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미국은 중동 떠나지 않는다"..사우디 원유 증산은 불발

박병수 2022. 7. 17. 16: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러, 우크라 침공]사우디 왕세자에 카슈끄지 살해 문제 꺼내자
"개인적 책임 없다"며 미 인권 문제로 역공
석유 증산 요청엔 "이미 최대 생산치" 냉담
15일 사우디아라비아 휴양도시 제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먹 인사를 하는 모습을 사우디 정부가 공개했다. AFP 연합뉴스

중동 국가들을 순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이 중동을 떠나 빈 곳을 중국과 러시아, 이란이 채우도록 하지는 않겠다”며 미국의 영향력 유지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증산 약속은 받아내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사우디의 홍해 휴양도시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해 “세계가 더 경쟁적이 되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 더 복잡해지면서 중동이 미국의 국익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그는 “미국은 다른 어떤 곳으로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는 당장 능동적이고 원칙 있는 미국의 지도력으로 기반을 쌓아나가겠다”며 예멘내전의 휴전협정 연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 극복, 인권 보호, 이란의 핵 무장 위협 등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근 국제 곡물 수급 불안정과 가격 인상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안보를 위해 10억 달러(1조3천억원) 규모의 기금 조성 계획도 밝혔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중동 주둔 미군을 감축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연계와 개입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이런 정책 기조와 결이 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석유 등 에너지값 급등 등으로 최근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다시 부각된 데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날 걸프협력기구+3 정상회의에는 걸프협력기구 회원국(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과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등 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 참가국 정상들과 각각 양자 회담도 했다.

전날인 15일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와 정상회담을 한 뒤 이어서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와의 만남은 왕세자가 2018년 일어났던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에 면죄부를 준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다. 사우디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과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먹 인사’를 한 장면을 공개했는데, <워싱턴 포스트>의 최고경영자(CEO) 프레드 라이언은 이 장면에 대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카슈끄지 살해 문제를 회담 처음에 제기했다”며 “미국 대통령이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모순이다. 나는 늘 우리의 가치를 지킨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카슈끄지 살해 문제에 대해 “자신은 개인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력자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이 15일 사우디의 휴양도시 제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제다/UPI 연합뉴스

사우디 위성방송국 <알 아라비야>는 익명의 사우디 고위 당국자 말을 인용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카슈끄지 문제를 끄집어내자 “남에게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려는 것은 후폭풍을 만날 수 있다”고 맞섰다고 전했다. 카슈끄지 사망은 “유감”이라면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또 이라크전 때 미군이 아부그레이브 수용소에서 포로를 상대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한 일과 최근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언론인 시린 아부 아클레가 취재 중 이스라엘군이 쏜 것으로 의심되는 총탄에 저격당한 사건 등도 언급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로부터 명확한 원유증산 약속을 받아내진 못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석유 등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라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이 원유증산에 나설 것을 희망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석유 공급을 늘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며 “사우디는 이런 긴급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오늘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몇 주 뒤 우리가 몇 걸음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3일 주요 산유국들 협의체인 ‘오펙 플러스’(OPEC+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 회의에서 증산 결정을 기대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무함마드 왕세자는 16일 걸프협력기구+3 정상회의 때 “사우디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으며,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하다”고 발언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부 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원유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