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중 오늘만은 마음 편히" 3년만에 열린 퀴어축제 13만 명 모여
이승우 기자 2022. 7. 17. 15:07
12개국 대사들 지지 연설..맞은편선 반대 집회도
“오늘은 온전히 저희(성소수자)의 날이잖아요. 1년 내내 숨죽이고 살아온 만큼 오늘만은 마음 편히 놀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최모 씨(33)는 등에 두른 무지갯빛 망토를 내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성소수자라고 밝힌 최 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퀴어 축제가 대면으로 진행되지 못해 아쉬웠다”라며 “무더운 날씨지만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3년 만에 열린 퀴어축제, 맞은편에서는 반대 집회 열려
성소수자들이 존재와 정체성을 알리는 행사인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이날 3년 만에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서울광장은 주최 측 추산 13만여 명이 모여든 가운데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과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참가자들은 이번 축제의 구호인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를 외쳤다. 잔디밭에서 무지개색 옷을 입은 채 춤을 추던 박모 씨(24)는 “1년 전 부모님께 커밍아웃 한 후 처음 참가한 퀴어축제라 감회가 새롭다. 매일 오늘처럼 당당하게 서울 시내를 거닐고 싶다”라고 했다.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지지의 뜻으로 참여한 참가자도 많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광장을 찾은 김서연 씨(28)는 “평소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아 지난 2년 동안 온라인으로 축제에 참여했다”라며 “참여자들 목소리가 잘 전달돼 무분별한 인권 침해가 없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했다. 캐나다인 폴른 씨(65)는 “캐나다에서는 주변에 동성애 친구가 있더라도 동등하게 존중한다”라며 “한국에서도 이 같은 문화가 빨리 자리 잡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날 퀴어축제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를 비롯해 주한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호주 등 12개국 대사 또는 대사 대리가 참가해 지지 발언을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어느 곳에서의 차별도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기 위해 헌신하겠다”라고 했다.
서울광장 길 건너편 서울시의회 앞과 서울광장 주변에서는 기독교·보수 단체들이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1만 5500명의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내건 채 “퀴어축제를 승인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한다”라며 “동성애는 죄악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포항에서 올라왔다는 박모 씨(58)는 “동성애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골드버그 대사의 퀴어축제 지지 발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모 씨(43)는 “주한 미국 대사라는 사람이 한국 사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다”라고 했다.
이날 오후 1시경 일부 반대 집회 참가자가 퀴어 축제 참가자를 붙잡고 “동성애는 죄악이니 회개하라”라고 외쳐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으나 경찰 제지로 물리적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과도한 노출 제한’ 기준 모호하다는 불만도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 승인 조건으로 내건 ‘과도한 노출 금지’ 기준을 두고도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 4일 서울시는 과도한 신체 노출과 유해·음란물 판매 및 전시 금지를 서울광장 사용 조건으로 축제 주최 측에 제시했다. 주최 측은 서울시에 ‘과도한 노출’을 판단하는 기준을 여러 차례 질의했으나 구체적 답변은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을 성소수자라 밝힌 유모 씨(31)는 ‘노출 금지라고 해서 껴입음’이란 문구를 스프레이로 적은 두꺼운 재킷을 입고 축제에 참가했다. 유 씨는 “낮 기온이 33도를 넘을 만큼 더운 날이지만 서울시가 ‘과도한 노출’을 금지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옷을 껴입고 나왔다”라며 “다른 축제나 집회에는 복장 규정을 두지 않으면서 퀴어축제만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성소수자 이모 씨(30)도 “복장 자유까지 억압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탄압”이라며 “다른 여름 축제처럼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분위기를 허가해 달라”라고 했다.
●시민 교통 불편 호소,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도
이날 오후 4시 반~6시 반경 경찰 추산 1만 3000명이 참가한 퀴어퍼레이드 행진으로 서울광장~을지로입구~남산터널~명동 구간 2, 3개 차로의 교통이 통제됐다. 오전 9시~오후 9시 서울광장 앞 8차로 중 5차로는 퀴어축제 반대 집회로 통제됐다.
