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커뮤니티 들어가니 웹소설 불법 공유 사이트..'텍본'에 흔들리는 K콘텐츠
더욱 은밀해진 방법..웹툰보다 막기 어려워
해외선 저작권 보호 규정 강화하는 추세
겉만 보면 국내 여행지와 커피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다. 맛집이나 관광지 정보를 물어보는 글도 있다. 하지만 로그인을 해서 들어가면 이 사이트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숨겨진 게시판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주요 웹소설 플랫폼에서 정식 출판된 최신 웹소설의 텍스트 파일(텍본)이나 스캔 파일이 버젓이 떠돌고 있다.
웹소설 작가 A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연재 중이던 작품의 조회 건수가 갑자기 떨어져 알아보니 불법 사이트에서 내 작품이 공유되고 있었다"며 "불법 유통으로 수익까지 크게 줄어들어 절필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맞선',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 웹소설에서 웹툰으로, 다시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들이 흥행하면서 웹소설의 지식재산권(IP)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웹소설은 웹툰 대비 스토리가 탄탄해 영상화하는데 힘이 덜 든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하지만 웹소설 작품들이 주목받을수록 불법 유통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수십 개의 웹소설이 단 1메가바이트(MB)의 파일로 불법 공유될 수 있고, 텍스트 기반인 만큼 기술적으로 불법 유통을 막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숏폼' 즐기는 MZ세대 겨냥...100억 원 매출 웹소설도
17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웹소설 시장 규모는 2013년 100억 원 수준에서 7년 만인 2020년 기준 6,000억 원으로 60배 성장했다. 단행본 시장(7,100억 원) 규모를 거의 넘어섰으며, 웹툰 시장(1조538억 원)까지 넘보고 있다.
웹소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콘텐츠를 즐기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성향을 잘 공략했기 때문이다. '권'을 기준으로 나누는 전자책과 다르게 웹소설은 편당 25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구성된다. 5~10분만에 한 편을 읽을 수 있으며, 그만큼 콘텐츠의 전개가 빠르고 흡입력이 높다. 100원이면 한 편을 읽을 수 있어 부담도 적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소설 이용자 설문 응답에 의하면, 응답자의 72.4%가 웹소설을 감상하기 위해 유료 결제를 한 경험이 있으며, 나이별로는 20대(80.2%), 10대(77%), 30대(76.6%) 순으로 높았다. 네이버시리즈의 무협물 '화산귀환'이나 판타지물 '전지적 독자 시점'의 경우 누적 매출이 100억 원을 넘기도 했다.
'N번방'처럼 신원 파악 후 텍본 불법 유통 텔레그램 방 초대
웹소설 시장은 급성장하지만 작가들은 불법 유통에 시름하고 있다. '글담' 등 웹소설 작가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텍본 형태로 불법 유통되고 있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텍본은 불법 유통 사이트, 텔레그램 및 디스코드 등 폐쇄형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웹하드 등에서 주로 공유되고 있다.
2018년 유명 웹툰 불법 사이트 '밤토끼' 운영자가 검거된 이후 불법 유통 수법은 더욱 은밀해지고 있다. ①단속을 피하기 위해 일반 커뮤니티로 가장하고, ②포인트를 얻어야 텍본 공유 게시판을 볼 수 있는 식이다. ③포인트를 얻기 위해선 자기가 보유한 텍본을 공유하거나, 비용을 따로 내야 한다.
④폐쇄형 SNS 역시 불법 텍본을 먼저 공유해야 해당 텔레그램에 입장을 허용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또 ⑤단속을 피하기 위해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1차로 신원을 파악하고,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는 채널 주소를 알려주는 'N번방'과 비슷한 구조로 운영된다. 일부 텔레그램 채널의 경우 참여자 수만 1,000명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웹소설 작가는 "불법 사이트들은 파일을 직접 올리기보다 개인 간 거래를 유도하거나 불법 텍본이 있는 사이트 링크를 공유하는 식으로 단속망을 피해간다"며 "이런 사실이 알려질 경우 결제하고 정당하게 보고 있는 이용자까지 불법 채널을 찾아볼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웹툰보다 웹소설 단속 더 어려워...정확한 피해 규모도 추정 불가"
플랫폼 업체들은 웹소설이 웹툰보다 불법 유통을 단속하는 데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특히 웹소설 기반 드라마나 영화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된 웹소설이 '해적판' 형태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플랫폼 관계자는 "웹툰의 경우 캡처를 막는 기술을 심거나, 워터마크를 넣어 어느 정도 추적할 수 있다"며 "반면 웹소설은 직접 타이핑해서 불법 유통할 수 있어 사실상 막기가 불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심지어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로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키워드 검색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 정확한 웹소설 불법 유통 피해 규모도 추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이태 저작권해외진흥협회 사무국장은 "정확한 현황을 파악해보려고 폐쇄형 사이트나 카페에 가입하려 했다"며 "하지만 이를 위해 텍본을 공유해야 하는 불법을 저질러야 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처벌보다 이득이 훨씬 커..."징벌적 손배 고려해야"
불법 유통을 뿌리뽑기 어려운 이유는 설사 단속에 걸리더라도 이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처벌보다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에서는 위반 사범에 대해 5년 이하 징역과 5,000만 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을 내리고 있다. 민사소송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불법 유통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산정하기 어려워 배상액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면 불법 공유 사이트 운영자들은 불법 도박 등 배너 광고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렵게 불법 유통 사이트를 찾아 접속을 차단한다고 해도 몇 시간 안에 다른 도메인으로 그대로 옮겨간다. 새로운 도메인 주소는 SNS를 통해 이용자들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2018년 당시 월평균 3,500만 명, 일평균 116만 명이 접속하던 밤토끼의 운영자가 검거됐지만 여전히 제2, 제3의 밤토끼가 나오는 이유다. 법원은 밤토끼 운영자 허씨에게 징역 2년 6개월과 암호화폐 리플 31만 개(당시 환산액 2억3,000만 원) 몰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웹툰 업계에선 밤토끼로 인한 피해 추산액이 2,000억 원이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콘텐츠 보호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주요국들은 저작권 보호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2020년 11월 저작권법을 개정하면서 고의적이고 심각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 실제 손해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이 가능하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시행을 발표했다. 또 배상 상한도 기존 50만 위안에서 500만 위안(약 9억8,000만 원)으로 크게 올렸다.
웹툰작가로도 활동한 임남택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현행법에서는 민사소송에서 원고가 피해 규모를 입증해야 하는데 불법 유통 손해액은 산출하기 어려워 소송을 해도 구제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웹소설, 웹툰의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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