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퍼레이드 고인물' 레즈비언 바 사장이 만드는 '공간'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3년 만에 광장을 찾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엔 다양한 참여자들의 여러 이야기들이 공존한다. 2022년의 퀴어문화축제에서 <프레시안>이 만난 이야기들을 전한다. 서울 이태원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에서 윤김명우 사장을 지난 14일 대면으로 만났고 퀴어 프렌들리 비건 타투샵 '업스테어 스튜디오'의 우디 작가를 15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퀴어퍼레이드 현장에 찾아온 젠더퀴어 당사자 스케디 씨는 16일 현장에서 만났다.
3년 만의 대면 퀴어퍼레이드를 앞두고 유독 분주한 이들이 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당일(16일) 서울광장에 설치되는 부스를 운영하는 이들이다.
무지갯빛이 북적이는 광장에서 80여 개가 넘는 부스가 자리 잡는다.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과 인권단체, 노동단체와 종교단체, 기업과 술집, 국가인권위원회와 주한 대사관들까지. 퀴어문화축제를 장식하는 부스들이 꾸려진다.
14일 만난 '퀴퍼 고인물' 윤김명우(66) 씨도 퀴어문화축제 부스 준비에 한창이었다. 올해도 이태원에 위치한 레즈비언 바(Bar) '레스보스(Lesvos)'의 후원을 위한 부스를 설치한다.
그는 레스보스의 3대 사장이자 60대 레즈비언이다. 40대 때 처음으로 커밍아웃 하고 레즈비언 바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무지개를 두르고 거리를 행진하고, 무대 위에 올라가 춤을 추면서 세상이 이럴 수가 있구나,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참여하지 못했을 때도 "퀴퍼 가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렸을 정도로 퀴퍼에 진심이다. 명우 씨는 올해 퀴어퍼레이드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오히려 들떠있었다.
"비 오니까 더 재밌더라. 바지가 흘러내릴 것 같긴 했는데 멜빵바지 입어서 안 내려갔어. 찾아오는 애들 더울까 봐 생수랑 얼음도 챙기고, 팔찌하고 티셔츠도 챙겨가."
60대 레즈비언이 운영하는 레스보스..."찾아오면 그냥은 안 보내지"
그가 운영하는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에 대해 말하려면 그의 젊은 시기 이야기가 저절로 따라온다.
많이 방황했었던 20대 시절에는 알콜중독에 걸릴 정도로 술에 의존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답한 순간이 많았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생각했던 장면이 많았다.
그러다 친구들을 만났다. "나 같은 사람은 나 혼자인 줄 알았다"던 그에게 그 시절 명동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거리에서 많은 레즈비언을 만났다. 방황하던 시절을 멈춰준 것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선배 따라서 명동 나가니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많더라고. 기성복도 많지 않은 시절이니까 다 맞춤집에서 옷 맞춰 입고 다녔거든. 그래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 되는 경우도 많았어."
40대가 되고 그는 레즈비언 바를 인수해 운영하기로 했다. 레즈비언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공간이 없던 시절이다. 선배들과 스파게티를 먹으러 간 음식점에서는 옆자리 사람들이 "쟤네 레즈비언들은 뭔 재미로 있는거냐"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제대로 된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공간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고 고민이 많았던 레즈비언을 돌봐주고 싶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게 문을 잠시 닫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명우 씨는 여전히 새벽 6시에 일어나 일을 나가고, 오후에는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의 사장님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레스보스를 운영하기 어려웠다.
레스보스를 인수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오픈 퀴어'가 되기를 마음 먹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기에 40대 레즈비언의 커밍아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말했다. 그래야 더 편안한 장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들 심리도 모르고, 어떻게 애들하고 같이 어울리면서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 그때 결심한 게 어차피 레즈비언 바를 운영하고 애들이랑 같이 있으려면 커밍아웃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를 내가 운영하고, 나는 레즈비언이다. 세상에 알려버렸지."
가게를 찾아오는 수많은 성소수자을 만났다. 손님으로 오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게에서 알바 하겠다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부모한테 두들겨 맞고 쫓겨나온 사람, 성별 전환 수술받지 않은 트랜스젠더들. 당장 의지할 곳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명우 씨는 일자리를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가게를 함께 운영했다.
"상처가 많은 친구들이 많이 왔어. 걔네들이 돈 벌고 자립할 수 있는 곳이 우리 가게잖아. 손님들도 와서 한바탕 울고 가기도 하고. 레즈비언 친구들이 와서 편히 쉬게 해주고, 이야기 들어주는 게 내 몫이지. 장사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니까. 나도 좋은 공간 만들어서 베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한거지."
찾아온 이는 절대 그냥 보내지 않았다. 한두 마디는 꼭 나눈다. 혼자 찾아온 손님이 있으면 다른 테이블에 섞어서 앉게 해 새로운 인연도 만들어 준다. 서빙, 요리, 대화까지 1인 3역이다. 잠깐 본 손님도 다 기억하니 "명우 선배한테 가면 신상 다 털린다"라는 말도 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공간을 추구하는 레스보스처럼, "퀴퍼는 우리의 날이다".
그에게 "많은 사람에게 편안한 장소"는 여전한 목표다. 바에 찾아오는 레즈비언 손님들의 수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 마음이 계속 커진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드러내는 성소수자는 더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전에는 성소수자가 가려져 있었잖아. 근데 옛날부터 성소수자는 항상 있었어. 그게 안 보인 거야. 미성년자였다가 성인 되자마자 찾아오는 애들이 어마무시할 정도로 많아. 점점 갈수록 숫자가 많아질 거야."
최근에는 50대 이상의 레즈비언들과 '작당모의'를 꾸민다. 초창기 레즈비언 커뮤니티 ‘끼리끼리’의 회원 몇몇도 함께한다. 안전하게 즐길만한 편한 장소가 마땅치 않은 중·노년 레즈비언들끼리 서로 툭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계기를 꾸며볼 계획이다.
퀴어퍼레이드는 그 모든 사람을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날이라 더 특별하다. 평상시에 잘 만나지 못하더라도 1년에 한 번씩은 만날 수 있다. 얼굴만 잠깐 본 성소수자든, 친하지 않던 사람이든, 명우 씨는 퀴어퍼레이드 때만 되면 불쑥 찾아간다. "오랜만이다"하면서 손을 내밀며 안부를 묻는다. 퍼레이드가 끝나면 매년 그랬듯 레스보스에서의 뒤풀이도 예정되어 있다. 단골들의 예약으로 이미 만석이다.
"퀴어퍼레이드는 우리의 날이야. 그런 날에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서 허가를 해주니 마니 차별을 하면 안 되는 거고. 코로나 때문에 멈췄다가 올해 다시 열리니까 너무 좋지. 짐을 한 보따리 가져갈거야."
16일 서울퀴어퍼레이드 당일. 명우 씨는 레스보스 부스를 환한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 레스보스의 많은 단골 손님들이 부스를 찾아왔다. 그들은 부스 앞 마련된 판넬에 60대 레즈비언 선배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남겼다.
"충격! 레즈비언 '바지씨' 진짜 계실 예정", "우리의 영웅 명우 형 항상 감사합니다! 레즈비언 만세!"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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