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닮은 '휴머노이드' 넘어 "로봇, 점처럼 작게 진화해야"
데니스 홍 미국 UCLA 교수
"로봇 '림스'로 라스트마일까지 자동화"
사람의 모습을 닮은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은 왜 필요할까? 인간형 로봇 다음 세대 로봇은 어떤 모양으로 진화하게 될까?
유명 로봇공학자인 데니스 홍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기계공학과 교수 겸 로멜라 연구소장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환경에서 로봇이 제대로 일하려면 사람 모습을 닮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16일 서울 동작구 노들섬 다목적홀에서 열린 ‘코드 컨퍼런스 2022’에서 ‘인간을 위한 따뜻한 기술’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홍 교수는 “우리가 로봇과 한 집에 살며 빨래,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같은 집안일을 시키려면, 로봇이 반드시 사람과 비슷한 모습과 크기를 하고 있어야 한다”며 “이는 로봇이 살아갈 환경이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문 손잡이가 허리춤에 달린 것은 사람들의 평균 키와 손 위치를 고려한 결과다. 계단의 높이도 사람의 다리 길이를 고려해 설계됐다. 이런 환경에서 로봇이 사람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인간이 시키는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하기 어렵다. 무인자동차가 아닌 일반 자동차를 로봇이 운전하게 하려 해도 마찬가지다.
홍 교수가 몸담은 유시엘에이 산하 로봇 연구소 ‘로멜라’(RoMeLa·Robotics and Mechanisms Laboratory)는 지난 10여년간 여러 ‘인간형 로봇’을 만들었다. 미국 최초의 성인 크기 로봇 ‘찰리’, 화재 진압 로봇 ‘사피어’,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탑재 로봇 ‘토르’ 등이다. 그런데 홍 교수는 “최근 들어 인간형 로봇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까지는 인간형 로봇들이 잘 넘어지는 등 불안정하고 이동 속도도 너무 느리다. 이 두 문제를 해결할 여러 기술이 나왔지만 여전히 너무 비싸고 복잡해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존하는 99%의 로봇들엔 굉장히 큰 기어가 달려 있습니다. 덕분에 힘도 세고 아주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공장을 자동화할 때는 최고지만,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곁에 두고 함께 일하기엔 다소 위험합니다. 또 걷고 뛰는 등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동물 근육처럼 탄성이 있고 위치와 힘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구동기가 필요합니다.”
홍 교수는 ‘구동기’, 사람으로 치면 관절이나 근육 역할을 하는 부품이 더 발전해야 로봇이 사람들의 일상 가까이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로멜라 연구소는 직접 개발한 로봇용 구동기 ‘베어’를 활용해 인간형 로봇의 뒤를 이을 여러 차세대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개발한 ‘알프레드2’는 지금까지 나온 4족보행형 로봇 중 유일하게 네 다리 중 두 다리로 땅에 있는 물건을 높이 집어들어 옮길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관절이 움직이는 탄성을 조절할 수 있어, 평평하지 않은 바닥에서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홍 교수는 “알프레드2가 트럭에 실린 물건을 집어서 머리에 싣고, 인도를 통통 튀거나 계단을 올라 직접 문을 열어 물건을 방 문 앞까지 전달해 준다면, 현재 무인 자동차를 이용한 물류 자동화의 큰 숙제인 ‘라스트 마일’ 자동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란 말 그대로 물류의 맨 마지막 1마일을 뜻한다. 여러 곳에서 실려 온 화물을 각지로 향하는 트럭에 분류해 넣는 작업은 자동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트럭이 싣고 간 물건을 문 앞에까지 가져다주는 마지막 작업은 여전히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고 택배 기사가 4족보행 로봇을 차량에 싣고 다닌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트럭에서 짐을 내려 문 앞까지 가져다 놓는 수고를 덜 수는 있겠지만, 한 번에 많은 짐을 싣는 데 방해가 될만큼 부피가 크다면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홍 교수는 앞으로의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닮은 걸 넘어 “단면적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소에는 마치 ‘점’ 하나만큼 작아져 있다가, 꼭 필요할 때에만 가제트가 팔을 길게 뻗듯 몸집을 늘려 명령을 수행하고, 다시 일상 생활에 거치적거리지 않는 모양으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로멜라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지(LG)전자의 후원 아래 세그웨이 형태의 로봇 ‘림스’를 만들고 있다. 알프레드2와 달리 림스엔 몸체가 없고 팔 또는 다리만 있다. 대신 운반하고자 하는 물체 자체가 로봇의 몸체 역할을 한다. 특수 개발한 부품을 종이 상자와 림스의 맨 끝단에 달아 서로 결합하면, 부피를 최소화하고도 로봇으로 하여금 물건을 고객이 있는 마지막 위치까지 전달하게 할 수 있다. 배달이 끝나면? 림스 혼자서 다리를 작게 접은 뒤 바퀴를 이용해 스스로 트럭 안으로 돌아온다.
홍 교수는 “유치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로멜라 연구소에겐 기술이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며 “우리에게 있어 로봇은 인간을 위한 따뜻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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