하게 애원하는 사람 같다”고 비난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13~16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사우디 등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란 핵 무기 보유 노력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확인하면서 필요시 무력 사용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팔레스타인에는 3억1600만달러 규모의 원조를 약속하며, 트럼프 전 행정부의 친(親)이스라엘 행보로 소원해졌던 팔레스타인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장영은 (bluera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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