차량 통행이 통제되면서 시민 불편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박모 씨(48)는 서울시청 앞에서 평소 10~15분 간격으로 오는 경기 수원행 광역 버스를 40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씨는 “일대 교통이 통제돼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가운데 대규모 집회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광장 인근을 지나던 시민 이성우 씨(28)는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밖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떠들면 방역 지침이 다 무슨 소용이냐”라며 “다음 달이면 하루 확진자 25만 명도 나온다는 데 매우 불안하다”라고 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교통 통제로) 시민 불편이 있지만 성소수자는 (축제일을 제외하고) 364일을 불편함 속에 살고 있다”라며 “단순히 성소수자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근거 없이 반대 집회를 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와 주장에 대해 편견만 갖고 대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오늘은 온전히 저희(성소수자)의 날이잖아요. 1년 내내 숨죽이고 살아온 만큼 오늘만은 마음 편히 놀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최모 씨(33)는 등에 두른 무지갯빛 망토를 내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성소수자라고 밝힌 최 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퀴어 축제가 대면으로 진행되지 못해 아쉬웠다”라며 “무더운 날씨지만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3년 만에 열린 퀴어축제, 맞은편에서는 반대 집회 열려
성소수자들이 존재와 정체성을 알리는 행사인 제23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이날 3년 만에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서울광장은 주최 측 추산 13만여 명이 모여든 가운데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과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참가자들은 이번 축제의 구호인 ‘살자, 함께하자, 나아가자’를 외쳤다. 잔디밭에서 무지개색 옷을 입은 채 춤을 추던 박모 씨(24)는 “1년 전 부모님께 커밍아웃 한 후 처음 참가한 퀴어축제라 감회가 새롭다. 매일 오늘처럼 당당하게 서울 시내를 거닐고 싶다”라고 했다.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지지의 뜻으로 참여한 참가자도 많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광장을 찾은 김서연 씨(28)는 “평소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아 지난 2년 동안 온라인으로 축제에 참여했다”라며 “참여자들 목소리가 잘 전달돼 무분별한 인권 침해가 없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했다. 캐나다인 폴른 씨(65)는 “캐나다에서는 주변에 동성애 친구가 있더라도 동등하게 존중한다”라며 “한국에서도 이 같은 문화가 빨리 자리 잡길 바란다”라고 했다.
이날 퀴어축제에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를 비롯해 주한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호주 등 12개국 대사 또는 대사 대리가 참가해 지지 발언을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어느 곳에서의 차별도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기 위해 헌신하겠다”라고 했다.
서울광장 길 건너편 서울시의회 앞과 서울광장 주변에서는 기독교·보수 단체들이 퀴어축제에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1만 5500명의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내건 채 “퀴어축제를 승인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규탄한다”라며 “동성애는 죄악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포항에서 올라왔다는 박모 씨(58)는 “동성애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골드버그 대사의 퀴어축제 지지 발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모 씨(43)는 “주한 미국 대사라는 사람이 한국 사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있다”라고 했다.
이날 오후 1시경 일부 반대 집회 참가자가 퀴어 축제 참가자를 붙잡고 “동성애는 죄악이니 회개하라”라고 외쳐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으나 경찰 제지로 물리적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과도한 노출 제한’ 기준 모호하다는 불만도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 승인 조건으로 내건 ‘과도한 노출 금지’ 기준을 두고도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 4일 서울시는 과도한 신체 노출과 유해·음란물 판매 및 전시 금지를 서울광장 사용 조건으로 축제 주최 측에 제시했다. 주최 측은 서울시에 ‘과도한 노출’을 판단하는 기준을 여러 차례 질의했으나 구체적 답변은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을 성소수자라 밝힌 유모 씨(31)는 ‘노출 금지라고 해서 껴입음’이란 문구를 스프레이로 적은 두꺼운 재킷을 입고 축제에 참가했다. 유 씨는 “낮 기온이 33도를 넘을 만큼 더운 날이지만 서울시가 ‘과도한 노출’을 금지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 옷을 껴입고 나왔다”라며 “다른 축제나 집회에는 복장 규정을 두지 않으면서 퀴어축제만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성소수자 이모 씨(30)도 “복장 자유까지 억압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탄압”이라며 “다른 여름 축제처럼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분위기를 허가해 달라”라고 했다.
●시민 교통 불편 호소,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도
이날 오후 4시 반~6시 반경 경찰 추산 1만 3000명이 참가한 퀴어퍼레이드 행진으로 서울광장~을지로입구~남산터널~명동 구간 2, 3개 차로의 교통이 통제됐다. 오전 9시~오후 9시 서울광장 앞 8차로 중 5차로는 퀴어축제 반대 집회로 통제됐다.
차량 통행이 통제되면서 시민 불편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박모 씨(48)는 서울시청 앞에서 평소 10~15분 간격으로 오는 경기 수원행 광역 버스를 40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 씨는 “일대 교통이 통제돼 어디서 버스를 타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다.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가운데 대규모 집회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광장 인근을 지나던 시민 이성우 씨(28)는 “코로나19 감염이 두려워 밖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떠들면 방역 지침이 다 무슨 소용이냐”라며 “다음 달이면 하루 확진자 25만 명도 나온다는 데 매우 불안하다”라고 했다.
양선우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교통 통제로) 시민 불편이 있지만 성소수자는 (축제일을 제외하고) 364일을 불편함 속에 살고 있다”라며 “단순히 성소수자가 보기 싫다는 이유로 근거 없이 반대 집회를 하는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와 주장에 대해 편견만 갖고 대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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