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입법부 없는 제헌절'..1만건 계류에도 '정치공학'만 넘쳐
유류세 감면 등 민생법안은 뒷전
협치는커녕 원구성 놓고 책임공방
여야 기싸움에 국회 정상화 요원
대한민국 5년마다 적폐싸움 반복
"승자독식제 손봐야" 목소리 커져
김진표 국회의장이 제헌절인 17일 “국민 통합형 개헌에 나서자”며 여야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논의해달라고 제안했다. 물가·금리·환율이 상승하고 신냉전 속에 정치·경제·외교·안보를 망라한 복합 위기가 오는데도 국회는 원 구성 합의도 못 한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다. 이미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1만 건이 넘었지만 국회 정상화는 요원한 형편이다. 여야는 ‘협치’는커녕 원 구성을 두고 책임 공방만 벌이며 ‘입법부 없는 제헌절’을 보냈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서 열린 ‘제74주년 제헌절 기념식’에서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통합형 개헌을 이루기 위해 먼저 준비하겠다”며 개헌의 시기·방법·범위를 검토할 국회의장 직속 ‘개헌자문회의’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의 개헌론은 여야의 반목과 대결을 현행 헌법으로는 제어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왔다.
그는 “1987년 민주 항쟁으로 탄생한 현행 헌법은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역할을 충실히 했지만 35년이 지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출생·고령화, 불평등, 기후변화와 지역 분권 등 새로운 시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제안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동감을 표하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할 헌법을 소망한다”고 했지만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 같은 여야의 인식 차이는 법안 통과 때마다 반복되고 심화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이날 기준 1만 1240건이다. 앞서 19대 전반기 7289건, 20대 전반기는 9739건으로 건수로도 21대 들어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발의 법안 대비 계류 법안의 비중도 각각 67.5%, 73.2%, 74.7%로 상승하고 있다.
‘일하는 국회’를 지향했지만 여야 대립의 골만 깊어지며 법안 처리조차 못 하고 있는 형편이다. 복합 위기에 대응할 납품단가연동제, 법인세 인하, 유류세 감면, 부동산 관련 세제 등 민생과 직결된 법안은 완전히 멈춰 있는 상태다.
더욱이 여야 원 구성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여야는 표면적으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배분 문제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지만 실제로는 ‘서로 믿을 수 없다’는 신뢰의 부재가 최대 장애로 꼽힌다.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 정상화 법안, 이른바 ‘검수완박’ 과정에서 국회의장 중재안을 파기한 국민의힘을 향해 신뢰를 회복할 조치를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권 대표 대행이 일부 원 구성 합의 내용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 자체가 신뢰를 다시 깨뜨린 행위라고 공세를 퍼붓고 있지만 속사정은 복잡하다. 법제사법위원장을 양보한 만큼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을 취하해줄 것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통상 피청구인을 국회 법사위원장이 맡는 까닭에 국민의힘이 취하하지 않을 경우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동일해져 민주당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본격화하는 시기까지 느긋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전대에 몰입할수록 대정부 질문 등에서 야당의 칼끝이 무뎌질 수 있어서다. 신뢰는 없고 정치 공학만 난무하는 정치권의 민낯이다.
집권 5년 동안 ‘적폐청산’에 몰두한 문재인 정권이 아랫돌을 놓고 전 정권 탓으로 일관하는 윤석열 정부가 다시 윗돌을 올려놓으며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 이런 식이면 대한민국은 5년마다 통합과 협치 대신 적폐 싸움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10여 년 동안 범진보와 범보수의 유권자들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그동안 정권마다 힘의 균형을 무시한 행보를 보였다”며 “이념 갈등을 넘어서는 통합 정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표만 더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움켜쥐는 ‘승자 독식’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의장도 개헌과 함께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한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모 아니면 도’인 선거제도와 수명이 다한 헌법으로는 여야가 원 구성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더라도 언제든 ‘갈등의 블랙홀’에 빠져드는 극한의 대립은 사라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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